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재원 조달방식 가운데 하나인 ‘부과방식’을 “세대간 도적질”로 빗댄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을 두고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미래세대가 현세대를 부양하는 국민연금 제도의 설계 취지를 무시한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국민연금 제도를 통해 노인 부양의 책임을 각 세대가 공평하게 부담하는 건 ‘세대간 착취’가 아닌 ‘세대간 연대’로 봐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국민연금 재원을 미리 쌓아놓지 않고 그해에 걷어 충당하는 방식을 부과방식이라고 한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8일 문형표 장관의 ‘미래세대 부담론’에 대한 반박 자료를 내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은 ‘세대간 연대’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합리적 대안을 찾을 수 없다”고 짚었다. 또 김 교수는 “소득대체율을 현행(40%)대로 유지하더라도 2060년을 전후로 이뤄질 국민연금 기금 소진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선 보험료를 장기간에 걸쳐 순차적으로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1988년 제도 시행과 함께 ‘부분 적립방식’으로 출발했으나, 연금 수급자가 많아져 적립 기금이 떨어지면 부과방식으로 전환한다는 일정한 사회적 합의를 거쳤다.
김 교수는 “현세대(부모세대)는 연금이 없는 조부모세대를 사적으로 부양하고 동시에 자신의 노후도 준비해야 하는 이중부담을 안고 있다”며 “반면 미래세대인 자식세대는 부모세대가 국민연금의 혜택을 더 받을수록 상대적으로 생활비 부담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불공평하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201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부모세대가 조부모세대에 건네는 ‘생활비’(사적이전소득)는 월평균 26만7000원에 이른다. 부모세대가 국민연금으로 좀더 안정적인 노후생활이 가능해지면 그만큼 부양을 위한 개인적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후세대의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걸 ‘세대간 도적질’로 보는 건 지나치게 편향적이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행정부공무원노동조합(행정부노조)도 문 장관의 발언을 강하게 비판하며 사퇴를 요구했다. 행정부노조는 논평을 내어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강화는 세대간 도적질이 아니라 사회안전망 구축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문 장관 발언은 국민연금 수급자인 어르신 세대를 도적으로 매도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문 장관에 대한 비판은 국회에서도 이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오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간담회를 열어 여야의 국민연금 강화 합의 정신을 훼손한 문 장관의 해임건의안 제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간담회에 참석한 강기정 의원은 “문 장관의 말은 현세대 노인이 지금의 청년세대를 상대로 도적질을 한다는 것인데 이 말에 청와대와 새누리당도 동의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다음주 보건복지위원회를 소집해 진위 여부를 따지고 (문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문 장관은 앞선 7일 기자들과 만나 “연금학자 중에서는 부과방식으로 운용하는 것은 세대간 도적질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며 “고령화가 가장 빠른 우리나라가 부과방식으로 전환했을 때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문제가 빚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 장관과 복지부는 여야의 소득대체율 50% 상향 합의가 이뤄진 뒤, 보험료가 두배로 오르고 미래세대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주장을 잇따라 내놓은 바 있다. 문 장관 등의 이런 행태는 상대적으로 더 오래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게 되는 젊은층을 자극해 가뜩이나 낮은 국민연금의 신뢰도를 더욱 깎아내렸다는 비판을 받는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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