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한 지 12일째인 27일까지, 국정운영의 최고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단 한번도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 다만 박 대통령은 “학생들이 불행한 사고를 당해 참담한 심정을 느끼”며(4월16일), “얼마나 애가 타겠느냐”(17일)고 실종자 가족을 위로했다. 이번 세월호 침몰 이후 정부 차원의 사과는 정홍원 총리에게서만 나왔다. 박 대통령이 정부의 부실 대응을 질타한 다음날인 22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비통함과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했고, 이어 27일 사의를 표명하면서 “유가족 여러분께 마음 깊이 진심으로 사죄를 드린다”고 거듭 사과했다.
대통령의 침묵과 국무총리의 ‘대리 사과’는 역대 정권이 대형 참사를 수습했던 방식과는 다르다. 대형 참사를 많이 겪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사고가 터지면 사과부터 했다. 1993년 10월10일 서해훼리호 침몰로 292명이 숨졌을 때, 김 전 대통령은 이틀 뒤 사고 현장을 방문해 “국민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였고, 같은 달 19일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다시 한번 사과했다. 김 전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날, 교통부 장관과 해운항만청장이 경질됐다.
1994년 10월21일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도, 김 전 대통령은 사고 사흘 뒤 ‘대국민 담화문’을 텔레비전을 통해 발표하면서 “국민께 많은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참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김대중 정권에선 1999년 6월30일 청소년수련원인 씨랜드 화재 사고로 유치원생과 교사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김 전 대통령은 다음날 부인 이희호씨와 함께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대통령으로서 미안하다. 무슨 말로도 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할 수 없는 비통한 심정”이라고 고개를 숙인 뒤,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책임자를 분명히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를 비롯한 내각에 책임을 묻지는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사과를 아끼지 않았다. 대통령 당선인 시절이던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으로 34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사고 사흘 뒤 열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의에서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다”며 “국민에게 죄인 된 심정으로 사후 대처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재난을 총괄하는 소방방재청이 신설되고,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안에 통일·외교·안보 현안과 더불어 안전·재난 관리까지 위기관리시스템 총괄 역할을 맡게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군 장병 46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천안함 침몰 사고(2010년 3월26일) 당시, ‘뒤늦은’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사고 24일 만인 4월19일 ‘천안함 희생장병 추모 연설’에서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서 무한한 책임과 아픔을 통감한다”고 말하며 희생자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기도 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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