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자들이 4월29일 아침 전남 진도군 진도체육관 안에서 바닥 청소를 하고 있다. 진도/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만학도’는 진도실내체육관을 바쁘게 뛰어다녔다. 하얗게 샌 머리에 노란 모자를 쓰고 쓰레기 분리수거에 소매를 걷었다. 팽목항에도 일손이 필요하다고 하자 얼른 팽목항으로 떠나는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1년 넘게 준비했던 세무사 자격증 시험도 포기했다.
김민성(가명·51)씨는 5일로 진도에 46일째 머물고 있다. 그가 사고 소식을 접한 것은 여느 때처럼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였다. 김씨는 “처음에는 거짓말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다음 날 새벽까지 기사를 검색하다가 공부를 하러 갔는데 자꾸 생각이 나요. 결국 4월20일 밤차를 타고 내려왔어요.”
김씨의 가족들은 그가 여전히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름을 애써 숨긴 것도 그래서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일손이 모자라는 곳으로 달려갔다. 화장실 청소, 배식, 잔반 처리 등을 했다. 잠은 실내체육관 2층 복도나 자원봉사자들이 대기하는 텐트에서 3~4시간 쪽잠을 자는 게 전부였다. 자원봉사자들이 늘어나자 ‘봉사자들을 위한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
그는 희생자 가족들이 있던 자리를 치우는 일이 힘들었다고 했다. 주검 인양 소식에 가족들이 바삐 빠져나간 자리는 모든 게 그대로였다. “담요에 자원봉사자들이 배달해 준 피자, 아직 뚜껑도 열지 않은 음료수 등 모든 게 그대로 남아 있어요. 왠지 그게 가장 마음이 아팠죠.”
오가며 자주 마주치다 보니 그를 기억해 주는 이들도 생겨났다. 아들 셋 가운데 막내를 잃은 한 부모가 다시 진도를 찾아 “아직도 안 가셨느냐”고 말을 건넸다. 그는 한눈에 그 가족을 알아봤다. 실내체육관 2층에서 식사도 거른 채 눈물만 흘리던 이들이었다. “그 엄마를 보면서 정말 슬픔이라는 걸 오롯이 느꼈어요. 5월 중순쯤에 아이를 찾고는 집으로 돌아갔는데 도저히 못 있겠다고 하면서 다음 날 새벽차를 타고 오셨더라고요.”
김씨는 몸은 힘들지만 배운 게 더 많다고 했다. “저도 이 자리에 오기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았겠어요? 저 역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어요.”
진도/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