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밤 서울시 종로구 광화문 네거리가 경찰이 쳐놓은 차벽에 가로막혀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16일 밤 ‘주인’이 자리를 비운 청와대 주변에 경찰차벽과 경찰력을 동원한 3㎞에 이르는 ‘철옹성’이 둘러쳐졌다. 세월호 참사 1주기인 이날 오후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중남미 4개국 순방길에 오른 뒤였다.
밤 9시30분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 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은 광화문광장 분향소에 헌화하려고 하얀 국화꽃 한송이씩을 들고 행진에 나섰다. 행진은 얼마 못 가 가로막혔다. ‘미신고 불법행진’이라고 규정한 경찰은 경찰버스 50여대를 동원해 광화문광장 양방향 도로 전체를 3중으로 가로막았다. 130개 중대 1만여명이 주요 도로와 이면도로, 빌딩 뒤 샛길과 골목을 꽁꽁 틀어막았다.
세종로네거리 주변 동화면세점과 청계광장으로 이어지는 너비 50m 도로에는 경찰버스에 구조물을 덧대어 4m 높이의 차벽을 설치했다. 안국동사거리, 공평사거리, 동십자사거리, 경복궁역사거리, 종로1가 등에도 차벽을 세웠다. 동화면세점과 광교 사이 700m에는 사람 한명도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경찰버스 앞뒤를 맞붙여 세우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교차로~세종로사거리~청계천 광교 교차로~지하철 3호선 안국역 교차로까지 3㎞에 걸쳐, 마치 궁궐을 둘러싼 성곽처럼 서울 도심 한복판을 봉쇄해버린 셈이다.
자정이 넘도록 봉쇄가 풀리지 않으면서 행진 참여자들은 물론 행인들과 자영업자들까지 큰 불편을 겪었다. 서울시청 근처에서 일하는 직장인 박아무개(35)씨는 밤 10시께 세종문화회관 근처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지만 경찰차벽에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는 “걸어서 15분이면 닿을 거리를 지하철을 두번이나 갈아타면서 돌아가야 했다. 한시간을 길바닥에서 허비했다. 만약 급한 환자라도 생겼으면 어쩔 뻔했느냐”고 했다.
막차 시간이 다가오면서 곳곳에서 길을 막아선 경찰과 길을 비켜달라는 시민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졌다. 밤 11시30분께 경기 김포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김아무개(20)씨는 “경찰과 차벽이 너무 많다. 집에 어떻게 갈지 걱정”이라고 했다. 종로구청 앞에서 20년째 식당을 운영한다는 조아무개(50)씨는 “보신각 타종 행사 때 말고 집회 때문에 이렇게 봉쇄된 건 처음이다. 집에 못 가게 된 손님들이 식당에 계속 앉아 있더라”고 했다. 경기 성남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가 도로 봉쇄로 버스에서 내린 강아무개(22)씨는 “정부가 세월호 사건 진상 규명을 제대로 했다면 이런 갈등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퇴근시간대 서울 한복판에 대규모 차벽을 세운 이유를 “시민 불편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앞서 강신명 경찰청장은 세월호 1주기 당일 “불법·과격 집회가 우려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경찰차벽을 설치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그 공고한 경찰차벽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눈물을 흘리고, 시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은 광화문 앞까지 진출해 인도에 앉아 농성을 하던 유가족과 시민 150여명의 강제해산을 시도했고, 시민단체 활동가와 시민, 대학생 등 10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연행했다.
경찰은 이튿날인 17일에도 유가족과 시민들이 농성중인 광화문 바로 앞 인도변에 10여대의 경찰버스로 차벽을 설치했다. 농성자가 불어나는 것을 막는 한편, 다른 시민들에게 농성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려는 조처다.
18일 오후에는 세월호특별법 정부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인양 결정을 요구하는 대규모 범국민대회가 광화문광장에서 열린다. 줄을 지어 청와대로 행진하는 ‘청와대 인간띠 잇기’ 행사도 계획돼 있어 경찰과의 충돌이 예상된다.
김성환 김규남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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