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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우리 아이 마지막 효도하려나’…부모들 밤샘 기다림

등록 2014-05-09 20:10수정 2014-05-09 22:52

9일 오전 전남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바다 쪽을 향해 아직 찾지 못한 아이의 이름을 부르다 눈물짓고 있다. 진도/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9일 오전 전남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바다 쪽을 향해 아직 찾지 못한 아이의 이름을 부르다 눈물짓고 있다. 진도/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잠들지 못하는 진도의 밤
늦은 밤 주검 실은 뱃소리에
가족들 확인소 모여 이동 지켜봐
신원확인 전화 기다리는 가족들
새벽 늦도록 체육관 주변 서성여
어버이날이 지나갔다. 9일로 넘어가는 밤, 전남 진도체육관에서 딸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수습된 주검을 알리는 게시판을 둘러보고는 체육관 앞쪽 단상에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부은 얼굴로 “오늘은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래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체육관 안을 환하게 밝히던 조명이 자정께 모두 꺼졌다. 체육관의 ‘밤’이 비로소 시작됐지만, 몸을 뒤척이던 어머니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손목을 주무르다가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아버지는 체육관 불이 꺼지기 전 딸의 소식을 들었다. ‘273번째 수습된 희생자’ 공지가 체육관 단상 쪽에 설치된 텔레비전 스크린에 떴다. 주검 수습 소식이 전해지자 체육관에 띄엄띄엄 섬처럼 흩어져 있던 30여명의 가족들이 파도가 일듯 크게 술렁였다. 딸을 기다리는 다른 아버지들과 함께 게시판에 붙은 ‘주검 공지문’을 보며 “맞다”, “아니다”라며 우울한 토론을 끝낸 아버지는 휘청휘청 팽목항으로 이동할 차를 찾았다. 안산시청이 설치한 천막에서 24시간 대기하고 있던 공무원이 자율방범대 차량으로 안내했다. 체육관에 머물며 가까워진 다른 실종자 아버지가 같이 차에 올랐다.

새벽 1시. 짙은 어둠이 내린 팽목항에 기적 소리가 길게 울렸다. 세월호에서 수습한 주검을 싣고 온 배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배에서 내려진 주검이 구급차에 실렸다. 걸어서 2~3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를, 구급차는 한없이 조심스레 움직였다. 경찰이 지키고 선 신원확인소가 바빠졌다. 구급차에서 주검이 내려지자 신원확인소 옆 가족대기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가족들은 주검을 확인하지 않았다. 통곡도 없었다. 주검이 유전자(DNA) 검사 등을 위해 검안소로 들어가는 모습만 지켜봤다. 소방대원은 “사고 초기와 달리 육안으로 가족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 때문에 가족들에게 주검을 보여주지 않는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오면 그때 다시 와서 주검을 보게 된다”고 했다. 유전자 검사에는 15시간 정도가 걸린다. 가족의 주검이 맞기를 바라는 마지막 기다림은 생사를 몰랐던 23일간의 기다림만큼이나 가혹하다.

새벽 2시. 팽목항에서 체육관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딸이 맞다’는 전화를 기다리는 듯 휴대전화만 한참 들여다봤다. 30분 뒤 자리에 누웠지만 새벽 3시께 다시 일어나 체육관 밖을 서성였다. 사흘 전만 해도 “자식도 못 찾고 있는데 소지품만 찾으면 뭐하냐”며 화를 냈던 그는, 혹시 어버이날이 가기 전 딸이 마지막 효도를 하러 돌아온 게 아닐까 싶어 말없이 전전긍긍했다.

전날 밤 9시께 아들로 보이는 주검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팽목항으로 갔던 어머니가 새벽 2시가 다 돼서야 남편과 함께 체육관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카카오톡 프로필에 ‘사랑해 내 특별한 아들…♡. 영혼은 천국으로 육신은 내 품으로…’라고 적어 놓았다. 체육관에 머물고 있는 안산 단원고 교사들이 소식을 듣고 부부를 찾아 얘기를 나눴다. 어머니가 훌쩍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작은 체구였지만 “식사 맛있게 하세요”라며 밝게 인사를 건넬 정도로 꿋꿋했던 어머니는 어렵게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두운 체육관에서 무릎을 세우고 앉아 하얗게 부서지는 모니터를 말없이 응시하는 가족들도 자리에 누웠다. 새벽 3시. 며느리를 잃은 시어머니가 힘겹게 일어났다. 서울에서 일을 보고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 집으로 돌아오던 며느리를, 시어머니는 딸을 찾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다. 진도의 밤은 잠들지 못했다.

진도/진명선 이재욱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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