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씨
치료비로 돈 다 써 경제적 어려움도
“몸이 따로 놀아요. 어제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와 기분이 좋았어요. 하지만 손이 너무 아프니까 ‘이런 쓸모없는 손을 갖고 있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일을 저지른 거고요.”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배 안의 소방호스를 이용해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20여명을 구조해 ‘세월호 의인’으로 불린 김동수(50·제주시 조천읍)씨가 자해를 시도했다. 그는 19일 저녁 8시43분께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자택에서 흉기로 자신의 왼쪽 손목을 자해한 뒤 의식을 잃었다.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뒤 귀가했다. 김씨는 참사 이후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일 오전 치료를 받기 위해 경기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로 가는 김씨를 제주공항에서 만났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다 보상받고 해결됐는데 왜 그때 일을 못 잊느냐는 사람들이 있어요. 학생들을 보면 그 학생들이 생각나고, 창문을 보면 세월호 창문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이 생각나는데 어떻게 그 일을 쉽게 잊겠어요. 사는 것이 너무 비참해요.”
사람들은 그를 ‘의인’이라고 칭찬했지만 세월호 참사 뒤 김씨의 가정은 엉망이 됐다. 세월호가 침몰해 생계수단인 1억원 상당의 화물차를 잃었다. 아내는 일하러 다니고, 고3인 딸은 학원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는 치료받느라 돈을 거의 다 쓰고 대출로 생활한다.
김씨는 지난 1월 보건복지부에 의상자 신청을 했으나 추가 자료 보완 요구가 까다로워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상자 심사 대상에서 아예 빠졌다. 이에 대해 정준섭 보건복지부 사회서비스자원과장은 “김씨는 구조 활동 사실이 명백하지만 9등급으로 나뉜 의상자 등급 판정을 하려면 부상 정도를 판단할 후유장해진단서 등이 필요해 추가 제출을 요구했다”며 “추가 자료 제출만 이뤄지면 다음 의상자 심사 때 심사 대상으로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다 됐는데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그래서 답답하다”고 했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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