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5월21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체포하기 위해 금수원을 압수수색할 때 유 전 회장은 전남 순천 송치재 별장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4.5.21. 안성/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큰아들 유대균(44)씨는 세월호 참사 발생 사흘 뒤 ‘가족 및 측근 회의’를 열어 도피 생활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검찰이 밝혔다.
김회종 인천지검 2차장검사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참사 사흘 뒤인 4월19일 유씨의 장남 유대균씨가 출국을 시도했으나 출국금지돼 있어 실패하자 (기독교복음침례회의 본산인) 경기 안성 금수원으로 이동했다. 이때 아버지 유씨와 측근 등이 회의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도피가 사실상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균씨는 이 회의 직후 잠적했다.
4월20일 오후 인천지검이 유씨 일가에 대한 수사 개시를 밝히자, 아버지 유씨도 도피 준비에 나섰다. 검찰은 “한 언론사 기자가 23일 새벽 금수원 쪽에 압수수색 여부를 묻는 전화를 걸었는데, 이 전화를 받자마자 유씨가 신도 신아무개씨의 집으로 도피했다. 전날(22일) 집을 구해놓고 도망 준비를 했다”고 밝혔다. 유씨는 하루 뒤인 24일에는 또다른 신도인 한아무개-유아무개씨 집으로 옮겨와 열흘 동안 머물렀다.
5월3일 밤 유씨는 안성을 벗어나 전남 순천 송치재휴게소 인근 별장인 ‘숲속의 추억’(송치재 별장)으로 이동한다. 유씨의 순천행은 기독교복음침례회의 핵심 계열사인 다판다의 송국빈 대표가 2일 구속되자, 장기 은신을 염두에 둔 행보로 보인다. 검찰은 측근 6명이 동행한 것으로 파악했다. 유씨는 송치재 별장으로 이동한 뒤 현금 2억5000만원을 주고 휴게소 식당 주인 명의로 임야와 임야 속 주택을 구입하기도 했다. 다음 도피 수순을 염두에 둔 행보로 읽힌다.
23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숨어 있었던 전남 순천시 송치재 인근 ‘숲속의 추억’ 별장의 내부 모습. 검찰은 유 전 회장이 지난 5월25일 수사관들이 별장을 급습했을 때 이 별장 안 통나무 벽 속에 숨어 있었다고 밝혔다. 순천/연합뉴스
유씨가 송치재 별장에 머무는 사이, 검경은 한창 수사에 속도를 냈다. 검찰은 유씨의 출석을 공개적으로 통보하고(13일), 유씨가 영장실질심사(20일)에 불응하자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22일). 금수원 신도들과의 신경전 끝에 금수원 압수수색(21일)을 진행하기도 했다.
24일 밤 유씨의 순천행에 동행했던 측근 추아무개씨가 검찰에 붙잡히면서 포위망이 좁혀졌다. 결국 25일 오후 검찰은 유씨가 송치재 별장에 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압수수색에 나섰다. 유씨를 보좌하며 함께 머물던 신도 신아무개(여)씨는 이를 눈치채고 유씨를 2층 통나무벽 속으로 숨겼다. 검경은 압수수색을 하고도 유씨를 발견하지 못한 채 철수했다.
18일 뒤인 6월12일 유씨는 송치재 별장에서 직선거리로 2.8㎞ 떨어진 매실밭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도피 자금이 담긴 가방을 그대로 놔둔 사실로 미루어 유씨는 5월25일 압수수색 직후 송치재 별장을 나온 것으로 추정될 뿐, 그 이후 행적은 미궁 속에 남아 있다.
이미 세상을 등진 유씨는 아무런 말이 없고, 검경은 18일 동안의 행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하지만 유씨 검거에 목을 매온 검찰로서는 유씨 죽음 자체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이날 인천지검 기자간담회에서 ‘주검이 유씨가 아닐 가능성이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이라는 기자 질문에, 김회종 2차장검사는 “그렇기를 기대한다”고 답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길 위에서 [21의생각 #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