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빌레펠트에서 이제 9학년이 된 김세림(14·사진 오른쪽)양을 키우고 있는 정수정(42·사진 왼쪽) 기센대 교육학 박사과정 연구원은 독일 교육이 ‘천국’이 아님을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기획 ‘한국 사회 좌표, 독일서 찾다’ 4
“독일 교육이 완전한 천국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걸 보면 행복한 게 아닐까요”
독일 빌레펠트에서 이제 9학년이 된 김세림(14·사진 오른쪽)양을 키우고 있는 정수정(42·사진 왼쪽) 기센대 교육학 박사과정 연구원은 독일 교육이 ‘천국’이 아님을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정 연구원은 1998년 독일로 와 빌리펠트 대학에서 교육학 학·석사를 마쳤다. 그 사이 태어난 세림양은 독일에서 그룬트슐레(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김나지움(독일의 중등교육기관)에 재학중이다. 교육학 전공자로서, 또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독일 교육에 대한 정 연구원의 시각은 누구보다 날카로웠다.
‘생각’하게 하는 교육, 학생 중심의 교육
정 연구원이 지켜본 독일의 교육 방식은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독일 학교에서 객관식 시험 문제는 찾을 수 없다. 지난해 세림양의 국어(독일어) 수업의 시험 범위는 독일의 고전 문학 <에밀리아 갈로티>였다. 책을 읽고 그 안의 인물, 사건, 장면 사이의 관계 등에 대해 논해야 하는 문제가 나왔다. 한 문제가 나오는데 A4 용지 3~4장 정도를 써야 한다. 그 속에서 학생의 논리구조, 작문 과정에서의 국어 능력이 평가된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풀이과정뿐 아니라 왜 이런 풀이가 나왔는지 논증해야 한다. OMR 카드에 답을 표시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는 낯선 장면이다.
대화와 토론으로 가득 찬 독일 교실에서 이런 평가 방법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정 연구원은 “지난해 교사들의 포털사이트인 ‘레러프로인트’에서는 한 수업 당 교사가 말하는 비율을 20% 내로 줄이라는 권고 사항이 나오기도 했다”며 “대게 수업 초반에 교사가 짧게 설명한 이후 질의응답과 토론으로 대부분의 수업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런 방식의 교육 과정에서 ‘과외’는 의미가 없다. “독일도 과외가 있긴 있어요. 다만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유급을 피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더 잘하기 위해 받는 과외는 없습니다.”
같은 반에서도 학생의 학업능력에 따라 다른 문제가 주어지고, 학생들끼리 돕게 하는 것도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에게는 문제를 더 줍니다. 문제를 더 받는 아이들은 양이 많다고, 문제를 덜 받는 아이들은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더라고요.”
학생들에게 지우는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것도 독일 교육의 특징이다.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 하루에 시험은 꼭 한 과목씩 친다. 김나지움은 일주일에 두 번은 오후 4시까지 수업이 있는데, 다음날 같은 과목이 있으면 숙제를 내줄 수 없다.
교육의 목적은 ‘잘 살기 위한 것’
독일은 나치 역사를 겪으며 교육과정과 가치를 통째로 바꿨다. 정 연구원은 “우수한 아이들을 뽑아 가르치고 1등을 중시했다가 참담한 역사를 겪었다”며 “그 이후로는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잠재력을 가치고 있다는 가치를 가지고 전인교육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독일 교육은 각 주에서 전권을 가치고 정책을 시행한다. 이 때문에 각 주마다 조금씩 교육 과정이 다르지만, 독일을 관통하는 교육의 가치는 일맥상통한다.
“독일교육의 근본적인 가치는 ‘현실에서 잘 살기 위한 것’입니다. 모두가 1등을 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대학을 가기 위한 김나지움 진학은 최근에는 50% 정도로 늘었지만, 한국에 비해선 훨씬 적은 편입니다. 비교적 빨리 직업 교육을 하고, 기업에 맞춤형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탄탄한 독일 경제의 밑거름이 됩니다. 굳이 대학에, 좋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현재의 위치에서 ‘잘 살 수 있도록’ 교육하는 거죠.”
이는 일부 진보적 교육학자들이 비판하는 측면이기도 하다. “독일 교육은 현재 위치에서 만족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분 상승’을 할 수 없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생각하는 교육이라는 건 부모 등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볼 수 있어요.” 가정 환경에 따라서 책을 읽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사고력이 커지는 과정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학비는 없지만 김나지움에서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도 적지만은 않다. “미술, 체육 각종 수업 재료들과 식비는 모두 개인이 부담해요. 수학여행도 200∼300유로(약 28만~42만원) 정도 내야하고, 고학년 때 해외로 가는 견학프로그램에는 1000유로(약 140만원)가 넘게 들어요. 저소득층 지원도 물론 있지만, 돈 문제 때문에 진로를 바꾸는 학생도 있습니다.”
정 연구원은 독일교육을 무조건 ‘찬양’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다. 독일이 직업교육을 강조하고 활성화 한 배경에는 대학을 가지 않고 기술자가 돼도 잘 먹고 살 수 있는 기본적인 ‘복지국가 시스템’이 있었다.
“독일은 직업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높을 뿐 아니라 ‘단순 노동’을 해도 기본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시스템이 깔려 있어요. 이 덕분에 직업 선택이나 진로 결정의 폭이 훨씬 넓어지는 거죠.”
우리나라와 독일의 근본적인 가치관과 시스템이 다른 상태에서 무조건 독일 교육을 본받는 건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정 연구원은 다만, ‘대졸자’만 찾는 기업의 사고 전환이 이뤄지면, 독일의 이원적 직업교육의 모티브는 충분히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초·중등교육의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대학 입시에 대한 개념도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독일 학생들도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해요. 다만 본인이 원하는 과목을 골라서 집중할 수 있고, 실패해도 다시 올라설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독일 의대도 성적이 우수해야 들어가지만, 이에 못 미치더라도 여러 학기를 기다리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최근 독일 교육은 ‘통합’을 지향하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우리나라 방과후 학교 개념인 ‘온종일학교’ 정책을 활성화하고 있고, 최근에는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들의 ‘통합교육’을 추진한다.
“온종일 학교는 ‘숙제돌봄’이나 예체능 수업이 주를 이루는데, 다른 나라에서 이주해 온 학생들이 좀 더 학교에 남아 독일어와 문화를 익히도록 하는 취지가 있어요. 통합교육도 특수 교사, 새로운 시설 등 추가 비용 때문에 고민이 많지만,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가 그 가치를 인정하고 실행하는 중입니다.”
딸 세림양은 지난해 한국으로 들어갈 기회가 있었지만 독일에 남았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그 이유였다. 정 연구원은 “세림이는 피아노를 배우고, 봄에는 좋은 날씨를 즐기면서 공부할 수 있어요. 한국이었으면 이렇게 딸과 대화할 시간도 없었을 것 같아요.” 세림양은 지금 이곳에서 사는 것이 행복하냐는 물음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글·사진/이유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heyday11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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