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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직도 미행과 괴롭힘, 우주에 가서 살란 말이요

등록 2015-02-06 20:40수정 2015-02-08 09:52

탈북자들은 국가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도 숨죽여 살아야 한다. 국가정보원과 등지면 남한 사회 정착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첩사건 피해자인 탈북자들이 고민을 거듭하다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달 1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 모인 탈북자들. 사회자 강룡씨와 좌담 참석자 유우성씨를 제외하고 모두 익명을 요구해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탈북자들은 국가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도 숨죽여 살아야 한다. 국가정보원과 등지면 남한 사회 정착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첩사건 피해자인 탈북자들이 고민을 거듭하다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달 1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 모인 탈북자들. 사회자 강룡씨와 좌담 참석자 유우성씨를 제외하고 모두 익명을 요구해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탈북자 간첩사건 피해자 좌담회
▶ 간첩 혐의를 받고 기소당한 피의자가 무죄 판결을 받아도 딱히 국가의 사과는 없습니다. 피해자는 간첩사건 연루자였다는 낙인을 평생 안고 삽니다. 간첩을 잡는 일이 중요하지만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이 드러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한국 사회는 제대로 성찰하고 있을까요. 성찰의 첫걸음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는 일입니다. 간첩 수사를 경험한 탈북자들이 어렵게 언론 앞에 나섰습니다.

다들 참여를 주저했다. 2008년 이후 간첩 사건에 연루된 탈북자(북한이탈주민)들에게 한국 사회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증거조작 사실이 밝혀진 지 1년을 맞는 한국 사회를 이들이 어떻게 지켜보았는지 궁금했다. 각자 사적인 자리에서는 자유롭게 말하면서도 언론 앞에 나서는 것은 두려워했다.

이유는 두가지다. 남한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가려면 정부를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다. 혹여라도 자신의 탈북 사실이 알려져 북에 남은 가족들에게 불이익이 갈까 해서다. 유우성씨를 제외하고는 얼굴을 공개할 수 없는 저간의 사정이다. 간첩 의심을 받은 탈북자들은 스스로 온전한 시민권을 포기하고 산다.

그럼에도 이들은 오랜 고심 끝에 <한겨레>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로 결심했다. 간첩 사건에 한번 연루되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이들은 증언했다. 간첩과 탈북자라는 두개의 주홍글씨는 이들의 가슴에 박힌 ‘슬픔의 대못’이었다. 좌담회 공간의 공기는 가끔 무거웠고 종종 답답했다.

이들은 남한 사회에 호소했다. 어렴풋이 알고 찾아온 자유라는 이름의 희망을 남한 사회가 해치지 말아달라고. 간첩으로 몰려 고통을 당한 뒤 남한으로 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다시 제3국으로의 망명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그래도 같은 민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바람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2013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35)씨, 2014년 보위사령부 직파간첩 사건의 홍아무개(42)씨, 2008년 국가안전보위부 남파간첩 혐의로 구속됐다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난 ㄱ(70)씨, 2014년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강압 수사를 받아 간첩이라고 허위자백했지만 간신히 혐의를 벗고 풀려난 ㄴ(49·여)씨가 좌담회 참석에 응했다. 한겨레는 지난 1년간 이들과 여러차례 만나 주장의 일관성과 신빙성 등을 확인해왔다.

사회는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있는 탈북자 강룡(38·뉴코리아네트워크 대표)씨가 맡았다. 좌담회는 지난달 1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탈북자 간첩 사건의 피해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문…조작…미행…괴롭힘
간첩으로 몰려 삶이 파괴당한
탈북자들이 처음 한자리 모였다
로스쿨 수학중인 탈북자 강룡씨의
사회로 참석자들은 입을 열었다

보복성 간첩 신고의 덫에 놓인 국정원

강룡 탈북자들이 간첩으로 몰리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서는 증거가 조작되는 일도 벌어졌다. 독재국가인 북한을 박차고 자유 남한으로 왔는데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이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탈북자들을 간첩으로 모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남한 사회에서는 간첩 사건의 피해자가 어떻게 살게 되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 명백히 조작사건임이 밝혀진 유우성씨도 명예회복을 못한 상태다. 한국 사회에서 간첩 사건에 휘말린 탈북자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많은 국민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 더는 억울한 피해자들이 없게 하고 싶다. 이제 본격적인 진행을 하겠다. 먼저 유우성씨는 그간 어떻게 지냈나?

