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 조문객들이 25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안산올림픽기념관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서 추모 글귀를 붙이고 있다. 안산/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해운사·선장 처벌로 끝나면 국민 상처 치유 못해”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지 25일로 열흘째인데,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앉은 뒤 생존 구조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사망·실종자 302명, 시간이 흐르며 사망자 숫자만 늘고 있다. 실종자가 모두 구조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던 많은 시민들이 분노와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다들 ‘희망’이라는 단어를 잊은 듯한 분위기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마치 우리 국민 모두가 희생자의 가족이 된 것처럼 분노와 우울감을 느끼고 있는데, 이게 정신적인 상처를 주고 있다. 이는 세월호 선장이나 승무원, 해운사 관계자 등 몇몇을 처벌해서 풀어질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온 국민의 분노와 우울에 공감하고 위안을 줘야 하는 시기다. 아울러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정부가 조속히 내놔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차차 평정심을 찾을 수 있다.”
■ 공감 아직 피지도 못한 꽃인 고등학생들을 포함해 한꺼번에 수백명이 생때같은 목숨을 잃은 대참사 앞에서 슬퍼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사고 공화국’이라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은 마당에, 또 다른 대형사고가 날까봐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김아무개(53ㆍ서울 대림동)씨는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20여년 전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에는 ‘우리나라가 아직 발전이 덜 돼서’라는 구차한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다. 지난 20년간 경제성장을 비롯해 많은 분야에서 한국이 발전했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이게 뭔가? 사람 생명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 아니냐는 자괴감이 든다. 희생자 가족들한테는 못 미치겠지만 책임을 통감한다. 너무도 슬프다.” 김씨는 마치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처럼 우리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도 그걸 바로잡지 못한 것에 책임감은 물론 죄책감까지 느낀다고 했다. 그는 이번 주말에 안산에 조문을 다녀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숱한 시민들이 김씨 같은 정서적 반응을 보이는 현상을 두고 허찬희 하나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이렇게 짚었다. “배우자의 사망이 정신적으로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상처는 바로 자녀의 사망이라고 할 수 있다. 자녀를 키우는 많은 부모들이 사고 당사자가 아닌데도 이런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안전하지 못한 사회를 만들었다’고 자책하며 우울해하고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울과 불안은 이미 우리 사회에 널리 퍼졌다는 게 중론이다. “정신과를 찾아 치료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온 국민이 슬픔을 함께 느끼며 공감하고 있다. 병원에서 진료를 하다보면 평소 정신질환이 있어 진료를 받는 이들도 이번 세월호 사고로 상처를 받아 우울감이나 불안이 더 심해졌다. 아울러 이 사고 이전에 가족이 사망하는 등 정신적인 상처를 받은 이들도 상처가 덧나는 것 같다.” 이소영 순천향대 부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말이다.
“내 친한 누군가 죽은 것처럼…”
슬픔 함께 느끼며 우울·불안
“또 사고 날까” 걱정도 늘어
정부 책임 회피하려는 태도에
국민들 분노 더 커졌다는 지적도
전문가들 “안전한 삶 신뢰 회복 위한
근본적 해결책 조속히 마련해야”
정신건강 지원체계 구축 제안도
■ 분노 암 등 중병이 진단되면 환자는 처음에는 이를 부정한다. 그러다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렸냐’며 분노한다. 세월호 침몰 초기 정부가 나서 실종자들을 무사히 구출하리라 믿고 바란 국민들도 시간이 흐르자 희망을 잃고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히고 있다. 허찬희 전문의는 이렇게 짚었다. “중병을 진단받은 환자의 정신 상태가 아니더라도, 숱한 생명을 앗아간 대형 사고에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번에 분노가 더 큰 건 세월호 침몰을 막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승객들의 생명을 구할 기회가 몇번이나 있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결국 세월호 선장이나 승무원은 물론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국가 전체에 분노하게 된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줘야 할 정부가 이번 사고의 책임을 선장 등 선박회사한테 돌리려 애쓰는 듯한 행태가 분노를 더욱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 참사로 사망한 사람의 가족이나 상처를 입은 사람들한테는 위로와 공감이 필요하다. 