해역 유속이 가장 느려지는 소조기의 마지막날인 24일 오전 한 실종자 가족이 노란 리본이 나부끼는 팽목항 부두 난간 계단에 앉아, 아이가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진도/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초조한 부모들
“어떻게든 빨리 나왔으면…”
생존기대 점차 접고 애타는 기다림
“어떻게든 빨리 나왔으면…”
생존기대 점차 접고 애타는 기다림
“그것도 효도야. 웬수 같은 놈이 웬수 같은 짓만 하더니 끝까지 속을 썩이네. 갈 때까지도….”
한 어머니가 ‘웬수 같은’ 아들을 탓하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앞서 주검을 찾은 누구네 아들의 장례가 이미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하염없는 기다림에 지친 엄마들은 “(주검이) 일찍 나오는 것도 복이지”, “그것도 효도야”라며 가슴을 쳤다.
혹시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조금씩 사그러들면서 주검이라도 빨리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 퍼진 듯했다. 24일 진도 팽목항 임시 주검 안치소 앞에서는 망연자실해하는 가족들의 대화가 오갔다. “(가족을) 못 찾은 시신들이 기다리고 있대. 발견된 지 이틀, 삼일 지난 것도 있고. 난 우리 애 찾고 싶은데 키도 안 맞고 옷차림도 안 맞아.”
거세던 조류가 약해져 24시간 수색의 ‘기회’가 열렸던 ‘소조기’의 마지막날, 그래서 합동구조팀이 ‘최대 인원’을 투입해 성과를 내겠다고 했던 24일이 저물고 있었다. “희망이 사라졌어요. 애기 얼굴이라도 멀쩡할 때 한번 봤으면 좋겠어요.” 아들을 아직 품에 안지 못한 최아무개(52)씨가 말없이 담배 연기만 뿜어댔다. 한 대를 다 피우기 무섭게 또 한 개비를 꺼내들었다. 여태 ‘소식’ 없는 막내아들은 애교가 많았다. “아들이 물에 있은 지 벌써 8일이 지났어요. 처음엔 어디 가서 살려달라고 했는데, 이제는 희망이 사라졌어요.”
사고 직후 아들은 제 형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배가 안 움직이고, 수상구조대인가 뭔가 오고 있대.” ‘배가 크게 박살났느냐’는 형의 물음에 동생은 “실내에 있어서 모르겠는데 (스마트폰) 데이터도 잘 안 터져. 지금 해경 왔대”라고 답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사고 9일째. 최씨는 행여나 했던 ‘마음’을 조금씩 접는 중이다. 물살이 평소보다 크게 약해지는 소조기가 끝나가면서 초조함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사망자 수가 실종자 수를 넘어서면서 진도체육관에는 납덩이 같은 침묵만이 감돌았다. 이날 낮 12시30분께 한 학부모가 “오늘같이 날씨 좋은 날 잠수부가 두 명밖에 바다에 안 들어갔대요. (대책본부가 있는) 군청으로 (항의를) 갈 건데 가실 분 없어요?”라고 했지만, 앞으로 나서는 이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사망자가 새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체육관 입구에 마련된 신원확인소로 발길을 서두르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조카를 잃은 삼촌은 계단에 앉아 연신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주검이 뒤바뀐 탓에 안산으로 갔다가 어제 다시 내려왔다고 했다. “우리 아이를 찾은 줄 알아서 다 안산으로 갔는데 같은 반 친구였어요. 얼굴도 거의 비슷해서…. 유전자 검사를 했더니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노란리본’은 팽목항 곳곳에 무심하게 걸려 있었다. 항구 사무소 앞에서 등대까지 이어지는 방파제 난간마다 노란리본이 봄바람을 타고 흔들렸다. 아이들에게 어서 돌아오라는 손짓 같았다.
진도/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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