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의 ‘슬픈 어버이날’
빨간 꽃 대신 노란 리본만…
빨간 꽃 대신 노란 리본만…
속 썩이던 17살 자식이 돌아만 온다면, 다 큰 녀석이지만 어린이날을 핑계로 최신형 스마트폰이라도 사서 안겨주고 싶었다. ‘빨간날’이라며 친구들과 어디론가 내뺐을 어린이날이 지나자 무심하게도 어버이날이 찾아왔다.
8일 오후 4시 진도 팽목항. 앞세운 자식을 물속에서 꺼내주지도 못하는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자식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두 어머니가 바다를 향해 섰다. 어머니들은 카네이션을 바다로 던져 보냈다. 몇 송이는 노란 ‘꽃길’로 변한 팽목항 방파제 안전펜스에 리본과 함께 묶었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어서 나와 까맣게 탄 엄마 가슴에 빨간 꽃 한 송이 달아달라는 마음을 아이들이 알까 싶었다. 카네이션 핀에 아프게 찔려도 좋을 그 마음을.
이날 이른 아침, 팽목항 방파제 펜스에 단원고 나강민(17)군의 부모가 노란 리본을 달았다. 강민이에게 전하는 글도 힘겹게 눌러썼다. ‘강민아 빨리 나와. 아빠 카네이션 달아줘야지.’ ‘보고 싶다 아들. 엄마도 카네이션 달아줘야지.’ 노란 꽃길마다 아이를 기다리는 절절한 심정이 빨간 꽃이 되어 애절하게 나부꼈다. 어느 어머니는 ‘내일이면 엄마 품에 빨간 카네이션 되어 돌아오겠니’라고 썼다.
단원고 박아무개(16)군의 어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팽목항 방파제를 찾았다. 어버이날에도 엄마는 아들에게 줄 신발을 가슴에 품고 방파제에 섰다. 남편이 함께했다. 자꾸 아들의 이름을 부르던 어머니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아들의 이름은 거센 바닷바람에 허공으로 흩어졌다.
자식을 잃고 맞은 첫 어버이날, 날씨마저 야속했다. 물살이 약해진다더니 오히려 추가 수습 ‘소식’은 뚝 끊겼다. 혹시나 자식들의 차갑게 식은 몸이라도 만져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부모의 마음처럼 시커먼 파도만 철썩였다.
수백만 송이가 팔렸을 카네이션을 5월 진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나이 지긋한 자원봉사자들의 가슴에도 카네이션은 없다. 자원봉사를 나온 한희숙(59)씨는 아침에 자식들이 건넨 카네이션을 달고 나오지 못했다. “차마 달고 올 수 없었다”고 했다. 민선옥(50)씨도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님들의 아픔을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에 카네이션을 달지 않았다”고 했다. 가슴에 달고 온 카네이션을 잠시 잊었던 이들은 팽목항의 노란 꽃길을 보고는 서둘러 카네이션을 주머니에 접어 넣었다. ‘세월호 아이들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하는 전북의 어버이들’ 36명이 팽목항에서 실종자들을 위로하는 노란 종이배를 띄웠다. 이들 가슴에는 카네이션 대신 노란 리본이 달렸다.
바닷물을 따라 흘러갔던 카네이션 몇 송이가 물결에 밀려 다시 팽목항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보냈을까. 시리디시린 어버이날, 아빠 엄마들 가슴이 아프게,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진도/이재욱 진명선 기자 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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