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아버지는 바다를 보고 말했다 “나도 아들을 데려가고 싶어”

등록 2014-04-29 21:45수정 2014-04-30 12:56

29일 오후 전남 진도군 조도면 세월호 침몰 현장 부표 주변에서 구조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9일 오후 전남 진도군 조도면 세월호 침몰 현장 부표 주변에서 구조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르포 l 세월호 구조 현장
“다이버, 다이버, 잘 들려요?”

알파잠수기술공사 이종인(54)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잠수요원들을 불렀다. 잠수요원들은 ‘다이빙벨’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를 향해 ‘오케이’ 신호를 보냈다. 잠수 준비가 시작됐다. 오리발을 신고 공기통을 멨다. 높이 3m, 폭 2.4m, 커다란 종 모양의 노란색 다이빙벨에는 수면 위 바지선과 잠수요원들을 연결하는 ‘생명줄’들이 이어져 있었다. 통신선, 전기선, 압축공기를 공급하는 호스가 장시간 수중 작업을 돕는다고 했다. 이종인 대표가 작은 모니터에 비치는 다이빙벨 속 잠수요원의 모습을 살폈다. 그러다 수중크레인을 향해 손짓을 했다. “자, 내려갑니다.”

29일 낮 12시 전남 진도군 관매도 앞바다에서는 세월호 수색 ‘실전 투입’에 앞서 민간 잠수요원들의 ‘적응 훈련’이 한창이었다. 자원봉사에 나선 민간 잠수요원들은 다이빙벨 사용이 처음이다. 쇠사슬 4개로 묶인 다이빙벨이 크레인에 들려 수중으로 투입되자, 다이빙벨 내부는 물론 이를 모니터하는 바지선 위에도 긴장이 감돌았다. “줄 걸렸어.” “조심해.” 이 대표는 잠수요원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와 다이빙벨 내부의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체크했다. “형상이 될 만한 것을 비춰봐.”

훈련 시간은 10분이었다. 수심이 10m여밖에 되지 않아 훈련 시간이 짧았다. 다이빙벨을 타고 다시 물 밖으로 나온 김명기(36)씨는 “조류와 유속의 영향을 덜 받아 다이버가 안전하게 선체에 진입할 수 있을 것 같다. 40~50분은 작업할 수 있는 걸로 보인다”고 했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 세월호 침몰 참사 현장 인근 관매도 앞바다에서 29일 오후 다이빙벨 투입에 앞서 작동 시험이 이뤄지고 있다.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전남 진도군 조도면 세월호 침몰 참사 현장 인근 관매도 앞바다에서 29일 오후 다이빙벨 투입에 앞서 작동 시험이 이뤄지고 있다.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다이빙벨 실은 바지선
현장 도착했지만
파도 거세 투입 못해
“잦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함께 간 실종자 부모 2명
속이 새카맣게 타버렸다
“제주도 간다고 좋아했는데…
용돈 5만원 주고…”

이날 오전 6시께 다이빙벨을 실은 바지선이 진도 팽목항을 떠났다. 25일 1차 투입 실패에 이어 두번째 시도에 나선 것이다. 바지선 양쪽에는 방향을 잡아주기 위한 35t 예인선 2대가 붙었다. 엔진 소리가 커질수록 먼저 주검이 되어 도착한 이들이 누워 있던 팽목항의 하얀 천막들이 흰 점으로 변해갔다. 바지선에는 자원봉사 민간 잠수요원 3명과 실종자 학부모 2명이 승선했다.

아버지는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김아무개(42)씨는 아들과 주고받은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잊지 못한다. “사고 전날 문자가 왔어요. 애들이 자주 쓰는 ‘ㅎㅎ’ 있잖아요. 그거랑 같이.” 아들은 ‘아버지 용돈 주셔서 감사해요. 제주도 가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친구들이랑 추억 만들고 올게요’라고 했다. 아버지는 답장을 보냈다. “그래, 위험하니까 바깥에서 뛰어다니지 말고, 안쪽으로 다녀라.” 자꾸 아들 생각이 나서 문자메시지를 지웠지만, 그래도 자꾸만 생각이 난다고 했다.

아버지는 후회했다. “잘해준 것도 없고, 강하게만 키우려고 했어요. 어디 가서 꿀리지 않게 키우려고 했어요. 제주도를 배로 간다기에 불안했는데…. 그래도 첫 제주도 여행이니까 그냥 보낸 건데….” 아버지는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보였다. “어제 작은딸이 울면서 전화를 하더라고요. 오빠한테 아무리 카카오톡을 보내도 답장이 없다고 하는데 그 마음은 정말….”

하나뿐인 아들 승현이를 찾지 못하고 있는 백용성(50)씨의 속도 새카맣게 타버렸다. “사고 전날 승현이랑 통화했어요. 안개 때문에 출발 못하고 있다고. 휴대전화 배터리가 없다고 해서 끊었죠. 제주도 간다고 엄청 좋아했어요. 용돈 5만원 주고, 체크카드에도 5만원을 더 넣어줬어요.”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오후 2시께 아버지들을 실은 바지선으로 주검들이 추가로 수습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이들은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고 했다. 배에서 가장 높은 5층 로비에서 발견됐다는 말도 전해졌다. 깊은 한숨 속에 대화가 이어졌다. “5층에는 애들 방이 없었어. 4층에 있던 아이들이 5층으로 올라왔을 수도 있어”, “애들이 나왔으면 다행이고…. 신원 확인이 되면 어느 반인 줄 알 거 아니야.” 두 아이는 모두 8반, 같은 반 친구였다. 8반 아이들 객실은 4층 선수 쪽이었다.

오후 2시15분께 도착한 침몰 해역에선 파도가 높이 일렁였다. 다이빙벨 자체 무게만 3t이다. 여기에 조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2t 무게의 추를 더 달았다. 그런데도 파도가 셌다. 다이빙벨은 투입되지 못했다. 이 대표는 “합동구조팀 다이버들이 수색을 하고 있어서 침몰 지점에 바지선을 접안시킬 수가 없다. (접안을 시키더라도) 파도가 잦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다시 접안을 시도한 건 오후 5시55분께였다. 다이빙벨은 수면 위에서 멈췄다. 40여m 아래에는 세월호의 선미가 옆으로 누워 있을 것이다.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배는 합동구조팀 쪽 바지선과 위태롭게 부딪혔다. 군인들이 타고 있는 고무보트 5척이 주변을 맴돌았다. 해경 함정과 어선 10여척도 사고 해역을 지키고 있었다.

조류가 약해진 밤 8시40분~밤 9시 사이에 바지선과 세월호를 연결하는 가이드라인(안내줄)이 추가로 연결됐다.

날은 어두워지고 파도는 다시 거칠어졌다. 김씨는 바다를 향해 나지막이 내뱉었다. “갑자기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나도 아들을 빨리 데려가고 싶어.”

진도/서영지 기자 yj@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