유우성 내 사건은 대법원 계류중이다. 언제 판결이 날지 모르겠다. 아직도 피의자 신분이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재취업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지인들이 보태주는 생활비로 간신히 생활하고 있다. 고법에서도 무죄 판결 나니까 검찰이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지난해 5월 나를 다시 기소해서 또 다른 재판을 받고 있다. 탈북자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생활비 보내는 것을 그냥 무보수로 도와주었을 뿐이다. 검찰이 2010년 기소유예 처분을 한 사건을 뒤집고 기소한 것은 보복수사라고 판단한다.

강룡 나머지 분들도 각자 어떻게 간첩으로 몰렸는지 설명해 달라.

재작년 엔케이 지식인연대(탈북자 지식인 단체) 정보팀장(유아무개씨)이 북한의 박씨 모녀를 데리고 함께 탈북해 달라고 부탁해서 내가 탈북해 나왔는데 그 정보팀장이란 사람이 나를 보위부 정보원이라고 국정원에 신고했다. 박씨 모녀의 탈북을 유씨에게 의뢰한 사람이 박씨의 어머니인데, 그분과 유씨의 관계가 중간에 틀어져버렸다. 유씨가 돈을 못 받았다. 그래서 보복하려고 나를 그렇게 간첩이라고 허위로 신고한 건데 국정원은 내 말을 안 믿고 유씨 얘기만 믿었다.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받을 때 ‘국정원에 잘 협조해주면 간단한 재판만 받고 자유대한에서 직업도 주고 아파트도 주겠다’고 회유해서 내가 보위사령부 직파간첩 맞다고 허위로 자백했었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님 만나서 허위 자백을 뒤집고 간신히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이 항소해서 지금 고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2008년 한 탈북 여간첩이 나를 보위부 요원이라고 허위로 검찰에 진술해서 6개월 동안 구치소에 구속됐다가 무죄 판결 받고 풀려났다. 2012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나는 2013년 말 합동신문센터에서 나왔다. 보위부 요원이었다고 허위 자백을 했다. 수년 전 탈북해서 중국에서 장사를 했었는데 국정원이 장사 수익금으로 보위부에 충성자금을 댄 것으로 몰아갔다. 독방에 수개월 갇혀 있으니 너무 힘들어서 그냥 허위로 인정해버렸다. 국정원에서 진술을 어떤 식으로 하면 되는지 힌트를 주는 대로 진술서를 썼다. 하지만 나중에 진술을 뒤집고 풀려났다. 나는 재판까지 가지는 않았다.

강룡 왜 탈북자들이 간첩으로 몰리게 되는 걸까. 2003년 이후 구속된 간첩이 49명인데 이 중 21명이 탈북자 위장 간첩으로 발표됐다.(2013년 새정치민주연합 심재권 의원 자료)

대체로 보면 수법이 비슷한 것 같다. 수사기관이 어떤 목표를 정해 수사를 시작하면 꼭 탈북자 고발자가 튀어나온다. 법정에 나온 이들은 황당무계한 증언을 한다. 그런데 나의 무죄를 입증해줄 수 있는 탈북자들은 증인 신청을 하면 무서워서 법정에 나오지를 않는다. 탈북자들은 약점을 갖고 있다. 남한에서 생존하려면 애국자가 되는 수밖에 없는데 (남한 당국이) 그런 점을 이용한다.

