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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박근혜 비판했다 오토바이까지 걸렸다고요?

등록 2015-03-06 19:37수정 2015-03-08 11:28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사건사고를 주로 다루는, 그래서 경찰서 갈 일 많은 24시팀의 박기용입니다. 오랜만에 ‘친기자’로 인사드립니다.

오늘은 임기 3년차를 맞은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요즘 일부에선 ‘국가모독죄’를 부활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던데요. 놀라울 따름입니다.

대통령 비판 전단지는 최근 들어 줄기차게 뿌려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회사의 정리해고가 적법하다”고 판결한 직후, 서울 여의도 등지에선 ‘너희들이 죽였다’ ‘정리해고법 폐지하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 수천장이 뿌려졌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직후인 지난해 12월26일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종북?’ ‘진짜 종북은 누구인가?’란 문구가 담긴 전단 1만여장이 발견됐죠.

올해 들어선 수도권 이외 지역으로도 확산됐습니다. 지난 1월13일엔 광주공항 화장실 비품 보관함에서 박 대통령 비판 전단지가 발견됐습니다. 지난달 12일엔 부산시청 주변 도로에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그림과 글귀가 적힌 전단 수백장이 뿌려졌습니다. 지난달 16일엔 대구 수성구에 있는 새누리당 대구시당과 경북도당 사무실 들머리에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지가 뿌려졌습니다. 지난달 25~28일 ‘절정’을 맞아 나흘 연속 청와대 인근과 서울 강남·명동·신촌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기습적으로 뿌려졌습니다.

국가모독죄 부활 운운하는 일부의 법석에도 불구하고 전단지를 뿌리는 행위는 경범죄(쓰레기 등 투기)에 불과합니다. 허락받지 않고 남의 건물 옥상에 올라가 뿌렸으니 건조물 침입죄도 됩니다. 성매매 전단지처럼 불법 광고물을 길거리에 뿌린 것으로 보아 옥외광고물법 위반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경찰은 이례적으로 전단지 제작자 집을 압수수색해가며 ‘전력’을 다합니다.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죄를 지었기 때문일까요. 대구 수성경찰서는 대통령 비판 전단지를 뿌린 변아무개(46)씨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냈습니다. 이 전단지를 제작한 이는 전북 군산에 사는 박아무개(41)씨였는데, 경찰은 박씨에게도 대구로 오라며 출석요구서를 보냈습니다. 부산에선 전단지를 뿌린 윤아무개(45)씨 집이 압수수색을 당했습니다. 경찰은 윤씨 집에서 컴퓨터 파일과 휴대전화 등을 가져간 뒤 윤씨에 대해 명예훼손과 경범죄처벌법 위반, 자동차관리법 위반 등을 적용했습니다. 경범죄만으로 부족해 명예훼손과 오토바이 불법 개조를 문제삼은 겁니다. 명예훼손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 죄를 묻지 않는 ‘반의사불벌죄’라 통상 고소 뒤 수사가 이뤄집니다.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윤씨를 고소하지 않았으니, 경찰이 과잉 대응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합니다. 대구 수성경찰서가 전북 군산의 박씨에게 적용하려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도 문제가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상 7쪽 이하의 인쇄물은 출판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죠.

전 오히려 경찰의 이런 ‘호들갑’이 전단지 배포 행위를 촉발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대구에 뿌려진 전단지 제작자 박아무개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비판 전단이 처음 뿌려졌을 때 강력계가 수사에 나서는 등 경찰이 호들갑을 떠는 모습에 화가 나 전단을 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도 “온라인을 통한 정부 비판이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등으로 처벌되는 사례가 늘면서 이런 일(전단 살포)이 느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자연스런 언로를 막아놓으니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이죠.

그런데도 한 종합편성채널은 대통령 비판 전단지 소식을 전하며 “용의자를 잡더라도 건조물 침입죄 등으로밖에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찰의 고민이 깊어진다”고 보도했습니다. 마치 이런 행위를 처벌할 새로운 법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국가모독죄를 부활하자는 얘기일까요?

박기용 사회부 24시팀 기자
박기용 사회부 24시팀 기자
‘국가원수모독죄’로 잘못 알려질 만큼 악용이 심했던 국가모독죄는 1988년 폐지됐습니다. 당시 법제처는 형법에서 이 조항을 삭제하면서 “국가발전을 위한 건전한 비판의 자유를 억제할 우려가 있다”고 봤습니다. 27년 전 없어진 법이 다시 거론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와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면 안 된다”고 못 박은, 미국의 수정헌법 1조가 국가모독죄보다 더 우리에게 필요한 법이 아닐까요.

박기용 사회부 24시팀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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