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과수 서울연구소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신원 확인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은 유 전 회장의 치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유병언 주검 감정결과와 의문점
“독극물에 의한 사망 아니고
흉기 사용·골절 흔적 없어”
‘장기훼손’ 지병사망도 미지수
국과수, 사인 추정조차 않고
외부 입 빌려 ‘저체온사’ 제기
“독극물에 의한 사망 아니고
흉기 사용·골절 흔적 없어”
‘장기훼손’ 지병사망도 미지수
국과수, 사인 추정조차 않고
외부 입 빌려 ‘저체온사’ 제기
“아무런 실마리가 없는 주검”, “주어진 조건에서 확인 불가”.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의 주검을 정밀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25일 내놓은 결과는 ‘불명’(법의학 용어로 unknown)이었다. 구체적인 사인은 물론, 지병에 의한 내인사인지 외부 힘이 작용한 외인사인지도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씨의 죽음을 미스터리로 만들어버린 검경 스스로 모자라는 조각을 맞추고 뚫린 구멍을 메워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 부패 심해 판명 불가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과수 서울연구소에서 진행된 브리핑의 결론은 ‘주검의 신원은 100% 유씨가 맞다’, ‘약물이나 독물에 의한 사망은 아니다’는 것뿐이다. 서중석 국과수 원장은 “장기 등 너무 많은 조직이 훼손돼 실마리가 전혀 잡히지 않았다. 사망 시점도 정확히 알기 어렵다”고 밝혔다.
국과수가 2차 정밀검시를 위해 유씨의 주검을 넘겨받은 시점은 사체 발견 시점에서 40일 뒤였다. 국과수는 다중검출 전산화 단층촬영장치(MDCT)를 통해 유씨가 외상으로 사망했는지를 정밀감정했지만 “외력에 의한 충격이나 목졸림이 있었는지 전혀 추측할 수 없다”고 했다. 부패로 인해 충격에 의한 멍이나 목이 졸릴 때 나타나는 연골 파괴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흉기가 사용됐거나 골절된 흔적은 없다고 확인했다. 국과수는 또 간·폐·근육 조직을 떼어내 분석한 결과, 약물·독물이 전혀 검출되지 않아 중독사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결국 고령에 당뇨를 앓던 유씨가 지병으로 숨졌을 가능성을 마지막으로 검토했지만 “심장을 비롯한 중요 장기들이 부패해 검사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 저체온사 가능성? 국과수는 감정 결과를 둘러싼 의혹 확산을 막으려는 듯 ‘사인 추정’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과수와 함께 검시 결과를 사전에 검토한 민간 법의학 전문가는 “최선의 추정을 하자면 저체온사가 합당하다”고 밝혔다. 대한법의학회 감사인 강신몽 가톨릭대 교수는 이날 국과수 브리핑에 나와 “사인 불명이라는 국과수 발표에 완전히 동의한다”면서도, 유씨의 주검이 발견된 현장 사진을 근거로 판단할 때 “저체온사에 아주 합당한 현장”이라고 했다. 유씨가 신발과 양말을 벗고 있었는데, 이는 저체온증이 오면 무의식적으로 옷을 벗는 ‘이상탈의’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다른 저체온사 사례에서는 옷을 다 벗은 채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고령의 유씨가 비에 맞은 뒤 저온 노출로 사망에 이르지 않았나 추정한다”고 했다.
전날 서중석 원장도 국회에 출석해 “저체온증에 의한 이상탈의 현상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불명확한 사인 발표로 국과수가 ‘의혹의 진원지’가 되는 것을 피하려고 민간 법의학 전문가의 입을 빌린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이에 강 교수는 “내 소견을 얘기한 것일 뿐 사전에 논의한 것은 없다. 과학적 증명이 아니니 (국과수에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서 원장은 “(저체온사가) 한 가지 가능성일 수 있지만 감정되지 않은 사실을 말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 사인 규명 수사기관 몫으로 국과수는 유씨의 주검이 바뀐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주검 7군데에서 유전자를 채취해 검사했다. 치아 치료 기록도 비교한 결과 유씨 주검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또 부패 진행이 지나치게 빠르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미국의 사체 연구 동영상과 국내 연구진의 동물실험 결과 등을 보여주며 “날씨와 기온, 습도 등에 따라 불과 열흘 만에도 백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경찰청은 국과수 발표와 별도로 여러 의혹을 해명하는 자료를 냈다. 유씨 사인의 퍼즐을 맞추려면 그를 마지막까지 수행한 것으로 알려진 운전기사 양회정(56·지명수배)씨를 검거해 최종행적을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과수 서울연구소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신원 확인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은 유 전 회장의 왼쪽 손.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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