나에 대해 안다는 사람들이 재판정에 나오는데 역시 황당한 소리를 하더라. 이분들은 국정원에 가서 두세번씩 조사를 받는데 재판부에는 마지막 진술서만 제출을 한다. 처음에 진술한 건 왜 제출을 안 할까. 두세차례 조사받으면서 훈련된 상태에서 법정에 나와 진술하는 것 같다.

유우성 재판정에 참고인으로 나와 나를 간첩으로 몰아간 탈북자 여성이 있었다. 재판 출석 전후로 국정원에서 2천만원 받았더라. 참 기가 막혔다.(<한겨레> 2014년 11월15일치 11면 참조)

신고포상금 최대 5억, 허위자백의 유혹

강룡 우성이가 붙잡혀 갔을 때 우성이가 분명 간첩이 아니라는 걸 알 만한 친구들에게 증언을 서자고 내가 직접 설득한 적 있다. 그들은 나를 만날 때는 우성이가 간첩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나서서 말하는 건 무섭다고 하더라. 나에게도 나서지 말라고 설득했다. 권력기관과 등져서 좋을 게 없다는 거다.

탈북자들은 북한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남한에서도 위법자가 되면 어디 갈 데가 없다. 우주로 가야 할까?

유우성 그러니까 할 수 없이 탈북자들이 간첩이라고 허위 자백을 해버리는 것 같다.

강룡 수사당국이 자꾸 이렇게 수사하면 진짜 간첩을 발표해도 국민들은 안 믿게 된다.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받을 때 간첩이 아니라고 부인하면 어떻게 되나?

말이 안 통한다. 대체 나를 왜 간첩으로 의심하느냐고 물으면 다른 사람들이 내가 중국말을 잘한다고 말했다고 설명하더라. 그게 간첩으로 의심하는 이유가 될 수 있나. 중국말 잘하면 보위부 외화벌이 요원이 되는 걸까?

아는 게 많으면 간첩으로 몰리기 쉽다. 할 줄 아는 게 많은데 왜 탈북했느냐는 식이지.

국정원 조사관들이 보위부 요원 될 때 하는 맹세문 문구도 다 알려준다. 그러면 그렇게 맹세했다고 내가 진술하는 거다. 오히려 국정원이 간첩양성소가 아닌가 싶다.(웃음)

요즘 탈북자들 모이면 ‘내가 간첩이라고 허위 자백을 할 테니까 네가 신고해라. 신고포상금이 최대 5억이니까 나눠 갖자’는 농담을 한다. 탈북자들이 평생 일해서 그런 돈 만지기 어렵다.

강룡 수사기관이 다른 간첩 증거를 제시한 건 없나?

증거 같은 거 없다. 그냥 증언들만 갖고 간첩으로 몰아간다.

강룡 합동신문센터에서 변호사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걸로 안다.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봤기 때문에 변호사가 뭔지 알았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고 싶다고 요청했더니 내가 탈북자라서 변호사 선임은 안 된다고 하더라.

내가 남한에 온 지 1년이 넘어간다. 남한이 정말 민주화된 사회가 맞는지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강룡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탈북자에게도 형사소송법에 의거한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그게 지켜지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재판 과정에서 난감했던 경험들이 있으면 각자 말해달라.

재판부도 수사기관은 기본적으로 북에 대한 정보가 많으니까 피의자를 간첩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변호사들도 북의 실정에 대해 정확히 말하면 종북이라 몰릴까봐 조심하는 것 같다. 북한에서 나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떼어올 수 없는 점도 답답했다. 내 매부가 도 보위부 작전실장이다. 매부가 처남을 간첩으로 선발하는 경우가 어디 있겠나?

