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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일게이들이 오밤중에 탐정놀이를 했다고?

등록 2015-05-29 19:48수정 2015-05-30 17:24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 나 같은 30대 ‘씹선비’는 이해할 수 없는 해프닝에 대해 알려줄게. ‘씹선비’가 뭐냐고? “‘씹선비’ 같은 단어는 고운 말이 아닙니다”라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말한다면, 그게 바로 씹선비. 진지하게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태도를 비아냥거리는 인터넷 용어.

26일 오전 10시12분에 ‘일베 관련 제보합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이 왔어. “현재 일베 회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갈현동의 주택가에서 칼과 몽키스패너 들고 집주인 위협중입니다. 사건 정리된 글입니다. 일간베스트 회원들은 이번 사건 조선족 장기밀매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냥 미친놈들 같아요.” 일베 게시글을 훑어보고 경찰에 확인해봤지.

일베 회원 아닌 독자를 위해 정리해줄게. 5월25일 밤 10시27분에 한 일게이(일베 회원)가 게시글을 올렸어. ‘지하철 모르는 아재한테 수상한 쪽지 받았다’라는 제목. 지하철에서 졸다가 어떤 중년 남성에게서 쪽지를 받았대. ‘갈현1동 ○○○-○○호 지하 2호. 여기에 건물에 2층에 조사팀과 보호해주는 경찰 군인이 있다…(후략)’ 등의 내용이었어. 게시글에 첨부된 사진을 보면, 쪽지는 횡설수설이야. 다만 ‘경찰’ ‘군인’ ‘조사’ 등의 몇개의 단어가 눈에 띌 뿐. 최초 게시자는 “용감한 게이 한번 나 대신 가봐라”라고 했어. 이때부터 일베 회원들의 상상이 시작됐어. 몇몇 회원들은 범죄의 정황이 있는 것 아니냐고 추측했어. ‘장기밀매’가 벌어지는 곳이란 추측도 나왔지. 2065회의 ‘일베로’를 받았어. 여기까지는 평범한 어그로. ‘어그로’는 ‘도발’을 의미하는 영단어 ‘애그러베이션’(aggravation)에서 온 말. 본디 롤플레잉게임 용어인데,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혐오스런 게시글로 관심 끌기’를 의미.

연신내지구대 설명을 종합하면, 25일 밤 11시쯤 누군가 112에 쪽지에 나온 주소를 언급하면서 “위험에 처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신고했어. 26일 0시20분 및 새벽 2시 다시 같은 내용의 신고. 신고자는 셋 다 다른 사람이래. 일베 회원으로 추정돼. 신고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봐. 독특한 것은 회원 10여명이 자발적으로 새벽에 해당 주소지 근처에 갔다는 사실. 마치 탐정이라도 된 것처럼. 그중 일부는 해당 주소지 현관문 앞에서 인증샷을 올렸어. 해당 다세대주택 인근 주민이 소음신고를 하는 일도 벌어졌지. 신고가 반복되자 결국 지구대 경찰과 은평경찰서 형사까지 출동했어. 그래서 정말 장기밀매 조직 아지트였냐고? 집주인인 중년 여성은 “밤에 귀찮게 왜 이러냐”며 가라고 답변했어. 쪽지를 건넨 남성과 집주인 여성은 가족으로 추정된대. 여성은 “혼령이 시키는 대로 했다”는 등 비정상적인 말을 경찰에게 하더래. 상황 끝.

이때부터가 문제. 경찰이 주인 동의를 얻어 집 안까지 조사해 범죄 혐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일베 회원들은 지금 이 칼럼을 쓰는 시간까지 계속 그 집 앞에 가서 인증샷을 올리고 탐정놀이를 하더군. 해프닝도 벌어졌어. 27일 낮 인근 고교생 20여명이 갈현동의 해당 주택 앞에 모였어. 인근 주민들이 소음신고. 지구대에서 출동. 조사해보니 학생들은 ‘일베 회원은 아닌데 에스엔에스(SNS)에서 여기 사건이 벌어졌다는 말을 듣고 와봤다’고 말했대. 다시 해산 및 귀가.

어그로는 무시하는 게 최대의 대처법. 근데 이 칼럼은 왜 쓰냐고? 첫째, 놀이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일베 게시글 지적. 둘째, 이번 일이 일베가 어떤 곳인지 보여주는 해프닝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 지금까지 내 결론. 1)25일 밤까지 상황만 보면, 이번 해프닝은 제보와 달리 ‘극우 사이트의 패악질’은 아닌 것 같아. 25일 밤~26 새벽 찾아간 행위까지는 놀이의 범위에 들어간다고 보여. 디시인사이드 때도 ‘현피’(인터넷 논쟁을 하다가 현실에서 진짜 만나 싸우는 행위)가 있었잖아? 2)문제는 26일 새벽 경찰 조사 이후야. 아직도 해당 집에 찾아가 형법상 주거침입죄를 저지르며 인증샷을 올리는 회원들이 있더군. 지구대에 확인해보니 주거침입 혐의 고소나 신고는 없었다지만. 경찰 조사 이후 탐정놀이하는 짓은 ‘경찰에 신고하거나 법적 대응을 할 능력조차 없는 다세대주택 주인 괴롭히기’에 불과해. 겁먹은 척 게시글 올리지만 사실 그곳에 어떤 위험도 없음을, 이미 잘 알고 있을 거야. 자기모멸적인 병맛짓의 재미는 인정할게. 그러나 거기에 ‘일부심’이니 ‘애국보수’ 운운하며 병맛짓을 철학으로 포장할 때 일베의 정신분열증이 보여.

고나무 토요판팀 기자
고나무 토요판팀 기자
오늘 친기자의 최종 결론. 내 지난번 기사 수식어는 틀린 것 같아. 일베를 ‘극우 사이트’라 부르는 건 잘못인 듯. 좌우를 논할 수준이 안 돼. 병맛짓을 할 때 그나마 귀여운 놀이터. 독자들아, ‘트롤링 사이트’의 적절한 한국어 번역어 좀 만들어 알려주시길. 혐오발언 관심끌기 사이트?

고나무 토요판팀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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