아울러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서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상처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선박회사 등 일부한테만 분노의 화살을 돌리며 책임을 회피한다면 희생자 및 그 가족의 상처가 오히려 더 커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영국의 <가디언>이나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 여러 외국 언론이 지적했듯이 박근혜 대통령이 누구를 탓하기보다는 책임을 통감하고 희생자들을 위로하며 재발 방지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치유 아직 주검조차 수습하지 못한 실종자가 100명이 넘고 대형 참사의 명확한 원인을 밝히지 못한 상황에서,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을 비롯해 국민의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문제를 논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정신적) 상처가 깊어지고 오래도록 남으리라는 우려 섞인 지적이 많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암통합케어 교수는 “암과 같은 중병에 시달리는 환자도 분노를 느끼고 우울해하다가 이를 수용하고 치료하려고 삶을 바꾸는 것처럼, 국가적 재난이나 대형 참사와 관련해서도 정신적인 치유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다시 재난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이 불안감이 다시 분노를 키워 공동체를 깨뜨릴 수 있다. 중병을 예방하는 각종 조처가 생명을 살리는 것처럼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생각으로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암 환자 가운데도 암을 겪은 뒤 오히려 더 건강해지는 사례가 있는 것처럼,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방치하지 말고 오히려 상처를 딛고 ‘성장’하게 되는 사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조언이다. 우종민 인제대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렇게 권고했다. “(정부나 언론이) 몇몇의 잘못을 문제삼아 관련자들을 처벌했으니 불안과 우울에서 벗어나 안심하라는 식으로 국민을 몰아가려 해서는 곤란하다. 참사의 직접적인 희생자를 비롯해 어떤 국민들이 더 많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지, 회복 속도는 어떻게 다른지 따위와 관련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해 이번 기회에 정신건강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한겨레TV] 김어준의 KFC #6 진도VTS와 이종인
“내 친한 누군가 죽은 것처럼…”
슬픔 함께 느끼며 우울·불안
“또 사고 날까” 걱정도 늘어
정부 책임 회피하려는 태도에
국민들 분노 더 커졌다는 지적도
전문가들 “안전한 삶 신뢰 회복 위한
근본적 해결책 조속히 마련해야”
정신건강 지원체계 구축 제안도
■ 분노 암 등 중병이 진단되면 환자는 처음에는 이를 부정한다. 그러다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렸냐’며 분노한다. 세월호 침몰 초기 정부가 나서 실종자들을 무사히 구출하리라 믿고 바란 국민들도 시간이 흐르자 희망을 잃고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히고 있다. 허찬희 전문의는 이렇게 짚었다. “중병을 진단받은 환자의 정신 상태가 아니더라도, 숱한 생명을 앗아간 대형 사고에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번에 분노가 더 큰 건 세월호 침몰을 막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승객들의 생명을 구할 기회가 몇번이나 있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결국 세월호 선장이나 승무원은 물론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국가 전체에 분노하게 된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줘야 할 정부가 이번 사고의 책임을 선장 등 선박회사한테 돌리려 애쓰는 듯한 행태가 분노를 더욱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 참사로 사망한 사람의 가족이나 상처를 입은 사람들한테는 위로와 공감이 필요하다. 아울러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서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상처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선박회사 등 일부한테만 분노의 화살을 돌리며 책임을 회피한다면 희생자 및 그 가족의 상처가 오히려 더 커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영국의 <가디언>이나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 여러 외국 언론이 지적했듯이 박근혜 대통령이 누구를 탓하기보다는 책임을 통감하고 희생자들을 위로하며 재발 방지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치유 아직 주검조차 수습하지 못한 실종자가 100명이 넘고 대형 참사의 명확한 원인을 밝히지 못한 상황에서,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을 비롯해 국민의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문제를 논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정신적) 상처가 깊어지고 오래도록 남으리라는 우려 섞인 지적이 많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암통합케어 교수는 “암과 같은 중병에 시달리는 환자도 분노를 느끼고 우울해하다가 이를 수용하고 치료하려고 삶을 바꾸는 것처럼, 국가적 재난이나 대형 참사와 관련해서도 정신적인 치유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다시 재난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이 불안감이 다시 분노를 키워 공동체를 깨뜨릴 수 있다. 중병을 예방하는 각종 조처가 생명을 살리는 것처럼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생각으로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암 환자 가운데도 암을 겪은 뒤 오히려 더 건강해지는 사례가 있는 것처럼,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방치하지 말고 오히려 상처를 딛고 ‘성장’하게 되는 사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조언이다. 우종민 인제대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렇게 권고했다. “(정부나 언론이) 몇몇의 잘못을 문제삼아 관련자들을 처벌했으니 불안과 우울에서 벗어나 안심하라는 식으로 국민을 몰아가려 해서는 곤란하다. 참사의 직접적인 희생자를 비롯해 어떤 국민들이 더 많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지, 회복 속도는 어떻게 다른지 따위와 관련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해 이번 기회에 정신건강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한겨레TV] 김어준의 KFC #6 진도VTS와 이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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