1심 때 당시 민주당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하던 분이 나의 변호사였다. 그런데 북한 실정을 설명해주면 이분이 도통 못 알아듣더라. 결국 이분도 겁먹어서 내 변호를 포기했다. 결국 민변 장경욱 변호사가 내 사건을 맡았다. 내가 이런저런 설명을 하니까 그제야 북한 실정을 이해하더라. 그런데 장 변호사가 사주해서 탈북자들이 간첩 자백을 뒤집는다는 식으로 요즘 검찰이 공격하던데, 어처구니가 없다.

민변 변호사들도 북한 실정 잘 모른다. 그래서 검찰의 억지주장을 제때 잘 반박 못한 게 많다. 지켜보면서 무척 답답했다.

검찰 주장을 들어보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탈북자들을 납치해서 본국에 송환한다고 한다. 중국이 주권이 없는 나라도 아니고 북한이 함부로 그렇게 못 한다. 또 남한 당국은 일개 도 보위부가 남파 간첩을 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앙에서 지시하지 않으면 남파 간첩은 불가능하다. 그 정도로 남한 당국이 무지하다.

(검찰 공소장을 보면, 직파간첩 홍아무개씨는 함경북도 보위사령부 무산초소 비서가 선발해 중앙의 승인을 거쳐 정식 요원이 된다. 남한 침투는 도 보위사령부가 지시한 것으로 나온다. 유우성씨는 회령시 국가안전보위부 반탐과장이 선발해 남파한 것으로 나온다. 모두 지역 단위 정보 당국이 간첩을 선발해 남파한 셈이다. 보위사령부는 군 정보기관, 국가안전보위부는 주민감시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탈북자 반북활동 감시? 종편에 다 나오는데…

강룡 북한이 지금도 간첩을 내려보낼까?

나는 보낸다고 생각한다.(※김씨는 2000년 탈북) 북에 있을 때 50일간 남파된 내 친구도 있었다. 남파된 간첩이 있다는 건 북한에서도 수시로 자기들끼리 얘기한다. 자랑하느라고.

지금도 보내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탈북자 암살하러 내려보내진 않을 것 같다. 암살 임무를 주어 위장 탈북시켰다고 치자. 그렇다면 북한이 돈을 엄청 들여 간첩을 양성한 것일 텐데, 얼빵한 탈북자 하나 죽이자고 그런 짓을 할까?

유우성 종편 케이블 채널에 나오는 탈북자들은 그럼 벌써 죽었을 것이다.(웃음)

간첩이 남한에서 취득할 수 있는 정보가 뭘까? 남한에서는 인터넷 들어가면 정보를 다 구한다. 미군 부대 위치? 그런 건 다 알려져 있어서 정보가치가 없다.

유우성 북한에 살던 (중국 국적) 조선족들이 남한에 많이 와 있다. 북한 입장에선 차라리 그런 사람들을 활용하는 게 더 나을 거다.

강룡 탈북자가 반북 활동 하는 것을 감시하는 임무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종편에 다 공개적으로 나오는데 무슨 감시가 필요할까?(웃음)

허재현 잠깐 개입해서 미안하다. 북한에서도 간첩을 적발했다고 발표하는가?

대내 기관지에는 발표한다. 티브이 메인 뉴스에서 소제목으로 가끔 나오는 경우는 있지만 일간지 등에서 대중에게 보도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신문에서 본 적 없다.

강룡 계급 교양 자료나 강연회에서 알려주기는 하는데.

허재현 왜 남한처럼 간첩 사건을 크게 발표하거나 보도하지 않을까?

북파 간첩이 활개치고 다닌다는 게 알려지면 사회 통합에 저해되니까 보도 안하는 것 같다.

강룡 남한 수사당국이 수사 단계에 있는 상황의 간첩 사건을 서둘러 언론에 발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수사당국이 자신들의 치적을 위해 터뜨리는 것 같다. 또 국민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활용하는 것 같다. 뭔가 큰 사회적 문제가 있을 때 간첩 사건이 발표된다.

유우성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발표됐다.

