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사고 다음날인 17일 오후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전남 진도체육관을 찾아 현장 상황 등을 설명하자 한 실종자 가족이 일어나 이야기하고 있다. 진도/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세월호 침몰 참사] 실종자 가족들 격분 왜?
시스템 붕괴, 상황관리 못하며
“잠수사 700명 동원” 떠벌리고
물 뿌린 뒤 인터뷰…‘연출’까지
가족들 “거짓말하지 마라” 분통
정부말만 듣는 언론도 불신자초
시스템 붕괴, 상황관리 못하며
“잠수사 700명 동원” 떠벌리고
물 뿌린 뒤 인터뷰…‘연출’까지
가족들 “거짓말하지 마라” 분통
정부말만 듣는 언론도 불신자초
대통령 면전인데도 격한 고성이 쏟아졌다. 국무총리의 뒤통수엔 물통이 날아들었다. 해양수산부 장관은 8시간 넘게 “거짓말하지 말라”는 항의를 들었다. 해양경찰청장과 차장은 무전기를 뺏기거나 멱살을 잡혔다. 기자들은 쫓겨났고 카메라는 부서졌다.
안전 불감증과 정부의 대응 시스템 붕괴, 업체와 관리·감독 기관의 유착이 드러나면서 결국 ‘이번에도 인재였다’는 결론은 과거 대형 참사 때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세월호 피해 가족들이 정부와 정치권에 느끼는 분노의 수위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가만히 있는 게 구조하는 거냐” “말을 하라고 말을” “살려달라는 거 아니잖아. 바다에서 꺼내달란 거잖아” “당신들이 한 말에 책임을 지라고” “회의만 하지 말고 애들을 구해달라고.”
24일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간 가족들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최상환 해경 차장을 에워쌌다. 가족들의 서슬 퍼런 분노에 고관들은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가족들은 이를 취재하던 기자들을 내쫓았다.
목진휴 국민대 교수(행정학)는 “세월호가 기울어진 때부터 수백명의 승객들이 가라앉는 모습까지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미국인들이 9·11 테러를 지켜보며 느낀 충격을 한국인들도 경험한 것이다. 가족들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국민 전체의 분노가 어느 때보다 큰 것은 그 때문”이라고 했다.
이유는 또 있다. 25일 진도체육관에서 만난 한 실종자 가족은 “대책본부에서 날씨가 좋다고 기대하라고 하더니 수습된 시신이 오히려 줄었다. 우리가 무조건 빨리 다 찾아내라는 것은 아니지 않나. 어려운 점이 있으면 정확히 설명하고 왜 안 되는 것인지 말해줘야 하는데, 자기들도 파악 못 하고 우왕좌왕하며 기다리라고만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해를 구하면 될 것을, ‘숨기고 과장하고 둘러대는’ 일이 반복되자 더이상 정부를 믿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재난 관리의 최종 책임자로서 ‘신뢰’를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가족들은 전날 이주영 장관을 붙들고 “공중파(방송)에 나오는 잠수부 700명을 우리는 모른다. 지금 바닷속에는 잠수부 8명만 투입되지 않았느냐”고 항의했다. 대기중인 인원들과 장비들을 앞세워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정부의 ‘전시성 발표’에 대한 불신이었다. 심지어 해군은 휴식중이던 해난구조대(SSU) 소속 잠수요원에게 잠수복을 다시 입히고 물을 뿌린 뒤 언론 인터뷰를 시키는 등 ‘수색 연출’에 매달리기도 했다. 정부는 25일에도 “선박 224척, 항공기 35대, 잠수요원 727명을 동원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가족들의 불신은 뒤로한 채 대기하고 있는 인원과 장비까지 전부 더한 수치를 계속 발표하며 ‘홍보 효과’를 높이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한 실종자 가족은 “정부보다 언론을 탓하고 싶다”고 했다. 언론들은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며 ‘사상 최대 구조 작전’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는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정부 말만 듣고 우리 이야기는 안 들어주지 않았느냐. 자기들 입맛에 맞게 편집해서 내보낸다”며 극도의 언론 불신을 드러냈다.
상처를 덧나게 하는 선정적 보도도 불신을 자초했다. 21일 밤 ‘손가락 골절된 시신 등 다수 발견’이라는 보도가 나왔지만, 확인 결과 사고 전에 골절상을 입어 깁스를 한 학생의 주검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튿날에도 “필사의 탈출을 하느라 손가락 골절을 당한 시신들이 상당수 발견됐다”는 추측성 과장 보도가 쏟아졌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언론에 대한 불신은 보도가 ‘피해자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한 현재 상황과 구출 방법, 사고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따져야 하는데,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보도와 몇 사람만을 희생양으로 삼는 보도에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목진휴 교수는 “검찰과 언론이 사고의 책임 소재를 선장과 선사, 특정 종교집단 등에 한정하면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정부의 잘못을 덮으려고 시도하면 분노는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송호균 이정국 기자, 진도/최우리 기자 uknow@hani.co.kr
그날 이후 [한겨레포커스]
정홍원 국무총리(가운데 안경 쓴 이)가 17일 새벽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전남 진도체육관을 위로 방문한 뒤 발길을 돌리다 실종자 가족들이 던진 물병에 머리를 맞고 있다. 진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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