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지난 3월까지 <한겨레> 토요판에서 여러분과 만났던 최성진 기자입니다. 저는 지금 사회정책부에서 복지 부문을 맡고 있습니다. 토요판 시절의 제가 주로 각종 ‘현장’에서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했다면, 이제는 ‘나와 우리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이리저리 고민하고 있습니다.
남종영 토요판 신임 팀장께서 제게 내려준 이번주 친기자의 글감은 공무원연금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공무원연금 제도 개혁’,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데 그냥 확 깎아버리면 안 되냐는 것입니다. 정부와 여당의 공무원연금 개편안(한국연금학회안)에 찬성하는 국민이 과반수를 넘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국민의 눈높이는 확실히 ‘공무원연금 확 깎아버리자’는 쪽에 머무는 것 같습니다. 한겨레 독자 ㄱ씨께서 제게 보낸 아래의 전자우편 내용처럼 말이죠.
“무능하기 짝이 없는데다 밥값도 제대로 못하는 공무원들이 자기들은 월급이 적네, 야근수당도 제대로 못 받네 하며 배부른 소리를 하는데 나는 60살이 다 되도록 20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고 살았어요. 야근수당 같은 건 구경도 못해봤고요. 노인이 되면 받게 되는 우리 국민연금은 쥐꼬리일 게 빤한데, 내 세금으로 월급받는 공무원이 그렇게 많은 연금을 받는다면 내가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어르신이 많을 줄로 압니다. 평생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묵묵히 일만 해왔고, 그런 헌신에 대한 마땅한 보상으로서의 사회보장제도를 누려본 집단적 경험이 없으니 이런 반응이 빚어지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볼 지점은 ‘ㄱ씨의 분노는 어느 쪽으로 향해야 하는가’입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채 노동력을 이용해 돈을 벌어온 사용자한테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형편이 조금 괜찮아 보이는 다른 노동자한테 ‘너는 왜 많이 받냐’고 따져묻는 게 맞을까요.(공무원의 노동자성에 관한 논란은 일단 살짝 접어두겠습니다.)
노후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 대다수가 노후빈곤에 대한 두려움 없이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도록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빈틈없이 마련하는 일은 국가의 몫입니다. ‘쥐꼬리일 게 빤한 국민연금’ 때문에 미래가 걱정이라면, 일차적으로는 국민의 적정 노후소득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겁니다.
낡은 공무원연금 제도 ‘개혁’하자는데, (특히 하위직) 공무원이 반발하는 데는 이런 배경도 있습니다. 국민에게는 국가로서, 또 공무원에게는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정부가 ‘공무원연금에 쏟아붓는 국민 세금만 한해 몇 조’라는 식의 자극적인 자료만 언론에 흘려 국민과 공무원 간 편가르기를 시도하고, 그걸 그들이 말하는 ‘공무원연금 개혁’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불만이 가득합니다.
다들 힘겹게 살아가는 노동자와 서민, 하위직 공무원끼리 ‘네가 많네, 내가 적네’ 식 싸움을 그친다면, 우리는 노후소득 보장 수단으로서의 공적연금에 관해 좀더 합리적인 토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위직 공무원을 중심으로 꾸려진 공무원노동조합의 주장도 그렇습니다. 공무원연금 제도에 불합리한 구석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뜯어고치자는 데에 그들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번에 손본 뒤 몇년 뒤 또 이런 소란을 겪어야 한다면 아예 이참에 제대로 뜯어고치자, 이를 위해 정부는 지금처럼 ‘몰아치기식’으로 나올 게 아니라 공무원도 논의기구에 포함시켜 본인들 주장도 하게 해달라는 겁니다.
공무원 노조가 주장하는 사회적 합의기구가 됐든, 야당이 만들자고 하는 대타협위원회가 됐든 이런 장이 마련되면 논의의 스펙트럼은 필연적으로 넓어질 겁니다. 많은 주제를 다루다 보면 논의의 속도도 더뎌지겠지요. 그런데 한번 봅시다. 정부와 여당은 이미 ‘연금학회안’과 ‘정부 초안’으로 불리는 두 개의 개편안을 내놓았습니다. ‘재정건전성’ 확보에 방점을 찍은 이들 개편안에 대해 하위직 공무원은 반발했습니다. 제도의 본래 취지인 노후소득 보장은 일정 부분 포기한 방안이었던 겁니다.
급히 개편안을 만든다 해도 당사자를 설득해내지 못한다면, 그걸 어디에 쓰겠습니까. 정부와 여당이 재정안정화라는 정책 목표와 함께 국민과 공무원의 적정 노후소득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관한 분명한 해답만 갖고 있다면, 어떤 형태의 논의기구라도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 정부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최성진 사회정책부 기자 csj@hani.co.kr
최성진 사회정책부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