내 사건(보위사령부 직파간첩 사건)은 유우성씨 사건에서 증거 조작이 밝혀져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였다.

강룡 2013년 1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발표됐을 때 다들 무슨 생각을 했나?

내가 중국에 머물고 있을 때 그 소식을 들었다. 나는 별생각 안 했다. 다 무슨 혐의가 있으니까 그런 거겠거니 생각했다.

나는 정말 타깃(목표)을 교활하게 찾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원정화 사건을 북한에 있을 때 소문으로 들었다. 북한에서 사기 사건으로 교화(감옥)까지 갔다 온 여자를

왜 북한에서 간첩으로 내려보내느냐며 다들 의아해했다.

강룡
누명 벗어도 취업도 못하고
불이익 감수해야 하는 슬픈 현실
자기 풀려났다고 관심 끄지 말고
다 함께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

유우성
내 사건으로 탈북자 사회 양분
뭔가 혜택 위해 권력에 서는 쪽과
정의감 갖고 바른말 하는 쪽으로
결과적으로 국정원이 이간질

홍아무개
남파간첩 존재 여부 모르겠지만
탈북자 암살하라고 보내진 않을 것
돈 엄청 들여 양성했을 텐데
얼빵한 탈북자 하나 죽이자고?

ㄱ아무개
진짜 간첩 찾기 힘드니까
수사기관들이 만만한 탈북자를
계속 건드릴 수밖에 없을 것
빽도, 돈도 없는 노숙자 같은 존재

ㄴ아무개
얼마전 공사장에 일하러 갔는데
관리자가 날 못 쓰겠다고 하더라
국정원서 조사받았기 때문이란다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열차 함께 탄 수상한 여성…아직도 미행하나

강룡 간첩으로 몰렸다가 무죄 판결(혹은 무혐의 처분) 받고 나서 남한 사회에서 어떻게 살게 되는지 궁금하다.

유우성 탈북자 대학생들이 어디서 후원금을 받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집과 다니는 대학을 찾아와 시위를 벌인다. 정상적으로 살 수 없도록 계속 괴롭힌다.

국가가 양심팔이 시키는 거다. 유우성 집 앞에서 시위하는 탈북자나 보수단체 사람들은 그런 걸로 돈 벌 거다. 탈북자 단체가 시위 조직할 때 탈북자들에게 공지문 돌린다. 어디 참석하면 이만원 준다, 그릇 세트 준다는 식으로. 나도 몇번 반북 시위 참석하라고 연락받은 적 있다.

합동신문센터에서 간첩이라고 허위 자백을 했다가 뒤집고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는데 한국 정부가 나에게는 정착 지원금을 안 주고 있다. 원래 하나원을 나오면 400만원씩 지원금 받게 돼 있다. 그리고 임대주택이나 의료보호 1종 혜택 등 다른 탈북자들이 다 받는 걸 나는 못 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노가다 판에 일하러 갔는데 관리자가 갑자기 부르더니 나는 국정원에서 조사받은 사람이어서 쓰지 못하겠다고 하더라. 원래 탈북자들은 누구나 조사받는 거라고 설명을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대체 국정원에서 있었던 일을 공사장 관리자가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모르겠다.(눈물 흘림)

아마 정보과 형사들이 얘기를 해준 거 같다.

무죄 판결 받고 나왔는데 정부가 갑자기 원래 주던 기초생활수급비를 못 주겠다고 하더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 나올 때까지 안 된다는 식이었다. 계속 따져서 싸우고 해서 겨우 받았다.

