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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남북 위안부 할머니의 만남

등록 2015-05-15 19:57

1991년 8월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얼굴을 드러내고 실명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히고 난 뒤 나는 바로 한국을 찾아와 김 할머니를 만났다. 이후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물론 북한의 피해자들도 직접 만나 취재하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남과 북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직접 만나는 장면이었다. 1992년 12월9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의 전후 보상에 관한 국제공청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에 관한 증언을 한 북한의 김영실 할머니(왼쪽) 증언이 끝나자 한국의 김학순 할머니가 단상으로 올라가 같은 위안소에 있지 않았는지 묻고 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분단의 현실을 응축하는 순간이었다.  이토 다카시/사진가
1991년 8월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얼굴을 드러내고 실명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히고 난 뒤 나는 바로 한국을 찾아와 김 할머니를 만났다. 이후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물론 북한의 피해자들도 직접 만나 취재하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남과 북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직접 만나는 장면이었다. 1992년 12월9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의 전후 보상에 관한 국제공청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에 관한 증언을 한 북한의 김영실 할머니(왼쪽) 증언이 끝나자 한국의 김학순 할머니가 단상으로 올라가 같은 위안소에 있지 않았는지 묻고 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분단의 현실을 응축하는 순간이었다. 이토 다카시/사진가
[토요판] 한 장의 다큐
1991년 8월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얼굴을 드러내고 실명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히고 난 뒤 나는 바로 한국을 찾아와 김 할머니를 만났다. 이후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물론 북한의 피해자들도 직접 만나 취재하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남과 북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직접 만나는 장면이었다. 1992년 12월9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의 전후 보상에 관한 국제공청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에 관한 증언을 한 북한의 김영실 할머니(왼쪽) 증언이 끝나자 한국의 김학순 할머니가 단상으로 올라가 같은 위안소에 있지 않았는지 묻고 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분단의 현실을 응축하는 순간이었다.

이토 다카시/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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