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2시50분께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차려진 정부합동분향소 주변 천막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숨진 한윤지(29·여)씨의 아버지 판만차이(62·베트남)씨가 딸 판록한(24)씨와 함께 아직도 실종된 사위와 손자를 찾아달라는 손 팻말을 들고 서 있다. 안산/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사고뒤 손녀 지연양만 구조돼
한국에 시집온 딸은 주검으로
한국에 시집온 딸은 주검으로
‘찾아 주세요. 사위 권재근, 손자 혁규.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있나 봐요. 저는 베트남에서 왔어요.’
25일 오후 2시께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차려진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 들머리에 베트남에서 온 아버지 판만차이(62)씨와 딸 판록한(24)씨가 손팻말을 들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사위 권재근(51)씨와 손자 혁규(6)군을 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한 달이 넘게 언니의 장례식도 못 치르고 있어요. 함께 장례라도 치를 수 있게 빨리 형부와 조카를 찾아주세요.” 딸 판록한씨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판록한씨의 언니 한윤지(29)씨는 8년6개월 전,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겠다며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곧 남편 권씨와의 사이에서 아들 혁규(6)군과 딸 지연(5)양을 낳았다. 서울에서 공장일 등을 하며 힘들게 생계를 꾸려 나갔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남편 권씨는 조금씩 모은 돈으로 제주도에 땅을 조금 사서 감귤 농사를 지을 계획을 세웠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가족을 모두 데리고 제주도로 이사가기로 했다.
그는 지난달 15일 살림살이를 실은 화물트럭을 싣고 가족들과 함께 인천에서 ’세월호’에 몸을 실었다. 남편 권씨는 세월호를 타기 전 장인어른인 판만차이씨에게 전화를 해 “제주도로 이사를 마치고 5월에는 베트남에 한 번 찾아뵙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이 탄 세월호는 다음날 차가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딸 지연양만 구조됐다. 어머니 한씨는 지난달 23일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아버지 권씨와 아들 혁규군은 40일째 발견되지 않고 있다. 여섯 살인 혁규군은 사고 당시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여동생에게 건넸다. 유일하게 구조돼 서울의 친척집에 머물고 있는 지연이는 아직까지 아빠와 엄마, 오빠의 소식을 모른다. 숨진 어머니 한씨는 전남 진도 팽목항 임시 시신 안치소에서 남편과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함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서다.
경기도 수원 장안구의 친척집에 머물고 있는 판만차이씨와 판록한씨는 가끔씩 진도를 왔다갔다하며 사위와 손자이면서 형부와 조카인 그들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가 세월호 침몰 사고 40일째인 25일,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 와서 그들을 찾아달라며 손팻말을 들었다.
이날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하던 판록한씨는 언니의 위패와 영정 앞에서 엉엉 울다가 “언니의 사진을 좀 주세요”라고 말했다. 안산시는 한윤지씨의 영정 사진을 구해 액자에 넣어 판록한씨에게 줬다. 그는 “처음 언니가 발견됐을 때는 여전히 예뻤고 마치 잠을 자는 듯한 편안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어제 언니를 보니까 너무 상해 있더라. 빨리 다른 가족들을 찾아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고 울먹였다. 오후 4시30분, 판록한씨가 언니 영정을 가슴에 안고 서럽게 울자, 천막 밖에는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안산/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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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4시30분께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차려진 정부합동분향소 주변 천막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언니 한윤지(29)씨를 잃은 여동생 판록한(24·베트남)씨가 언니의 영정을 가슴에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안산/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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