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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이스버킷이 티셔츠 적시기 놀이라고?

등록 2014-08-29 20:10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다들 휴가들은 다녀왔는가들? 여름휴가는 무조건 외국에서 보내자는 주의자인데, 야자수 낙엽 하나도 구경 못한 채 서울의 탁한 공기를 마시고 있는 토요판팀 고나무야. 그러니 ‘야자타임’ 스타일 친기자로 엠티 분위기라도 내보려 해. 봐줘.

그제 오후 6시에 <한겨레> 입사 동기 친구가 전화하더군. 옥상 정원으로 올라오래. ‘바람 쐬며 수다나 떨자’고 생각하고 올라갔지. 웬걸, 수건, 카메라, 지름 30㎝ 정도의 넓적한 원통형 투명 플라스틱 물통이 있더라고. 보자마자 직감했지. 그래, 지금 장안의 화제인 ‘아이스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였어. 보자마자 나는 대뜸 “너 나이 많아서 감기 걸린다”고 말렸지. “유학 시절 사귄 외국 친구가 나를 지목해서 해야 한다”고 말하더군. 의지가 완강하더라고. 나더러 물을 끼얹어 달래. 회사 동료는 다음 아이스버킷 주자로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와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또다른 외국 친구를 지목했어. <한겨레> 서정민 대중음악 담당 기자나 입사 동기의 아이스버킷 둘 다 물 양이 적어서 사실상 아이스‘볼’(bowl·사발)에 가까웠지만, 루게릭병 환자들을 위해 기부하자는 취지는 동일했다고 생각해.

이 운동이 2013년 상반기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미국루게릭병협회(ALS Association)에 기부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건 널리 알려진 사실. 이 운동이 올해 8월 중순 한국에 상륙한 뒤, 연예계는 물론 김무성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정계·재계에도 아이스버킷 열풍이 일고 있어. 루게릭병(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온몸이 위축되다 결국 호흡기 근육마저 경화돼 사망하는 치명적 질병이래.

오늘 내가 친절하게 소개하려는 건, 이런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아냐. ‘좋은 취지를 가진 좋은 대중적 무브먼트’라고 생각해. 동참한 사람에게는 뜬금없을지 모르지만, 운동에 대한 비판도 있더라고. 위키피디아를 보면, 배우 패멀라 앤더슨은 ‘미국루게릭병협회가 치료 연구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한다’는 취지로 아이스버킷 참여를 거부했어. 또 영국 신문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한 칼럼니스트는 “안락의자에 앉은 ‘손가락운동가’를 위한 중산층의 티셔츠 적시기 놀이”(a middle-class wet-T-shirt contest for armchair clicktivists)라고 살벌하게 비아냥거렸더군. 셀레브리티들의 아이스버킷 동영상이 대부분 ‘실제 기부에 대한 정보’를 빼먹고 있다는 비판도 있어.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는 사설 단체의 기부를 돕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고위 공무원의 참여를 금지하는 일도 있었지. 세월호 참사가 아직 현재진행형인데 엄숙해야 할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어.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단 루게릭병 환자들에게는 고마운 현상 같아. 한국 아이스버킷 챌린지 참여자들의 기부는 대부분 ‘한국ALS협회’와 ‘승일희망재단’ 두곳에 집중되고 있어. 승일희망재단은 루게릭병에 걸린 농구선수 박승일씨와 가수 션이 공동대표인 재단이래. ‘한국ALS협회’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난 18일 한국에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상륙한 뒤 최근까지 4000여명의 소액기부자로부터 모두 2억여원의 기부를 받았다고 밝혔어. 그전까지는 소액기부자가 거의 없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래. 박원순 서울시장 등 여러 지자체장들도 최근 한국ALS협회에 기부했대. 배우 문근영씨도 이 단체에 기부했다고 하고. “아이스버킷이 너무 가볍게 이뤄진다는 비판이 있다”는 <한겨레>의 질문에 협회 쪽은 “절망 속에서 외롭게 살아온 루게릭병 환자들에게 이 붐이 결코 나쁘지 않다”며 “일반인들에게 기부문화가 널리 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했어.

고나무 토요판팀 기자
고나무 토요판팀 기자
내 생각도 다르지 않아. 일단 나는 운동의 주제보다 형식이 흥미로워. 오로지 에스엔에스(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만 가능한 운동이라는 점! 종이서명운동이나 데스크톱 플랫폼이었다면 결코 이뤄질 수 없었던 운동이지. 다른 기부·단체에 영감이 될 것 같아. 너무 가볍다는 비판에도 동의하기 어려워. 오히려 가벼워서 더 좋다는 생각도 해.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끼리 만나고 연대하는 것 아니겠어? 실제 연대를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좀 가벼우면 어때?(아니, 가벼우니까 성공했을지 모르지.) 가수 조동희씨처럼 “세월호 특별법을 기억해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참여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니까.

고나무 토요판팀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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