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이마트 공덕동점에 의무 휴업을 한다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리턴’과 ‘정윤회 문건’으로 시끄러웠던 지난 12일 서울고법 행정8부(장석조 부장판사)가 “대형마트의 영업제한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른바 “이마트는 대형마트가 아니다”는 제목의 기사로 알려진 ‘황당 판결’인데요. 정확하게는 서울시 동대문구청과 성동구청이 2012년 말 관할 구역 내 대형마트의 △오전 0시~8시 영업을 금지하고 △매월 둘째, 넷째 주 일요일을 의무휴업일로 정한 행정처분이 위법하다고 한 겁니다. 장석조 부장판사의 판결, 지금부터 꼼꼼히 따져 보겠습니다.
우선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재판부가 대형마트의 영업제한을 규정한 유통산업발전법을 부정하진 않았다는 점입니다. 부정하지 못했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말 롯데마트와 이마트 등 대형마트들이 “유통산업발전법이 평등권과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을 각하했습니다. 법 자체로는 직접적인 기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니 서울고법 재판부로서는 유통산업발전법의 틀 아래서 위법성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이 위법한가?
그런데 그 판단이 참 당황스럽습니다. 우선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1. 재판부는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이 법에서 규정한 ‘대형마트’가 아니라고 봤습니다. 그 대형마트들이 ‘대형마트’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 그냥 슈퍼마켓일까요?
유통산업발전법 12조의2 1항은 “지자체장은 건전한 유통 질서의 확립과 근로자의 건강권 및 중소 유통업과의 상생 발전을 위해 대규모 점포(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거나 의무휴업일을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 조항 속 ‘대형마트’란 무엇인가를 따졌습니다.
같은 법 시행령을 보면 “대규모 점포(대형마트)란 매장 면적 합계가 3000㎡ 이상으로…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의 집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원고인 “이마트 등은 대형마트가 아니다. 왜? 점원이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가 ‘이들 매장에서 점원의 역할이 크다’며 길게 제시한 근거들과 그 타당성은 이 기사 뒷부분에서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2. “설령 대형마트에 해당된다 하더라도 처분 내린 절차가 위법하다”는 게 재판부의 두 번째 판단입니다. 이 판단의 근거는 간략합니다. 구청들은 영업제한 처분을 내리기 전에 각 매장에 사전통지를 하고 의견을 수렴했는데, 대형마트에 입점한 임대매장 운영자들에겐 사전통지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3. 판결문엔 ‘재량권의 불행사 또는 해태의 위법성에 대한 판단’도 나와있군요. ‘지자체가 영업제한 처분을 내리기 전에 얼마나 객관적으로 따져봤는지 재판부가 한번 검증해보겠다’는 말을 참 어렵게도 적어놨는데요.
재판부는 “행정처분이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처분으로 인한 이익·불이익에 관해 충분히 검토해야 하지만 아래와 같은 이유로 구청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위법하다고 밝혔습니다.
첫째,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사이의 유통 질서가 도대체 어떤 상태여야 ‘건전하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부족했다.”
둘째,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건강권이 침해된다고 하는데 실제로 건강에 대해 조사한 게 없다.”
셋째, “영업 제한으로 인해 대형마트 안 임대매장 운영자나 대형마트에 납품을 하는 중소 유통업자들의 피해를 고려하지 않았다.”
넷째, “영업 제한으로 인해 지역 소비자들이 입게 될 불이익을 고려하지 않았다.”
다섯째, “각 대형마트의 성격(대형마트인지 슈퍼형인지), 지리적 특성(전통상업보존구역 내에 있는지), 면적 등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제한했다.”
4. “홈플러스 같은 외국계 회사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서비스거래에 관한 일반 협정(GATS)과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에 위배된다”는 게 재판부 판단입니다. 예외적으로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제한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대형마트의 근로자보다 전통시장의 중소상인들 및 근로자들의 근무환경이 더욱 열악하므로 대형마트 영업을 제한하는 건 건강권 보호와도 관련이 없다”는 게 재판부 설명입니다. 이런 설명이 요즘 유행인가 봅니다. “비정규직 처우개선 위해 정규직의 양보가 불가피하다”며 정규직 해고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겠다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말이 생각나지 않으세요?
5. 재판부는 또 “영업 제한은 근로자 건강권을 보호하고 중소 유통업과 대규모 점포의 상생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이유가 재밌습니다. “원고(대형마트)들이 유통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한 자료가 제출된 적이 없고, 오히려 대형마트들이 유통 단계를 줄여 상품의 질을 보장하면서도 소비자가격을 인하하는 등 유통 질서 개선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즉,
대형마트가 유통 질서 개선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상생 발전을 하겠다’며 영업을 제한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6. 행정처분의 적합성과 함께 상당성도 잃은 처분이란 게 재판부 판단입니다. 역시 ‘그들만의 언어’입니다. 상당성은 판결문에서 아주 다양한 의미와 ‘목적’으로 쓰이지만, 행정재판에서의 상당성이란 행정처분이 의도치 않게 초래한 불이익이 얼마나 큰지, 그게 무시해도 될 만한 내용인지를 따져보는 걸 의미합니다.
