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팟캐스트 ‘이승욱의 공공상담소’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의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승욱의 공공상담소 제공
정신분석가 이승욱씨 이야기모임
책임 회피 급급 ‘어른들 세계’ 비판
책임 회피 급급 ‘어른들 세계’ 비판
‘세월호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는 현실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았다.
26일 오후 2시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 시민 50여명이 ‘각자의 세월호’를 이끌고 나타났다. 팟캐스트를 통해 ‘이승욱의 공공상담소’를 진행하는 정신분석가 이승욱씨가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모임의 주제는 ‘세월호를 구하기 위한 마음의 연대체 만들기’였다. 이씨는 “어떤 주제라도 좋으니,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털어놓자”고 제안했다.
3시간에 걸쳐 시민들은 ‘세월호와 나’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희망이 들어설 자리는 좁았다. 미리 막지 못해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린 참사에서 느끼는 무력감, 제대로 된 수색도 안 된다는 현재 상황에 대한 불신, 이 사건도 언제가 잊혀질 거라는 미래의 망각을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대학생 윤세영씨는 무력감을 토로했다. “이렇게 한번 난리 치고 또 금방 수그러들 거잖아요. 저는 좀 못 믿겠습니다.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또 뭘 하더라도 과연 바뀔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윤씨는 사고 뒤로 휴대전화에 뜨는 속보나 뉴스를 챙겨 보지 않는다고 했다. 대학생 홍유리씨도 순식간에 달아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냄비 근성’을 지적했다. “금방 잊혀질 거 같아요. 근본적인 것은 고치지 않는데 수학여행만 안 보내면 그만일까요? 사고를 접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분노 역시 느껴요”라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인 김채영양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어른들의 세계’를 꼬집었다. “우리도 곧 어른이 되는 문턱에 있잖아요. 우리가 그동안 ‘책임지는 것’에 대해 배워왔는지 친구들과 얘기를 나눴어요. 어른들은 언제, 어떻게 책임에 대해 배웠을까요? 나는 어떻게 책임이라는 것을 배우고 살아야 할까요?”
한 학부모는 “세월호 침몰 장면이 우리의 교육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숨이 멎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중·고생 자녀를 둔 엄마인 노성희(44)씨의 얘기다. “학교에서는 꿈이나 희망 같은 멋있는 말들을 모아서 교육을 시키겠다고 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럴 때마다 ‘내가 아이를 생매장시키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노씨는 “아이들을 그 속에 밀어넣도록 공모한 어른들이 마치 약자나 희생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게 굉장히 비열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슬픔과 분노 끝에 세월호의 교훈이 잊혀질까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대학생 정민지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기사를 보면서 2~3일간 아무것도 못하고 울었더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이 사건을 잊어버리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그럼 안 되는 거잖아요.”
우리가 진정 분노하는 것은 무엇인지, 정녕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두고 긴 이야기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서로 손을 잡고 희생자들을 위해 고개 숙여 묵념을 했다. 작은 ‘마음의 연대체’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이승욱씨는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연대의 기운을 느끼고 가신다면 좋겠다”고 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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