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한 사망·실종자는 모두 302명이다.(1일 오전 기준) 여기에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250명이 포함돼 있다.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325명의 단원고 학생 가운데 75명만 살아남았다. 반면 47명의 선박직 선원(15명), 화물 기사(32명)는 거의 대부분 살았다. 화물 기사 한명이 1일 현재 실종 상태일 따름이다. 단원고 학생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의 지시에 따라 얌전히 죽어갈 때, 세월호 내부 구조에 환한 선원과 단골 화물 기사는 배에서 빠져나왔다.
<한겨레> 취재 결과를 보면, 한국에서는 최근 5년간 5998명의 19살 이하 어린이·청소년이 사고로 숨졌다. 4월16일 진도 앞바다에서 모습을 감춘 단원고 학생들처럼, 한국에서는 수많은 아이들이 채 성인이 되기 전에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스러지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또 하나의 ‘재난’이다.
한국의 높은 어린이·청소년 사망률에 관한 분석은 다양하다. 먼저 투표권 없는 어린이·청소년을 ‘짐’으로 여기는 정부·정치권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윤인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어린이·청소년 보호에 쓸 수 있는 정부 예산 자체가 터무니없이 적고, 그렇다 보니 관련 물적 인프라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는 직접 책임져야 할 어린이·청소년 사업을 지방정부에 떠넘기거나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룰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은 경북 칠곡 계모사건과 울산 계모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며, 어린이·청소년 안전 대책 마련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던 시점이었다. 정치권은 아동복지법 개정을 통해 아동보호전문기관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어린이·청소년을 부모 학대 등 범죄로부터 막아주는 구실을 맡는 이 기관을 전국 모든 시·군·구마다 1개씩 설치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문제는 재원 대책이었다. 아동보호기관만큼은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야당이나 시민사회단체 요구와 달리 정부는 이를 지방자치단체에 맡겼다. 당장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설립과 유지라는 또다른 숙제만 떠안게 됐다.
어린이·청소년 대상의 대형 사건·사고가 터지면 대책 마련에 호들갑을 떨지만, 실제 마련한 대책을 집행할 때에는 흐지부지되는 일이 많은 이유는 역시 어른에게 있다.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서천석 서울신경정신과 원장은 “투표권이 없는 아이들은 정책 논의와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어린이·청소년 관련 사업은 정책의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정부 차원에서 이런저런 기구를 꾸릴 텐데, 분명 이곳들도 실제로는 성인을 중심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와 달리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린이·청소년을 똑같은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존중한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태어나는 그 순간이다. 한국에서는 각 가정에서 알아서 출생신고를 하는 반면, 미국은 출산과 함께 병원에서 이를 처리한다. 이순형 서울대 교수(가정복지학)는 “미국의 경우 각 병원이 자체적으로 신생아에 대한 출생신고를 하면서, 한국에서 종종 발생하는 신생아 유기 등 ‘사회적 공백’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또 병원에서 태어날 때부터 ‘리스크 차일드’(건강상 문제가 있는 신생아)를 추려 꾸준히 추적·관리한다”고 말했다. 이는 영유아에게 더욱 치명적일 수 있는 질병과 사고를 부모에게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태도인 것이다.
법과 제도를 정비하거나 마련하기에 앞서, 좀더 근본적으로 아동권리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석주 부산대 교수(응급의학)는 “대형 재난이 벌어져 많은 아이들이 희생당하면 재난 컨트롤타워 등이 필요하다는 등 주로 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특정 기구가 잘 마련돼 있다고 해서 모든 사건·사고를 예방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각 부처에서는 담당 공무원이, 또 학교 현장에서는 선생님이, 병원에서는 의사와 간호사 등 모든 어른이 좀더 책임감, 책임의식을 갖고 각기 다른 상황에 맞게 어린이·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현아 숙명여대 교수(한국아동권리학회 이사)는 세월호 침몰사고 결과 등 한국의 높은 어린이·청소년 사망률과 관련해 “이건 이미 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흔히 말하는 아동권리에는 생존권과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 등이 있는데, 세월호 참사를 보면 아이들은 기성세대한테서 두가지 가장 중요한 권리인 생존권과 보호권을 부여받지 못했다. 늘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른 말씀 잘 들어라’는 의무만 부여했지, 그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아 온 것이다.”
최성진 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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