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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진도VTS ‘무교신 깜깜 운항’ 2시간 방치…초동 대처 실패

등록 2014-05-11 22:28수정 2014-05-12 10:34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세월호 참사 6대 책임자
➋ 해경
세월호 참사는 해양 재난대응 시스템의 전면 개혁을 불가피하게 만들 정도로, 정부의 구조 체계 난맥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 중심에 해경이 있다.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사고와 같은 침몰에 긴급 대응하기 위해 ‘선박과의 상시 교신망’을 확보하는 해상교통관제센터(VTS)를 권역별로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해경이 직접 관할하는 진도 관제센터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던 세월호의 이상 징후를 전혀 포착해내지 못했다.

진도 관제센터는 사고 발생 2시간 전인 4월16일 오전 7시8분 세월호가 자신들의 관할 해역인 전남 신안군 흑산도 근처 해역에 진입한 사실을 레이더를 통해 봤다. 규정에 따랐다면, 세월호는 곧바로 진도 관제센터에 해역 진입 사실을 보고해야 했지만 아무런 보고를 하지 않았다. 진도 관제센터 역시 세월호의 ‘무보고’를 그대로 묵인했다. 진도 관제센터와 세월호 사이의 ‘무교신 깜깜이’ 운항은 침몰 직후까지 2시간 동안이나 지속됐다.

사고 발생 초기 인명 구조를 위한 천금 같은 시간(골든타임)을 놓친 것은 세월호 관제에 손을 놓고 있었던 진도 관제센터의 직무유기 탓이 크다. 불과 20㎞ 거리에 있던 세월호를 관제하지 않은 탓에 해경은 관할 해역에서 벌어진 대형 여객선 침몰 사고를 해양수산부가 관할하는 제주 관제센터로부터 전해듣는 처지가 됐다. 제주 관제센터는 사고 지점에서 90㎞나 떨어져 있었다. 제주 관제센터가 세월호의 신고를 접수한 시간은 오전 8시55분, 진도 관제센터가 이 사실을 전해듣고 세월호와 교신을 시작한 시간은 12분이나 지난 9시7분이었다. ‘12분’은 진도 관제센터가 오전 7시8분부터 관제만 제대로 했어도 허송하지 않았을 또 다른 ‘골든타임’이었다. 이 때문인지 해경은 사고 이후 진도 관제센터가 세월호와 교신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를 지적하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사고 발생 5일째에야 마지못해 이를 공개했다.

해경은 또 관할 해역을 지나는 배가 급선회하거나 기울게 되면 자동으로 경보가 울리는 장비(지능형 해상교통시스템 ‘위험경보 분석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진도 관제센터의 이 장비는 세월호 사고 나흘 전 고장이 났음에도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이 때문에 진도 관제센터는 세월호의 급변침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렸다.

20㎞거리에 있던 세월호 관제안해
90㎞밖 제주VTS서 침몰 전해들어
급변침 경보장치 고장 알고도 그냥 둬
최초 신고 학생에 아무것도 안알려

결국 해경은 자신들이 갖추고 있던 첨단 관제 시스템이 아니라 세월호에 타고 있던 단원고 최덕하(17·사망)군이 오전 8시52분에 누른 ‘119 신고’ 내용을 넘겨받고서야 눈앞의 재난을 파악하게 된다. 그런데도 해경은 다시 최군의 전화에 대고 “경도와 위도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며 위치를 파악하느라 또다시 6분을 허비한다.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해경은 최군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해경의 실패는 구조 과정에서도 되풀이됐다. 해경은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침몰 사고’에 투입돼야 할 해경특공대는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도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해경은 오전 8시58분 수중 구조가 가능한 특공대원 7명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으나, 이들을 태우고 사고 해역으로 가야 할 해경 헬기는 특공대원들이 도착하기 전에 항공구조사 2명만 태우고 급히 이륙해 버렸다. 사고 상황과 구조 임무를 공유하는 연락 체계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최고 속도 296㎞까지 낼 수 있는 헬기가 특공대원 없이 사고 해역에 도착한 시간은 9시30분이었다. 당시 세월호 선체는 이미 45도 각도로 기울었지만, 특공대원이 투입됐다면 선체 내 승객들까지도 긴급 대피나 일부 구조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100t급 해경 경비정(123정)이 사고 해역에 도착한 시간은 9시35분이었다. 당시 객실에 있던 학생들은 불과 1시간 뒤 자신들에게 닥칠 상황도 모른 채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해경은 세월호 이준석 선장과 승무원들을 먼저 구조했고, 이 장면을 지켜보며 객실 안에서 유리창을 두드리던 승객들은 구해내지 못했다.

전체 구조자(172명)의 절반이 넘는 90여명의 목숨을 구한 것은 오전 10시께 달려온 어선들이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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