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신임 대사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기 위해 김기춘 비서실장과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도 넘은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
박근혜 대통령의 수사 개입이 ‘금지선’을 넘었다. 수사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결론까지 미리 정해준 것과 다를 바 없는 발언을 했다. 보고서 내용의 진위와 관련해 최고 권력자의 ‘가이드라인’을 제시받은 마당에 검찰이 이 사건의 진상에 한발짝이라도 다가설 수 있을지를 회의적으로 보는 반응들이 검찰 안팎에서 나온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증거 수집을 통한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수사 본연의 방법론에 역행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만만회를 비롯해서 근거 없는 얘기들이 많았다”, “근거 없는 일로 나라를 흔드는 일은 없어져야” 등의 발언을 통해 정윤회씨의 국정 개입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의혹의 주변을 훑어 단서를 찾고, 관련자의 진술을 확보하며, 이를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귀납식’ 수사가 시작되려는 찰나, “그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연역적 수사’를 하라는 ‘교시’가 내려진 셈이다.
이런 발언은 수사의 큰 갈래로 지목되는 보고서 내용의 진위 확인을 곁가지로 보고 미리 ‘가지치기’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보고서 내용을 “기초적인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규정했다. 또 “조금만 확인해 보면 금방 사실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을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같이 보도를 하면서 의혹이 있는 것같이 몰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한 것은 언론 보도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결론을 내린 것과 같다.
‘국정농단’ 규명과 정반대 방향
수사 시작도 전에 한계 정해줘
“집권 2년차 대통령 서슬 퍼런데
어느 간부가 좌고우면 않고…”
‘수사 중립성 법규정 무시’ 비판
일부 참모들 ‘너무 강경’ 반응도
문서유출, 특수2부 배당 ‘총력전’
‘국정농단’건은 뒷전 밀릴 가능성 박 대통령은 “검찰은 내용의 진위를 포함”해서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하라는 말도 했지만 이미 ‘관련자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한 것을 대통령이 인정해버린 만큼, 검찰이 이를 거스르는 수사결과를 내놓기가 어렵게 됐다.
검찰 내부에서도 서슬 퍼런 집권 2년차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이 나온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검찰 간부는 “적어도 이 정부가 두 번 이상 검찰 인사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떤 검찰 간부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수사를 지휘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검찰 특수부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도 “검찰로서는 문건 유출 부분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정씨의 국정 농단 여부는 간단하게 사실 확인만 하면 된다. 결국 명예훼손 판단을 위한 근거만 찾으면 되는 셈”이 됐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 말씀 덕분에 수사가 한결 편해진 모양새”라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박 대통령 발언은 검찰의 중립성을 규정한 검찰청법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기도 하다. 검찰청법 제8조는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항인데,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 메시지라는 ‘정치 행위’를 통해 법규정의 취지를 무시해버린 것이다.
검사 출신인 금태섭 변호사는 “권력 핵심부의 파워 게임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최고의 공적 관심사에 해당한다. 이를 정치 행위로 해결하지 못하고 고소·고발을 통해 검찰에 떠넘기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게 떠넘겨 놓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은 더더욱 큰 문제”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민주적 권력 작동 방식에 대해 기본적 인식조차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검찰도 사건 배당부터 대통령의 ‘수사 지휘’에 적극 부응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국정 농단 여부에 대한 조사가 포함된 명예훼손 부분은 통상 명예훼손 사건을 맡아온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맡기면서도, 문서 유출 부분은 특수2부에 배당했다. 또 양 부서의 수사 지휘도 인지부서를 총괄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하도록 했다. 주로 인지·기획 수사를 맡는 특수부에 보고서 유출 부분을 맡긴 것은 박 대통령의 주문대로 이 대목을 강도 높게 수사하겠다는 ‘예고’인 셈이다.
노현웅 이경미 기자 goloke@hani.co.kr
수사 시작도 전에 한계 정해줘
“집권 2년차 대통령 서슬 퍼런데
어느 간부가 좌고우면 않고…”
‘수사 중립성 법규정 무시’ 비판
일부 참모들 ‘너무 강경’ 반응도
문서유출, 특수2부 배당 ‘총력전’
‘국정농단’건은 뒷전 밀릴 가능성 박 대통령은 “검찰은 내용의 진위를 포함”해서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하라는 말도 했지만 이미 ‘관련자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한 것을 대통령이 인정해버린 만큼, 검찰이 이를 거스르는 수사결과를 내놓기가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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