나는 미행을 당하는 것 같다. 얼마 전 안산에서 지하철을 탔다. 잘못된 방향의 열차를 탄 것을 알고 바로 내렸다. 그러자 내 옆에 서 있다 같이 열차에 오른 여자가 따라 내리더라. 그 사람은 내릴 이유가 없는데 이상했다. 날 미행하는 거냐고 물으니까 여자는 다음 열차를 타지 않고 그냥 말없이 도망가버렸다. 또 얼마 전 병원에 입원할 일이 있었다. 내 옆 침대에 있던 다른 환자가 있었는데 간호사가 어디 아프냐고 물어도 말을 못 하더라. 내가 산책 나가면 그 사람이 쫓아다녔다. 물론 나를 미행해도 나올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상관은 없다.

간첩 사건 터지면 북한에 남은 탈북자 가족들도 큰 피해를 입는다. 나의 경우 내 이름과 얼굴을 남한 수사당국이 언론에 다 공개해버렸다. 북한 당국은 내가 탈북한 줄 모르고 있었다. 내 탈북 사실이 밝혀지면서 북한의 가족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다.

강룡 남한 사회에 탈북자 단체가 50여개쯤 된다. 이런 단체들이 간첩 사건 피해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데 침묵만 하고 있다. 왜 이런다고 보나?

탈북자 단체들은 통일부의 심사를 거쳐 활동 자금을 받는 곳이 많다. 단체를 운영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정부를 비판하는 활동을 하기 어려운 구조다.

유우성 최근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돕는 단체인 ‘민들레’ 활동을 시작했다. 이런 단체들이 많아져야 간첩 사건 피해자들이 방치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강룡 간첩 사건 터지면 탈북자 사회에선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받는지 일반 사람들이 궁금해할 거 같다.

유우성 내 사건 때문에 탈북자 사회는 양분됐다. 뭔가 혜택을 받으려고 권력의 편에 서는 쪽과 정의감을 갖고 바른말 하는 쪽으로. 그렇게 패가 갈려 서로 싸운다. 탈북자 사회가 통합이 안 된다.

결과적으로 국정원이 탈북자 사회를 이간질해 분열시키고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서 제대로 살 수 없도록 노력하는 꼴이다. 국정원에야말로 정말 간첩이 있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든다.

강룡 국정원이 왜 탈북자들을 계속 간첩으로 만들려 하는 걸까?

나도 합신센터에 있을 때 물어봤다. 나를 간첩으로 만들면 혹시 (조사관)선생님이 돈을 더 벌게 되거나 승진을 하느냐고. 그런 게 아니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답하더라.

국정원은 안보라는 명분으로 뭐든 다 용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유우성 대한민국에서 무보수는 없다. 모든 업무가 다 성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야 승진도 하지. 국정원은 간첩 잡는 기관인데 간첩을 계속 못 잡으면 실적 압박을 받게 돼 있다. 그런 것 때문에 계속 억지로 간첩을 만드는 것 아닐까?

좌담회 분위기는 내내 무거웠다. 억울함을 말할 때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다. 정부에 밉보여선 안되기에 가슴에만 품어왔던 이야기였다. 좌담회는 2시간여 진행됐다. 얼굴 보이는 왼쪽부터 강룡, 유우성씨. 강재훈 선임기자
좌담회 분위기는 내내 무거웠다. 억울함을 말할 때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다. 정부에 밉보여선 안되기에 가슴에만 품어왔던 이야기였다. 좌담회는 2시간여 진행됐다. 얼굴 보이는 왼쪽부터 강룡, 유우성씨. 강재훈 선임기자

간첩 사건 피해자들이 민변을 찾는 이유

강룡 국정원은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모든 합동신문센터 조사 과정을 녹화하고 녹취록을 만들도록 시스템화해야 한다. 또 최소한 재판장과 변호인에 한해서 그것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고문을 했느니 안 했느니 이런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그런 게 필요하다. 또 탈북자들이 조사받을 때 변호인 입회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국정원이 나서서 먼저 탈북자에게 인권 교육을 시켜줘야 한다.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할 때 어떻게 해야 한다든지, 변호사는 어떻게 찾는 것인지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또 남한의 다른 친척 등 지인에게 얼마든지 연락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내가 남한의 구치소에 있을 때는 언제든 전화를 할 수 있더라. 왜 그런 권리가 합동신문센터에서는 없는가? 감옥보다 더한 곳이다.

