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아무개 경위의 주검이 안치된 경기도 이천의료원 영안실 들머리에서 13일 주검 감식을 마친 과학수사대 요원들이 주검 안치실을 나서고 있다. 이천/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유서에 “민정수석실 제안” 파문
최 경위, 영장실질심사때도
“민정비서관실, 한 경위에
혐의 인정하면 불입건 회유” 주장
언론에 보도돼…청와대는 부인
최 경위, 영장실질심사때도
“민정비서관실, 한 경위에
혐의 인정하면 불입건 회유” 주장
언론에 보도돼…청와대는 부인
청와대 문건 유출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소속 최아무개 경위가 유서에서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의 수사 개입 의혹을 언급해 검찰 수사에 또 다른 ‘복병’이 등장했다. 함께 문건을 유출한 것으로 지목돼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한아무개 경위가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의 회유를 받았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검찰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최 경위는 유서 가운데 한 경위 앞으로 남긴 대목에서 “너무 힘들어하지 마라. 나는 너를 이해한다. 민정비서관실에서 너에게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당연히 흔들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라고 했다. “내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은 너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도 했다. 자신들은 별 잘못이 없지만 권력 핵심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려가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최 경위는 그 ‘제의’가 무엇인지는 더 이상 밝히지 않았다.
그 내용은 청와대가 유서에 대해 내놓은 해명을 통해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한 경위가 청와대 직원과 접촉한 적 없다며 “한 언론 보도를 보면 한 경위가 영장실질심사에서 그런 일이 없었다고 담당 판사에게 밝힌 것으로 돼 있다”고 밝혔다. 앞서 <동아일보>는 최 경위가 영장실질심사에서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파견 경찰이 한 경위한테 ‘(문건 유출) 혐의를 인정하면 불입건해주겠다’고 회유하는 것을 들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청와대 등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극히 민감한 이번 사건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또는 그 소속 민정비서관실이 사건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가려고 시도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앞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민정비서관실이 오아무개 전 행정관을 조사하면서 유출 배후로 자신을 지목하도록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이 조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기 문란”이라는 표현을 쓰며 강도 높은 수사를 주문한 지난 1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논란은 청와대 또는 김영한 민정수석비서관, 우병우 민정비서관 등 검찰 출신들이 이끄는 민정수석실이 검찰에 지닌 영향력을 고려하면 예사롭지 않다. 오 전 행정관을 조사한 특감반장 역시 현직 검사로 있다가 형식적으로 사표를 내고 청와대에서 일하고 있다.
유서 내용뿐 아니라, 최 경위의 죽음 자체도 ‘청와대 가이드라인’ 논란과 함께 검찰 수사에 부담이 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건을 ‘정윤회 보고서 내용의 진위’(형사1부)와 ‘보고서 유출 과정’(특수2부) 두 갈래로 나눠 수사해왔다. 형사1부가 ‘국정 농단’, 특수2부는 ‘국기 문란’ 사건을 맡은 셈이다. 그런데 검찰은 ‘보고서 진위’ 수사의 경우 ‘강남 중식당에 정씨와 십상시들이 한달에 두번씩 모였다’는 보고서 내용의 진위 자체로 수사 범위를 좁게 설정했다. 반면 ‘보고서 유출’ 쪽은 ‘정윤회 보고서’에다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에서 반출했다는 수백쪽 분량의 보고서와 박지만 이지(EG) 회장에게 건네졌다는 문건 등 다수의 문건 유출 전체로 수사 범위를 확대했다.
최 경위는 이 ‘보고서 유출’ 수사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사건 배당이 이뤄진 1일 “(‘정윤회 보고서’ 내용은) 찌라시 수준이며, 문건 유출은 국기 문란 행위”라고 규정한 바 있다. 보고서 유출 수사나 열심히 하라는 지침을 내린 셈이다.
그러나 검찰은 여론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수사는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수사 방향 수정을 언급하면 그 자체로 기존 수사 방향의 문제점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검찰은 14일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고소인 겸 참고인으로 불러 지난 4월 정윤회씨와 연락한 경위 등을 조사했다. 하지만 검찰이 이미 ‘십상시 모임’의 실체는 없다는 쪽으로 결론 내린 상황이어서, ‘정윤회 보고서’에 대한 그의 해명을 듣는 등 정해진 결론을 위한 요식행위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번주 안에 박지만 회장도 조사해 <세계일보> 기자를 통해 청와대 문건 100여쪽을 받아본 뒤 청와대나 국가정보원 쪽에 알렸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은 정씨가 박 회장 미행을 지시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정씨가 <시사저널>을 고소한 사건에 대해서도 박 회장을 조사하기로 했다. 또 ‘정윤회 보고서’의 제보자인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과 친분이 있는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을 이번주에 소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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