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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언니 오빠, 다신 이런 나라에 태어나지 마세요”

등록 2014-04-25 20:11수정 2014-04-26 09:38

세월호 침몰 참사
“서로 이익만 챙기는 사회”
희망·애도 쪽지 쓰던 청소년들
이젠 어른들 향한 분노로 변해
전문가 “기성세대 불신 깊어져”
“언니, 그리고 오빠. 두 번 다시 이런 나라에 태어나지 마세요.”

“잘 가거라~. 형이 꼭 나쁜 어른들과 끝까지 싸워 다시는 슬픈 일이 없도록 할게.”

활짝 피어 보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스러진 언니와 오빠, 그리고 동생과 형을 가슴에 묻은 또래 청소년들의 분노가 커져 가고 있다. 이들은 영정 속에서 웃고 있는 앳된 얼굴들을 물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와 어른들의 행태를 곱씹었다.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를 중심으로 나붙기 시작한 청소년들의 ‘소원지’(쪽지)는 ‘희망’에서 ‘애도’로, 다시 ‘분노’로 변해 가고 있다. 임시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안산올림픽기념관 앞에 놓인 메모판에는 이들의 심리 상태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사고 초기 소원지에는 “기다릴게. 꼭 돌아와라. 이제 같이 공부해서 함께 대학 가야지”라는 등의 염원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수시로 말을 바꾸고 구조 과정에서도 허둥지둥하자, 소원지도 분노로 뒤덮이고 있다.

한 여고 3학년생은 “더러운 대한민국. 이렇게 부끄러운 적이 없었다”는 쪽지 글을 남겼다. 또다른 학생은 “차가운 바닷속에 무서움에 질려 울었을 저희 후배들을 생각하라. 이런 권력에 귀를 막고 눈을 감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싫다”고 적었다. 인터넷과 카카오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훨씬 풍부한 정보를 접하고 있는 이들의 눈에는, 대책도 진정성도 없는 정부의 모습이 불신의 대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청소년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사회 풍토를 질타하기도 했다. 안산 신길중학교 2학년 학생은 “서로 이익만 챙기는 사회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언니 오빠들의 목숨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고 적었다. 또다른 학생은 “도덕을 배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부디 어른들은 비도덕적으로 살지 마세요. 꽃다운 우리들의 목숨이 안전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호소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임시합동분향소가 마련된 23일 오후 경기 안산시 고잔동 올림픽 기념관을 찾은 시민들이 헌화하며 애도하고 있다. 분향소 앞에 길게 줄 선 조문객들. 안산/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세월호 희생자들의 임시합동분향소가 마련된 23일 오후 경기 안산시 고잔동 올림픽 기념관을 찾은 시민들이 헌화하며 애도하고 있다. 분향소 앞에 길게 줄 선 조문객들. 안산/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더딘 구조작업과 무능한 정부에 대한 원망도 빼놓지 않았다.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중 3학년 유아무개군은 “나라에서는 거짓말만 하고 있다. 구조한다고 말만 하고 아무 일도 안 하는 것 같다”고 썼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나라다. 비극이 너무도 많은데 왜 정신을 못 차리는지 모르겠다”는 쪽지도 붙었다. 또다른 학생은 “형, 누나들은 아마도 제일 억울한 것이 공부만 하다가 돌아가신 걸 거예요. 공부하다 머리 식히러 갔을 텐데…”라고 적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윤철경 연구위원은 “사실상 ‘공부하는 동물’로 사육당하는 청소년들은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스스로 판단하고 위험에서 벗어날지를 가르치지 않은 어른들을 질타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기성세대를 불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슬프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1년 사이에도 청소년들이 사고로 희생되는 일이 잇따랐다. 지난해 7월18일 충남 태안군 안면도의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교육을 받던 고교생 5명이 교관의 지시에 따라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바다로 들어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숨졌다. 지난 2월17일에는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이 붕괴돼 부산외국어대 신입생 등 10명이 숨지고 124명이 다쳤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로 숨지거나 실종된 단원고 학생은 250명에 이른다.

안산/김기성 김일우 홍용덕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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