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특별법 서명을 하면 국민의 세금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을 평생 지원하게 된다. 다들 속고 있는 것이다’ 하는 내용이 에스엔에스(SNS) 등을 통해 돌고 있다. 처음에는 가볍게 “풉!” 웃고 지나갔다. 그런데 거리에 서명을 받으러 나갔다 들어오는 가족들의 표정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굳어 가는 게 아닌가. 서명대 앞에 와서 ‘특별법 내용이 구체적으로 뭐냐’, ‘보상 더 받으려고 이러는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란다.
거리로 서명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우리 가족들의 얼굴은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었다. 이전에는 우리 아이들의 억울한 희생을 생각하면 뭐라도 해야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러다 가족끼리 함께 전국을 다니며 얘기 나누고, 서명 받으면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격려와 위로의 눈물을 나누는 과정 자체가 심리치료의 효과를 가져온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가족들의 얼굴이 다시 굳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는 우리 가족대책위 임원들에게 와서 진짜 우리 가족들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니냐 따지듯 묻는 가족들도 있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표현은 “미치고 팔짝 뛰겠네!!”뿐이다.
4월20일부터 본격적으로 실종자가 희생자가 되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도 4월23일, 137번째로 아이를 찾고 장례와 삼우제를 치른 후인 5월1일에 먼저 올라온 가족들이 모여 있던 안산 와스타디움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기왕 진도에서 앞장서 가족들의 일을 보던 분들이 안산에서도 중심을 잡기 위해 무던히도 애들을 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우왕좌왕, 좌충우돌, 아니, 혼돈 그 자체였다. 매일 몇 차례씩 회의를 했지만 다음날이 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가족들은 이래선 안 된다 뜻을 모으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특히 변호사의 도움을 바라는 가족들이 많았다. 일상적, 법률적 대리인 또는 조력자의 역할을 기대하면서.
대한변호사협회가 전국에서 자원한 500여명의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우리 가족들의 법적 대리인이 되었다. 변협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이후 예상되는 법적 분쟁에 대한 대비였다. 전반적인 보상과 배상, 양육 기여도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과거 여러 재난, 산재사고의 피해자들을 대리해왔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은 변호사들의 판단이었다. 변호사 입장에서 당연히 대비해야 할 문제들이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거들기 시작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이웃사촌은 물론 시민단체, 기자, 유사 사고의 피해자 가족, 심지어는 스스로 잘 안다고 공언하는 공무원들까지.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한마디씩 거들고 나섰다. 이렇게 맹하게 있다가는 정부에 휘둘려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결국 죽은 애들만 억울하게 될 거라고. 여기저기서 웅성웅성하기 시작했다.
이때 가족대책위의 김병권 위원장과 김형기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일부 임원진이 강력하게 선포했다. 앞으로 ‘돈’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어떠한 이야기도 꺼내지 말라고. 우리가 먼저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순간 가족대책위는 바로 분열, 와해될 것이 분명하다고. 그러면 사고의 원인과 구조 부재의 이유 등 진상 규명은 꿈도 못 꿀 것이고 결국 우리 아이들은 “개죽음”을 당한 게 되는 거라고. “성금 모금을 중지해 달라”는, 내부 의견수렴이 좀 부족했던 이 발표를 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86일째.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간을 석 달 가까이 보냈다.
예전 대형 참사의 경우 대부분 정부 또는 관련 기관, 업체의 돈을 앞세운 각개격파 작전에 말려 한 달도 안 되어 뿔뿔이 흩어지곤 했다. 그러나 가장 규모가 큰 참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월호 가족들은 이미 석 달 가까이 버텨왔다. 500가지의 의견을 가진 500명의 부모들이 하나가 되어 고통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돈”의 유혹에 흔들리거나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세월호 참사를 이웃의 일이 아닌 내 일로 받아들이며 함께 눈물을 흘려주신 국민들의 참뜻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희생자들 영정 앞에서 너무나 미안하다고 오열하시던 수많은 이웃들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가족들만의 아픔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의 아픔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처절한 고통을 겪으며 죽어간 우리 아이들, 가족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7월8일 현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 인원이 320만명을 돌파하였다. 어제(9일)는 국회에 특별법 청원을 하면서 우리 가족들과 대한변협이 마련한 법안을 제출하였다.
우리가 제출한 법안의 핵심은 “피해자 가족과 국민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이다. 유가족을 평생 세금으로 먹여 살리자는 게 특별법의 진짜 내용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분들은 아마도 “성역 없는 철저한 진상 규명”이 못마땅하신 분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곧 100일이 다가온다.
우리는 100일이 지나기 전까지 4·16 특별법이 제정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멀지 않은 때에 왜 우리 아이들이, 가족들이 영문도 모른 채 어이없이 죽어가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싶다. 평생 미안함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남은 가족들이 그나마 덜 미안하게 죽을 수 있는 유일한 길, 그것이 “성역 없는 철저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한 나라 건설”이다.
4월16일 이후로 죽음이 무섭지 않다. ‘내가 죽었는데 아빠는 그렇게밖에 못해?’라고 예은이에게 혼날까봐 무서울 뿐이다.
나는 예은이에게 덜 미안하게 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