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40일간의 ‘4월16일’
기자마저도 설마설마했던 참사
곡예운전 끝에 도착한 단원고엔
부모들이 애태우고 있었습니다 두려워하는 학생 잡아놓고
“친구들은? 선생님은?”
하이에나처럼 달려든 기자들에게
단원고 학생이 호통쳤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유가족들은 애절한 눈망울로
진실을 밝혀달라며 호소합니다
그리고 분노합니다
설마는 기도로, 절망과 슬픔은 분노로 이어진 시간이었습니다. 먹먹하다는 말은 이제 사치가 돼 버린 지 오랩니다.
지난달 16일 오전 ‘여객선 침몰중’이란 속보가 나왔습니다. 혼잣말로 “설마, 설마”를 되뇌며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에 들어섰습니다. 경기도 안산 단원고로 향하는 길은 답답한 마음처럼 꽉 막혀 있었습니다.
갓길로 곡예운전을 하며 단원고에 다다랐을 때 학부모들의 애끊는 절규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세월호의 모습이 생중계됐습니다. 학교 4층 강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희망도 너나없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나 붙들고 “내 새끼 좀 살려주세요”라고 울부짖는 어머니, 기름때로 찌든 작업복에 굵은 눈물을 쏟으며 오열하는 아버지, “대통령님, 제발 우리 손주 좀 빨리 꺼내 주시오”라고 가슴을 치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엄마, 엄마, 우리 오빠 어떻게 해?”라며 발을 구르는 앳된 여중생….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세월호의 모습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부모들의 절규는 처참하기만 했습니다.
한 어머니가 애타게 기다리던 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 괜찮아? 다른 아이들은?”이라고 물었습니다. 딸은 답했습니다. “엄마, 나만 나온 거 같아. 어떡하지? 선생님도, 친구 △△도 안 보여…”라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두려움에 가득한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오자 학부모들은 타들어가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애를 태웠습니다.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고무줄 발표’와 무책임한 보도로 천당과 지옥을 오간 학부모들은 ‘제발, 제발…’이란 말만 반복하며 가슴을 쥐어뜯었습니다. “더 이상 무능한 정부를 못 믿겠다”고 결론을 내린 학부모들은 전남 진도행 버스에 떨리는 가슴을 안고 올랐습니다. 비록 ‘전원 구조’라는 소식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는 구조될 수 있다’고 믿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 ‘희망 버스’는 기가 막히게도 불과 몇 시간 뒤 ‘절망과 슬픔의 버스’로 바뀌었습니다.
하루 뒤인 17일 오전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즐거운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학생 가운데 3명이 가장 먼저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아이들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탓입니다. 모두 같은 반 학생이었습니다. 가족들의 오열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단원고 1층 현관에는 커다란 종이 한 장이 나붙었습니다. 안산시내 장례식장 현황판이었습니다. 10여곳에 안치된 학생들의 이름이 하나둘씩 적혀 나갔습니다. 혹시나 하며 학교를 찾은 사람들은 이 하얀 종이를 보고 또다시 주저앉았습니다. 학교에서 만난 한 노인은 “1980년 5월 광주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며 흐느꼈습니다.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초췌한 모습의 50대 남성은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녀석들아 ‘잘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갔으면 ‘잘 다녀왔습니다’ 하고 돌아와야지….” 이 말을 들은 장례식장 직원도, 다른 빈소를 찾은 주민들도 서로 흐느끼고 울었습니다.
