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바이버’와 ‘텔레그램’으로 망명하셨다고요?

등록 2014-10-03 19:32수정 2014-10-04 21:05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카카오톡.
카카오톡.
안녕하세요. 육아휴직 6개월 만에 회사로 돌아온 <한겨레> 사회부 24시팀 정환봉 기자입니다. 6개월 동안 아이가 뱉은 씹다 만 버섯과 밥풀을 줍고, 바나나로 ‘밀당’을 하며, 눈곱도 못 뗀 채 놀이터로 끌려가는 시간을 보내다 귀환했습니다. 그땐 정글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출근하고 나면 딸이 보고 싶답니다. 사람 마음 참 쉽게 변하네요.

마음이 바뀌는 걸 ‘변심’이라고 하죠. 이런 변심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 또 있습니다. 바로 ‘사이버 망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카카오톡’에서 독일의 메신저인 ‘텔레그램’으로 갈아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죠. 변심엔 이유가 있습니다. 친절하고 짧게 정리해보겠습니다.

①9월16일, 박근혜 대통령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 발언도 그 도를 넘고 있다” ②9월18일, 검찰,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 신설 및 유관기관과 함께 인터넷 실시간 모니터링 계획 발표 ③메신저 검열에 대한 불안감으로 사이버 망명 시작 ④9월25일, 검찰 “카카오톡은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없고 그런 계획도 없다” ⑤10월1일,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검찰과 경찰한테 45일치 카카오톡 기록을 압수수색 당한 사실 공개

세월호 집회로 수사받던 정 부대표의 카카오톡 친구는 3000명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500명 이상 대화방에도 여러 개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대화 내용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3000여명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검열당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다음카카오톡 쪽은 “수사 대상자 1명의 하루치 미만의 대화 내용만 제공했다”고 해명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불안감은 잦아들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알려지는 것은 기분 나쁜 일입니다. 술에 취해 친한 직장 동료에게 회사 사장 욕을 했는데 여기저기 소문 돕니다. 급기야 며칠 뒤 사장이 갑자기 보자고 합니다. 심장이 쫄깃하다 못해 딱딱해질 겁니다. 친구와 새누리당이 휴일근로 수당을 줄이려 한다는 기사를 보고 카톡으로 “나라를 뒤집어 버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친구가 세월호 집회에 참여했다가 수사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친구 걱정보다 내란음모죄로 잡혀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더 클지도 모릅니다.

저는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사건을 취재하면서 지난해 2월 국정원에 고소당한 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아 피의자 신분입니다. 한번은 그 사실을 잘 아는 친한 경찰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한참 대화를 나누다 그 경찰이 “아 피의자랑 이렇게 연락하면 안 되는데”라고 농담을 했습니다. 저와 통화한 내역과 문자를 통해 주고받은 내용이 모두 수사기관에 수집될 수 있단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나온 농담이었습니다. 뜨끔했습니다. 그 뒤로 저도 민감한 취재를 할 때는 공중전화를 쓰거나 벨라루스라는 생소한 나라에서 개발한 ‘바이버’ 메신저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이버 망명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국내 전자우편이 언제든 검열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구글이나 야후의 전자우편 계정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심한 이들의 과대망상이 아닙니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과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정치적인 글을 쓴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의 전자우편 계정은 대부분 야후였습니다. 이들이 공직을 수행하면서도 자신을 숨기려 사이버 망명을 하는 세상이니 믿을 곳 없는 국민들의 사이버 망명을 어찌 탓하겠습니까.

정환봉 사회부 24시팀 기자
정환봉 사회부 24시팀 기자
그렇다면 왜 하필 텔레그램일까요? 텔레그램은 러시아인 파벨 두로프가 만든 메신저입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러시아판 페이스북인 브콘탁테에 올라온 내용을 러시아 정부가 검열하고 개입하려는 것에 반대해왔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독일에서 텔레그램을 만들었습니다. 텔레그램의 첫 페이지에는 “우리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자”고 적혀 있습니다. 그 정도면 믿을 만하다고 사람들이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텔레그램의 주 이용자는 언론자유 148위(‘국경 없는 기자회’ 2014년 발표)인 러시아 국민들입니다. 이제 우리도 러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자랑스럽지는 않네요.

이런 상황에서 사이버 명예 훼손을 뿌리까지 캐내겠다는 검찰과 대통령의 계획은 한가한 소리로 들립니다. 국민들이 변심한 이유부터 그 뿌리까지 살펴보는 것이 더 시급한 일로 보입니다.

정환봉 사회부 24시팀 기자 bon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한동훈, 도로교통법 위반 신고돼…“불법정차 뒤 국힘 점퍼 입어” 1.

한동훈, 도로교통법 위반 신고돼…“불법정차 뒤 국힘 점퍼 입어”

‘출근길 비상’ 낮 12시까지 눈…수도권·강원·충청 곳곳 대설 경보 2.

‘출근길 비상’ 낮 12시까지 눈…수도권·강원·충청 곳곳 대설 경보

[단독] “김건희 돈 받아 6천만원 갚겠다” 미래한국연구소 각서 나왔다 3.

[단독] “김건희 돈 받아 6천만원 갚겠다” 미래한국연구소 각서 나왔다

도수치료 본인 부담금 3만→9만5천원…정부안 들여다보니 4.

도수치료 본인 부담금 3만→9만5천원…정부안 들여다보니

서울 ‘11월 폭설’ 117년에 한번 올 눈…원인은 2도 뜨거워진 서해 5.

서울 ‘11월 폭설’ 117년에 한번 올 눈…원인은 2도 뜨거워진 서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