탈북자를 죄인 취급 하는 거다.

강룡 일부에선 국정원이라는 조직을 아예 해체해야 한다고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현대 사회는 정보전이다. 국정원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다만, 국정원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체계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은 국정원이 ‘셀프 개혁’을 하도록 했는데 ‘개나발’ 같은 소리다. 국정원의 잘못을 잘 감추라고 하는 지시나 다름없다.

국가를 위해 존재는 해야 하겠지. 그러나 순수하게 정보 수집 기관으로 임무가 제한될 필요가 있다. 국정원이 왜 수사권을 갖는 건지 난 잘 모르겠다. 경찰이나 검찰이 간첩을 수사하면 될 거 아닌가?

강룡 각 경찰서 보안과 형사들이 탈북자들을 관리한다. 무죄 판결(혹은 무혐의 처분) 이후에도 어떤 관리를 받는가?

계속 감시당한다. 무죄 확정 판결을 받고 나서 중국에 사돈 친척 만나러 아내랑 몇번 간 적 있다. 경찰이 왜 자신에게 안 알려주고 갔느냐고 뭐라고 하더라. 경찰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는데, 보호가 아니고 감시받는 거다. 또 <한겨레> 등 진보언론과 절대 접촉하지 말라고 계속 말한다. 좌익 계열 신문이어서 정신 빠진 사람들이라는 취지로 경찰은 말한다.

한두번씩 경찰이 연락을 해온다. 불편하다. 합동신문센터에서 내가 한 진술에 대해 자꾸 추가적으로 묻는다. 대체 내가 국정원에서 한 진술 내용을 경찰이 어떻게 아는 건지 궁금하다.

강룡 국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인권침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남한 정부가 그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다. 검찰은 탈북자들이 민변 변호사만 만나면 간첩 자백을 뒤집는다고 비난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국정원은 내게 민변 변호사가 찾아올 것이라면서 민변과 함께하면 3년 형 받을 것도 5년 형으로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나도 그런 얘기 들었다.

그래서 내가 국선 변호사에게 간첩이라고 허위자백했다고 억울함을 담아 편지도 쓰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나중에 민변 변호사가 찾아오더라. 김진형 변호사가 보위사령관 이름이 뭐냐고 내게 묻는데, 내가 대답을 제대로 못하니까 웃더라. 민변 변호사들은 내 얘기에 귀 기울여 주었고 그래서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일 뿐이다. 다만 내 사건 변호인단에는 민변 소속이 아닌 변호사도 함께 있었다.

사설 변호인 선임하고 싶어도 막상 찾아가면 간첩 사건은 돈이 안 된다며 선임을 안 하려 한다. 승소할 확률이 1~2%밖에 안 된다고 못 맡겠다고 솔직하게 말하더라. 대신 민변을 찾아가면 맡아주니까 거길 가보라고 충고하더라. 탈북자들이 민변을 찾아가도록 만드는 건 남한 사회다.

유우성 민변 변호사들은 오직 진실을 위해 싸운 거다. 잘못된 걸 바로잡겠다고 싸우는 분들을 검찰이 모함하고 있다.

강룡 종편 채널에는 탈북자와 북한 전문가들이 나와 북한에 대한 설명을 한다. 어떻게 보고 있나?

북한에서 왔다면서 떠드는 탈북자들. 대체로 과장됐다고 보면 된다. 나는 그분들의 허풍이 재미있어서 종편을 본다. 북한에서 땅굴을 파고 있는데 평양시민들도 모르고 있을 거라고 말하는 분 있던데, 글쎄. 그 긴 터널을 파내려면 수많은 토양이 나와야 한다. 많은 인력이 동원되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내가 북한 금강산 발전소 건설에 참여해봐서 대강 땅을 뚫는 게 무엇인지 안다. 남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종편에서 떠드는 걸 듣고 만다. 처량하다.