재판부는 이 대목에서 작심한 듯 일방적으로 영업 제한 처분의 부당함을 길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뜻이 훼손되지 않을 정도로만 요약한 판결문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최근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돼 육아와 살림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맞벌이 부부는 야간이나 주말이 아니면 장을 보기 어렵다. 아이가 있는 경우는 더더욱 주차 공간이나 편의시설이 열악한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는 건 어렵다. 따라서 전통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전통시장의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건 소비자 선택권을 가로막는 것이다. 나아가 저출산 등 사회 문제를 도외시 한 채 여성의 사회진출에 어려움을 더하는 처분이다.”
“대형마트들은 유통 질서 개선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동시에 소비 환경을 개선해서 소비자 효용을 증대시켰다. 따라서 영업 제한은 소비자 선택권에 대한 제한이다. 대형마트들의 소비자 효용을 위한 노력은 국내 유통업의 대외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고 해외 자본으로부터 국내 시장의 잠식을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대형마트 근로자들은 교대 근무나 대체 휴무 등의 선택이 가능하지만 전통시장 상인들은 대형마트보다 근무 환경이 더욱 열악하여 건강권 보호가 필요하다. 영업 제한으로 인해 대형마트에 들어온 임대매장이나 납품업자들의 피해도 크다. 또한 일자리 감소로 근로자들, 특히 여성근로자들의 일자리 감소가 클 것이다.”
“영업 제한 효과에 관한 시장경영진흥원이나 소상공인진흥원의 조사 결과는 영업 제한에 우호적인 단체가 단기간 조사한 결과이다. 반면 연세대 정진욱, 최윤정 교수가 집필한 ‘대형소매점 영업 제한의 경제적 효과 분석’은 광범위한 조사를 거친 객관적, 과학적 연구 결과로 신빙성이 높다.”
“영업제한으로 인한 전통시장 보호의 효과는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없다.”
판결문도 사람이 쓰는 글이라서 강조하고 싶은 대목이 있으면 반복해서 힘을 주려고 합니다. 1~6까지의 판단과 근거들이 다른 듯하면서 비슷해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재판부의 긴 판단을 거칠게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본다면 다음과 같을 겁니다.
“영업 제한이 가능한 ‘대형마트’에 해당하지도 않을뿐더러, (여러 이유로) 이들 대형마트들이 영업 제한을 당할 정도로 시장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작용이 큰 영업 제한을 절차도 제대로 따르지 않은 채 밀어붙이는 건 위법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1.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에 대형마트는 없습니다. 재판부 논리는 ‘대형마트는 점원의 도움이 없어야 한다’→‘그런데 이마트나 롯데마트 등을 가보면 채소·과일 코너는 물론이고 정육·생선·반찬 코너에 제품을 덜어주는 점원들이 있다’→‘따라서 이마트나 롯데마트 등은 영업 제한이 가능한 ‘대형마트’가 될 수 없다’로 정리됩니다.
대형마트를 ‘점원의 도움 없이’ 물건을 사는 곳으로 분류한 취지는 백화점이나 전문매장과 달리 점원의 도움 없이 ‘일괄적으로 물건을 담아 구매하는 방식의 창고형 매장’을 두루 일컫기 위함이었습니다.(
▶ 관련 기사 : ‘골목상권 살리기’ 저버리고 대형마트 편들어 ). 주로 카트를 끌고 다니며 장을 보는 대형마트를 다른 소매점과 구별하기 위해 만든 편의상의 표현이었던 겁니다.
대전시 중구 태평전통시장에서 지난 11일 ‘100원 경매’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태평전통시장은 최근 대형마트 및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잇단 개장으로 침체된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이날부터 매월 둘째·넷째 주 금요일에 ‘100원 경매’ 행사를 열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유통산업발전법에 대형마트의 영업 제한 내용이 포함된 시기는 2012년 1월입니다. 2000년대 들어 대형마트들의 무분별한 확장으로 지역 상권이 쇠퇴하고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이 심화했습니다. 대기업의 유통 시장 독과점 구조를 깨뜨리기 위해 10년 가까이 개정안 발의와 무산이 반복된 끝에 어렵게 여야 합의가 이뤄진 때가 2012년 1월이었습니다. 재판부 논리라면 국회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도 않는 대규모 점포(대형마트)의 영업을 제한하기 위해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논의를 했고 법을 개정했다는 말이 됩니다.
