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주검 확인 이후] 5월25일 ‘숲속의추억’에서 무슨일이
검찰, 순천 식당서 조력자 체포해
“유씨 별장에서 봤다” 진술 확보
오후 영장없이 갔다가 진입 실패
밤 9시30분 수색하고도 못 찾아
6월26일 신도가 실토한 뒤에야
‘유씨 비밀벽장 숨어있었다’ 알아
검찰, 순천 식당서 조력자 체포해
“유씨 별장에서 봤다” 진술 확보
오후 영장없이 갔다가 진입 실패
밤 9시30분 수색하고도 못 찾아
6월26일 신도가 실토한 뒤에야
‘유씨 비밀벽장 숨어있었다’ 알아
검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따르는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신도들에게 완패를 당한 꼴이 됐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유씨를 놓친 것은 그의 주검을 40일 동안 알아보지 못한 무능과 함께 또 하나의 ‘전설적 수사 실패’로 기록될 만하다.
검찰은 금수원이 있는 경기도 안성과 전남 순천 지역 신도들의 통화가 부쩍 잦아진 것을 파악하고 순천에 주목했다. 5월24일 자정 무렵 순천에서 유씨의 도피를 총괄하던 추아무개(60·구속 기소)씨를 체포했다. 이어 25일 새벽 1시께 송치재휴게소 주인 변아무개씨 부부 등 3명을 검거했다. 이들이 붙잡힌 송치골가든 식당은 유씨가 몸을 숨긴 ‘숲속의 추억’ 별장과 불과 500m 거리에 있다.
검찰은 25일 오후 4시께 이 가운데 한 명한테서 유씨를 별장에서 봤다는 진술을 받았다. 검거팀은 즉시 별장으로 갔지만 압수수색 영장이 없어 잠긴 문을 강제로 따고 들어갈 수 없었다. 인천지법에서 영장을 받아 수색에 나선 시간은 밤 9시30분. 유씨가 오후에 들른 검거팀을 보고 이미 별장 내 비밀 은신처에 몸을 숨긴 뒤였다.
검찰은 유씨와 동행한 아해프레스 직원 신아무개(33·여)씨가 미국 국적자 신분을 이용해 연막을 쳤다고 했다. 신씨는 옷을 벗고 알몸으로 나서 수사관들을 당황하게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국적자니까 미국대사관에 연락해달라거나 영사를 불러달라고 요구하고,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어를 못하는 척하며 영어로 답하기도 했다고 한다. 여기서 1시간 가까이 허비됐고, 유씨는 별장의 비밀 공간에 숨어 추적자들이 돌아가기만을 기다린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나중에 확인해보니 2층 통나무벽 안쪽에 유씨가 숨었던 3평 정도 공간이 있더라고 설명했다. 지붕 때문에 경사가 진 이 공간은 통나무를 짜맞춘 구조라 밖에서 대충 봐서는 파악하기 어려웠고, 안쪽에 나무로 만든 잠금장치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 까맣게 모른 검거팀은 허탕을 쳤다고 판단하고 별장을 떠났다.
범인도피 혐의로 체포된 신씨는 “요양차 별장에 들렀고, 유 전 회장은 모른다”고 진술하다, 사흘 뒤 “5월25일 새벽에 유씨가 누군가와 함께 별장에서 사라졌다”는 거짓 진술을 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런 진술에 따라 측근들이 유씨를 다른 곳으로 도피시킨 것으로 판단하고 다른 도피처를 찾는 데 주력했다.
검찰은 그 뒤로도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들이 계속 교란작전을 펴 애를 먹었다고 했다. 검찰은 폐회로텔레비전(CCTV) 분석을 통해 핵심 신도 이아무개씨 명의의 스타렉스 승합차가 5월29일 ‘숲속의 추억’ 별장 부근을 지나간 사실을 확인했다. 이 승합차는 안성 금수원으로 돌아갔다가 이튿날 다시 안성 금수원에서 나왔다. 이번에는 이삿짐 같은 상자를 가득 실은 포터 화물차 2대와 함께였다. 화물차들은 곧장 전남 해남군으로 향했다. 스타렉스 승합차는 화물차와 함께 움직이다 광주에서 방향을 틀어 순천 송치재 인근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르고, 이어 전남 구례군에 갔다가 다시 방향을 돌려 해남으로 향했다. 검찰은 유씨가 해남의 새 은신처로 옮기는 정황이라고 봤다. 특별수사팀장인 김회종 인천지검 2차장은 “이사를 하는 것처럼 짐을 실은 차는 곧장 해남으로 가고, 다른 차는 유씨를 순천에서 태워서 이동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별장 내부 은신처를 확인한 6월27일 이후에는 별장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통나무벽 안쪽에서 여행용 가방 2개를 발견한 검찰은 유씨 쪽이 다시 들를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4번’, ‘5번’이라고 적힌 가방에는 현금 8억3000만원, 미화 16만달러(약 1억6400만원)가 들어 있어, 도피 자금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검찰은 그제야 별장 주변에 감시인력을 배치하고 폐회로텔레비전도 설치했다. 유씨가 주검으로 발견된 지 보름이 지난 시점이었다.
김회종 2차장은 5월25일 상황에 대해 “통탄할 노릇”이라고 했다. 통화 내역 170만건을 분석하고 차량 수만대의 이동을 감시하면서 벌인 추격전은 순간의 안이한 판단 탓에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세월호 100일, 고장난 저울 [한겨레포커스]

이슈세월호 참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