심지어 10대 때 탈북했다는 사람들이 북한의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떠들더라. 코미디다. 어떤 사람은 북한에 마약이 다 퍼져 있다는 식으로 말하던데 북에서도 그런 건 용납되지 않는다. 북에서도 남한처럼 몰래 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렇게 부풀려 말 하면 안 된다. 내 주변 사람들은 종편 보면서 사실과 다른 내용이 너무 많다고 입을 모은다.

강룡 종편에 출연하는 탈북자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 걸까? 피디나 작가가 시키는 걸까?

자발적으로 그렇게 말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한번 출연하면 수십만원씩 받는다. 계속 자극적인 이야기를 해야 오래 출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남한 아닌 제3국으로 갔어야 했을까

강룡 민변이나 한겨레 같은 언론 덕분에 간첩 증거조작이 밝혀진 지 1년이 지나고 있다. 국정원이 여러 개혁 조처를 약속하기도 했다. 중앙합동신문센터 명칭이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바뀌고 국정원 조사관에게 인권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탈북자 인권 상황이 개선될 수 있을까?

탈북자를 잠재적 간첩으로 의심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비슷한 일이 계속 반복되지 않을까?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노무현 정부 때도 위장 탈북자 간첩 사건은 계속 나왔다. 수사기관들이 진짜 간첩 찾기 힘드니까 만만한 탈북자를 계속 건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빽도 없고 돈도 없고 노숙자 같은 사회적 약자가 탈북자다.

강룡 탈북자는 합신센터 안에서 고문당하고 억울한 마음에 자살을 해도 찾아줄 이가 없다. 간첩으로 몰리면 죽고 싶은 충동도 갖게 된다고 한다.

나도 정말 죽고 싶었다. 미워하는 수사관 골탕 먹이고 싶어서 유서 써놓고 확 건물에서 뛰어내려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유우성 합동신문센터에서 탈북자들은 국정원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남한에서 편하게 살려면 그냥 시키는 대로 할까 하는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탈북자 혼자서 진실을 밝히는 싸움을 결심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대한민국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인권이 무엇이고 정의란 무엇일까를 꼭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

강룡 혹시 남한에 온 걸 후회하는 분들 있나?

나는 너무 후회하고 있다. 남한에 오면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간첩으로 몰리면 조사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하나원에서도 사람들이 다 알게 된다. 따돌림을 당했다. 그 모멸감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어차피 북한에 더 살 수 없는 처지였기에 탈북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렇게 남한에 와서 간첩으로 낙인찍혀 고통받고 살 바에는 차라리 제3국으로 망명을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래도 제 민족이라고 찾아왔는데, 내 처지가 안타깝다.

내가 대한민국에 10년째 살고 있는데 맘 편하게 살아본 게 일주일도 안 되는 것 같다. 간첩 무죄 판결 나와도 대한민국의 어느 누구도 나에게 찾아와 미안하다고 말도 안 해준다.

강룡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리고, 누명을 벗더라도 결국 취업도 잘 못하고 여러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탈북자의 슬픈 현실을 우리가 더 이상 묵인하고 지나가면 안 된다. 나는 이제 풀려났으니까 관심 끄자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탈북자의 인권 개선을 위해 같이 힘을 합쳤으면 한다. 우리 스스로 권리를 찾아가야 한다. 오늘 좌담회를 여기서 마치겠다. 다들 용기 내어 참여해주어서 고맙다.

정리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 <한겨레> 토요판은 앞으로도 계속 수사기관의 부당한 압력에 의해 간첩으로 몰린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찾아나설 예정입니다. 국가정보원 합동신문센터 등에서 간첩 수사 관련 피해를 경험한 탈북자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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