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조사를 마친 정윤회씨가 11일 새벽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서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대법원 “국가 기능 위협 안 하면 비밀 아냐” 판례
‘정윤회 국정 개입 보고서’ 수사의 한 축인 보고서 유출과 관련해 관련자들에게 어떤 죄목이 적용될지도 관심거리다. 지금까지 형법의 공무상 비밀누설죄가 적용돼 압수수색과 구속영장 청구가 이뤄졌지만, 법원 판례에 비춰 보면 해당 보고서는 공무상 비밀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무상 비밀누설과 관련해서는 ‘옷로비 사건’을 살펴볼 만하다. 1999년 1월 박주선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경찰청 수사국 조사과(일명 사직동팀)에 ‘외화밀반출 사건 피의자인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의 부인이 김태정 검찰총장의 부인에게 2200만원짜리 옷을 사줬고, 그 뒤 김 총장 부인이 옷값 3500만원 대납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소문을 내사하라고 지시했다. 다음달 법무비서관실은 대통령과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이 첩보가 사실무근이라는 내용의 ‘보고자료(검찰총장 부인관련 비위첩보 내사결과)’를 올렸다. 박 비서관한테서 보고자료를 건네받은 김 총장은 이를 신동아그룹 박아무개 부회장에게 보여줬다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됐다.
1·2심은 이 보고서를 공무상 비밀로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2003년 12월 공무상 비밀이 아니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보고서에는 조사를 받은 참고인들의 진술 요지가 간단히 기재돼 있긴 하지만 주된 내용은 첩보내용이 사실무근이라는 것에 불과해, 국가 안전보장·질서 유지·공공복리를 침해하는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보고서 내용은 실질적으로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없고, 그 내용이 알려져도 국가의 기능을 위협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고위공직자 가족을 내사한 청와대 보고서도 국가 안전보장 등과 직접 관련된 게 아니라면 공무상 비밀이 아니란 얘기다.
‘정윤회 보고서’는 민간인인 정씨의 언행을 담은 동향 보고서다. 박 대통령이 나서서 ‘찌라시 수준’이라고 규정했고, 검찰도 내용이 거짓이라는 잠정적 판단을 내린 상황이다. ‘누설되면 국가 기능을 위협할 수 있는’ 공무상 비밀로 보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한 부장판사는 “보고서가 정말로 찌라시 수준의 내용이라면 공무상 비밀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검찰은 보고서 유출 관여자들에게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 적용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회의적 견해도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구두 보고를 할 사안인데 편의상 문서로 만든 경우까지 대통령기록물로 보고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에 대통령기록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장은 “비서관실 정보보고 문서는 대통령 직무 수행에 관련한 문서로서, 작성이 완료되면 대통령기록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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