그러나 기자들은 냉정했습니다. 울부짖는 가족과 어린 희생자의 친구를 붙들고 ‘소감’을 묻기도 했고,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습니다. 부끄럽고 안타까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쓰는 저희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입원한 학생을 인터뷰하기 위해 병원 근처를 어슬렁거렸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 학생들을 잡아놓고 묻고 또 물었습니다. “친구들은? 선생님은?”이라고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지난달 24일 안산 단원고 정문 들머리에서는 정운선 교육부 학생건강지원센터 센터장(경북대 소아정신과 교수)이 편지글을 읽어 나갔습니다. 단원고 3학년 학생이 ‘대한민국의 직업병 걸린 기자분들’에게 쓴 편지였습니다. “저는 올해 들어 장래 희망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저의 장래 희망도 기자였습니다. 저의 꿈이 바뀐 이유는 바로 여러분의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 양심과 신념을 뒤로한 채 가만있어도 죽을 만큼 힘든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분들, 애타게 기다리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큰 실망과 분노를 안겨줬기 때문입니다. (중략) 업적을 쌓고 공적을 올리기 위해서만 앞뒤 물불 안 가리고 일에 몰두하는 것을 보면서 부끄럽고, 경멸스럽고, 안타까웠습니다.” 모여 있던 기자들은 자괴감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았습니다. 유가족들은 곳곳에서 대통령에게 항의했습니다. 유가족 가운데 그 누구도 대통령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의 항의로 대통령의 조화는 밖으로 치워졌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상당수 방송과 신문에서는 이런 내용이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의 목소리가 사라진 기사에는 박 대통령의 ‘우아한 조문’만 있었습니다.
다시 시간은 흐르고 있습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서 무고한 생명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존자와 실종자 가족들은 하루하루를 슬픔 속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나갑니다.
“제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서명 좀 해주세요.”
정부합동분향소 출구를 지나갈 때마다 아이를 잃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누구도 가리지 않고 애절한 눈빛으로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진실을 밝혀달라고 말입니다. 합동분향소 안에서 수많은 아이의 죽음을 만난 조문객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눈물을 훔치며 나오다 이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헝클어진 머리와 핼쑥해진 얼굴, 퉁퉁 부은 눈, 피곤함에 지친 기색이 역력합니다. 조문객들은 이들을 보고 또다시 눈물을 쏟습니다. 그리고 서명을 하고 “힘내시라”는 말을 건넵니다. 그러면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감사합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숙입니다.
안산에서 40여일째 취재를 하고 있는 저희도 지금까지 다섯 번이나 서명을 했습니다. 중복되지 않게 한 번만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이곳을 지나다 유가족들의 애절한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무심해 보이는 발걸음이 그들에게는 또다시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명을 할 때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습니다. 애써 참습니다. 왠지 기자는 취재를 할 때 울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대신 하루 일이 모두 끝나고 퇴근하기 전 밤에 조용한 분향소 안을 둘러봅니다. 그때는 편하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하얀 국화꽃 속에서 아무 말 없이 웃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저립니다. 눈물을 닦아내고 돌아섭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무렇지 않은 듯 일합니다.
지난 8일 저녁 8시께에도 사람들과 섞여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했습니다. 한번에 70명씩 줄을 서서 분향을 했습니다. 그런데 앞줄에서 조문을 하던 한 어머니가 여학생의 영정 앞에 주저앉아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20여분간 조문이 중단됐습니다. 장례지도사가 어머니를 안고 함께 울었습니다. 영면한 청춘들은 제단 위에서 애처롭게 이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 어머니처럼 다른 유가족들도, 밤이 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면 정부합동분향소에 있는 아이를 날마다 보러 갑니다. 슬픔은 분노로, 분노는 다시 슬픔으로 바뀝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그렇게 삶은 계속됩니다. 안산/김기성 김일우 기자 player009@hani.co.kr
곡예운전 끝에 도착한 단원고엔
부모들이 애태우고 있었습니다 두려워하는 학생 잡아놓고
“친구들은? 선생님은?”
하이에나처럼 달려든 기자들에게
단원고 학생이 호통쳤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유가족들은 애절한 눈망울로
진실을 밝혀달라며 호소합니다
그리고 분노합니다
‘제발,제발…’ 가슴을 쥐어뜯는 고통. 4월16일 세월호 침몰
끝내 듣지 못한 말 ‘잘 다녀왔습니다’. 4월27일 단원고 학생 27명 장례식
방송은 외면한 유가족들의 분노. 4월29일 박근혜 대통령 조문
“우리 아이들을 위해 진실을 밝혀주세요”. 5월5일 유가족 서명운동 시작
청와대로 갑시다! 절규하는 발걸음. 5월8일 어버이날
지난달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40여일 동안 경기도 안산시에서 단원고와 가족 등을 취재해온 김기성 기자(왼쪽)와 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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