재판부가 이런 법의 취지를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판결 직후 참여연대는 “대형마트의 영업 형태를 무시한 현실성 없는 판결”이라는 비판을 내놓았습니다. <한겨레>가 사설을 통해 “입법 취지를 외면한 판결”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2. “검토가 부족했다”며 재판부가 제시한 다섯 가지 이유들은 해당 지자체뿐만 아니라 10년 가까운 법률 개정에서 논의가 치열했던 내용입니다. 그 논의의 결과가 반영된 것이 법률이었습니다.
재판부는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사이의 유통 질서가 도대체 어떤 상태여야 ‘건전하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부족했다”거나 “오히려 대형마트가 유통 질서 개선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태가 ‘건전한 상태’인지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현재 상태가 건전하지 않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고 있습니다. 대형마트의 ‘갑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 국민적인 합의가 이뤄져 법도 개정이 됐던 겁니다.
“대형마트들이 유통 질서 개선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재판부의 판단과 달리 현실에선 여전히 대형마트들의 ‘갑질’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지난 1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마트·이마트·현대백화점에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이들 유통업계 ‘빅3’가 납품업체에 부당요구를 해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 바로 가기: 롯데마트, 납품업체에 “16억 시식행사비 내라” ) 롯데마트는 최근 1년2개월 동안 납품업체에 판매촉진행사 비용 16억500만원을 떠넘겼다고 합니다. “영업 제한을 하면 피해를 본다”고 재판부가 걱정한 납품업체들이 대형마트들로부터 어떻게 휘둘림을 당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지자체들이 객관적으로 따져보지 않았다”며 영업 제한 처분을 위법하다고 한 재판부의 기준은 판결에도 동등하게 적용돼야 합니다. 재판부가 “대형마트들이 유통 질서 개선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판단한 근거가 판결엔 제시돼 있지 않습니다.
3. 외국계 기업인 홈플러스를 상대로 한 영업제한이 WTO 협정이나 FTA 협정 위반이라는 재판부 판단에도 허점이 존재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판단을 하는 행위 자체가 대법원 판례에 어긋납니다.
한국 대법원은 2009년 1월 중국 타일업체 ‘상하이 아사 세라믹’이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낸 ‘덤핑 방지 관세 부과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상하이 아사 세라믹은 “덤핑방지관세 부과의 근거인 기획재정부의 해당 규칙이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마트·롯데마트 등이 영업 제한 처분을 내린 구청들을 상대로 주장한 내용과 같은 ‘종류’입니다. 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GATT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권리·의무 관계를 설정하는 국제 협정으로 이와 관련된 법적 분쟁은 WTO 분쟁해결기구에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개인 또는 회사가 국내 법원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 협정에 위반됐다며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대법원 2009년 1월30일 선고)대법원 판례를 따른다면 서울고법 행정8부는 동대문구청 등의 영업 제한이 국제 협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판단해선 안 되는 겁니다.
4. 조사 결과를 취사 선택한 재판부의 ‘안목’도 그리 높아 보이진 않습니다. 재판부는 “시장경영진흥원이나 소상공인진흥원의 조사 결과는 영업 제한에 우호적인 단체가 단기간 조사한 결과인 반면, 연세대 정진욱·최윤정 교수가 집필한 ‘대형 소매점 영업 제한의 경제적 효과 분석’은 광범위한 조사를 거친 객관적, 과학적 연구 결과로 신빙성이 높다”고 밝혔습니다. 정진욱·최윤정 교수의 분석에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정진욱·최윤정 교수는 2011년 1월1일~2012년 6월30일 유통 시장을 분석한 뒤, “대형마트 매출은 월 평균 2441억원이 줄어든 반면, 전통시장 등에 돌아간 금액은 336억~418억원에 불과했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재판부가 판결문 말미에 “영업 제한으로 인한 전통시장 보호의 효과는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최 교수의 이 연구는 한국체인스토어협회의 의뢰로 진행된 연구입니다.(
▶ 관련 기사 : “대형마트 의무휴업제 유지·강화해야” 86%)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운영사들이 회원사로 있는 이익단체입니다.
재판부는 소상공인진흥원 등을 “영업 제한에 우호적인 단체”로 규정한 반면 정·최 교수의 분석을 의뢰한 단체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5. ‘상식적’ 수준에서 누구든지 반박이 가능한 내용도 많습니다.
재판부는 “맞벌이 부부는 야간이나 주말이 아니면 장을 보기 어렵다. 영업 제한을 하면 소비자 선택권이 가로막힌다”고 했지만, 매달 둘째 주와 넷째 주 일요일 문을 닫는 게 맞벌이 부부의 장보기 ‘선택권’을 그토록 제한하는 것인지 되물을 수 있습니다.(
▶ 관련 기사 :) “전통시장 상인들의 건강권 보호가 필요하다.(그러므로 대형마트의 영업 제한은 전통시장 상인들의 건강권 보호와 무관하다)”고 했지만, 전통시장 상인들은 건강권을 위협받기 이전에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무엇을 우선해야 할까요?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