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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제2 김용판’에 면죄부 메시지 준 법원·검찰

등록 2014-06-06 19:17수정 2014-06-06 21:59

현장에서

2012년 12월 대선 직전 김용판(56)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한밤중에 국가정보원 직원 김하영씨의 댓글 선거운동 의혹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게 했다. 김 전 청장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에 이어 5일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상고할 수 있지만, 대법원 심리는 법률 적용의 잘못을 살피는 법률심이어서 사실을 놓고 다투는 재판은 끝난 셈이다.

당시로 시간을 되돌려보자. 서울경찰청은 김씨 노트북에서 단서가 나왔는데도 수사를 진척시키지 않고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 직후인 밤 11시, ‘수사했는데 혐의가 없더라’고 발표했다. 필수적인 서버 조사도 없이 노트북 하드디스크만 살펴보고 ‘무혐의’를 선언했다.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고서는 설명되지 않는 행위다.

하지만 법원은 이런 의도를 읽어내는 데 무관심했다. 1심 재판부(재판장 이범균)는 경찰 주장을 받아들여 다음처럼 말했다. “정치 개입 여지가 있는 글은 (김씨가 열람·작성·삭제한) 2만건 중 2~3개에 불과했다”, “서버 압수수색 필요성을 못 느꼈다.” 단서가 하나라도 잡히면 수사를 이어가는 게 상식인데, 이를 무시하고 서버 압수수색을 하지 않은 이유는 외면했다.

항소심(재판장 김용빈)은 “수사결과 발표는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면서도 “능동적·계획적 행위가 없어 선거운동 의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단순히 국정원의 선거 개입 혐의에 관해 발표한 행위로는 박 후보 지지 의도가 객관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혐의 없음’ 한마디가 얼마나 큰 파장을 낳았는지를 무시하고, 당시 상황과 맥락에 눈감은 논리다.

이경미 기자
이경미 기자
허무한 결론이 나온 데는 검찰의 역할도 크다. 1심은 “공소사실이 엉성하고 여러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항소심도, 검찰이 1심이 증거를 왜곡해 해석했다면서도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 입증책임을 저버렸다고 밝혔다. 검찰과 법원이 서로를 탓하는 사이에 이런 결론이 나왔으니 앞으로 국가기관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어떻게 강제할 수 있을까.

법원과 검찰의 합작품인 ‘김용판 무죄’는 국가기관이 특정 후보를 도우려고 잘못된 발표를 해도 후보를 직접 거명하지만 않는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교훈’만 남겼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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