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육지 경찰은 세월호 참사 때 허둥댄 해경과 다를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경찰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 만에 가라앉고 있습니다. 기본인 현장감식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회2부 소속으로 광주·전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년 전부터 서해지방해양경찰청과 전남경찰청을 상대로 취재를 해왔습니다.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수색구조 활동과 사고원인 수사,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추적 등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경찰이 유 전 회장의 주검을 확보하고도 40일 동안 ‘유령’을 쫓아다니게 만든 원인인 현장감식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해경한테 수색구조가 핵심이라면, 육지 경찰한테는 현장감식이 기본입니다. 사건이 나면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노란 폴리스라인을 치는 모습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함부로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유 전 회장의 주검이 발견된 전남 순천의 송치재 부근 매실밭에도 어김없이 폴리스라인이 설치됐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 안에서 ‘현장은 경찰 수사의 기본’이라는 격언을 잊어버린 듯 움직였습니다. 6월12일 변사자 발견 신고가 들어온 뒤 속단과 오판을 했다가 아직도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습니다.
순천경찰서는 5월25일 순천 송치재 별장에서 검찰이 유 전 회장을 놓친 뒤 덩달아 바빠졌습니다. 경찰은 8000여명을 동원해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송치재 주변에서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유 전 회장을 잡는 데 잔뜩 신경을 쓰고 있던 경찰은 ‘주검’을 거들떠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은신처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서 나이와 키가 비슷한 주검이 나왔는데도 건성으로 넘겨버렸습니다. 금니 10개, 짧은 왼손 엄지, 스쿠알렌 병 등이 ‘내가 바로 유병언이야’라고 외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변사체 발견 현장에는 원칙적으로 경찰서장과 형사과장이 가야 합니다. 두 사람은 유 전 회장을 쫓느라 바빠서 가지 못했습니다. 검시도 검사가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달에 수백건씩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검사는 좀처럼 현장에 가지 못합니다. 대부분 경찰이 맡는 게 현실입니다. 출동한 경찰은 초라한 노숙자 행색을 한 주검을 얼른 처리하고 ‘공공의 적 유병언’을 찾는 데 힘을 보태야 했습니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경찰은 무심코 주검 부검을 마친 뒤 근처 장례식장 냉동고에 넣었습니다. 세간에 떠돌던 소문대로 국가의 관리 아래 들어간 셈입니다.
경찰은 이렇게 세월호 침몰 때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친 해경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40일 뒤라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유전자 분석 결과 ‘유 전 회장이다’라는 결과를 내놓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까요. 이 주검은 신원도 밝히지 못한 채 행정기관에 행려병자로 인계돼 화장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검거에 실패하면 다시 잡으면 되지만, 감식에서 실수하면 되돌릴 기회가 없습니다.
제가 가까이서 본 경찰은 세간에 떠도는 음모론을 실행할 수 있을 만큼 용의주도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주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목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가 하면, 현장에 머리카락과 목뼈 조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사망 시간을 추정할 수 있는 구더기도 외면했습니다. 유전자 정보가 같다는 통보를 받자마자 ‘지문도 같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제야 현장에 루미놀 시약을 뿌려 혈흔검사를 한다고 수선을 피웠습니다. 과수원 주인의 안경을 유 전 회장 것으로 보인다며 소동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경찰이 현장감식이라는 기본에 충실했다면 “유전자 샘플을 바꿔치기 했을 것”, “누군가 살해한 뒤 유기했을 것”, “지문이 나온 오른손 엄지손가락만 붙였을 것”이라는 등의 온갖 의혹이 난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각본이나 음모가 있다면 경찰이 국민의 시선을 끌도록 한다는 대목은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현재까지 분명한 것은 ‘유병언은 죽었다. 그리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정도니까요.
뒷말을 들어보니 치명적 실수를 한 장본인인 순천경찰서 감식반장은 요즘 경찰서 구내식당에 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동료들한테 미안해서랍니다. 경찰들이 제발 이런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소임을 맡긴 국민 앞에….
안관옥 사회2부 호남제주팀 기자 okahn@hani.co.kr
안관옥 사회2부 호남제주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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