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낮 서울 중구 을지로6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의료진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선별 진료 접수처를 방문한 환자의 체온을 재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기초수급자 등 100여명 퇴원 조처
다른 병원선 “전염 우려” 거부 잦아
병원 찾다가 여관서 하루 보내기도
“지정 전에 이런 상황 고려했어야”
다른 병원선 “전염 우려” 거부 잦아
병원 찾다가 여관서 하루 보내기도
“지정 전에 이런 상황 고려했어야”
정부가 국립중앙의료원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격리·치료 거점병원으로 뒤늦게 지정하면서, 이곳에 다른 질환으로 입원해 치료받던 저소득층 환자 100여명이 갑자기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일부 대학병원과 요양병원이 ‘메르스 감염 우려’ 등을 이유로 ‘국립의료원 환자’ 받기를 거부하는 통에 퇴원 뒤 숙박시설에 몸을 누인 환자까지 나타났다. 정부의 메르스 뒷북 행정에 빈곤층 환자들이 ‘유탄’을 맞은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국립의료원을 ‘메르스 중앙거점 의료기관’으로 지정했다. 거점병원이 되면 메르스 환자만 받아 집중적으로 격리·치료하게 된다. 국립의료원에는 지난달 20일 첫 메르스 확진 환자가 입원한 뒤, 7일 현재 5명의 확진 환자가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전체 병상 435개 중 음압병실(주변보다 기압이 낮아 바이러스가 빠져나가지 않는 시설) 병상은 17개(병실 5곳)가 있다.
국립의료원은 거점병원 지정 직후부터 9일까지 에이즈 환자 등을 제외한 기존 100여명의 환자를 다른 대학병원과 요양병원으로 옮기거나 퇴원 조처하고 있다. 국립의료원 환자들은 기초생활수급자 등 빈곤층이 많아 이들이 갈 수 있는 병원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다른 병원에 재입원하려는 환자 상당수가 ‘메르스 환자 입원 병원에서 왔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하는 사례가 여럿 나타나고 있다.
쪽방촌 3층 난간에서 떨어져 수술을 받고 한 달째 국립의료원에서 입원치료 중이던 강아무개(61)씨는 지난 6일 퇴원 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재활요양병원에 재입원했다. 하지만 병원은 입원 직후 곧바로 퇴원을 요구했다. 이 병원 관계자는 “면역력이 약한 노인 중증환자가 대부분이라 입원을 통제하게 됐다. 국립의료원이 메르스 관련 병원이라 기존 환자들의 안전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강씨는 사회복지사의 소개로 다른 요양병원에 입원을 문의했지만 모두 거절당했고, 결국 일반 숙박업소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당뇨 합병증으로 국립의료원에서 오른쪽 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 윤아무개(54)씨도 같은 이유로 다른 병원 재입원을 거부당했다. 다리를 추가로 절단해야 하는 그에게 국립의료원 쪽은 “집에서 앰뷸런스를 불러 응급실로 가면 입원할 수 있다”는 ‘조언’을 해주는 데 그쳤다고 한다. 윤씨를 돕는 쪽방촌 관계자는 “병원에서 책임을 지고 전원(병원 옮기기)을 시켜줘야지 중증환자에게 알아서 가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했다. 윤씨는 6일 가까스로 다른 공공의료기관에 재입원할 수 있었다.
중증 당뇨 진단을 받고 국립의료원에 입원한 노숙자 김아무개(48)씨도 퇴원하라는 통보를 받았지만 아직 재입원할 병원을 찾지 못한 상태다. 그는 “지금 몸 상태로는 움직이기도 어려운데, 정말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립의료원 관계자는 “다른 병원들이 응급환자가 아닌 일반환자의 입원을 거절하더라도 의료법상 문제는 없다. 메르스 감염을 피하겠다는 ‘님비’적 판단인데, 그런 부분까지 고려해 퇴원 환자들이 재입원할 병원을 찾아 연결해주고 있다”고 했다. 국립의료원의 다른 관계자는 “메르스 대응이 국립의료원의 역할이지만 공공의료기관이라는 역할도 있다. 불이익을 받는 환자가 분명히 있는데, 이런 상황을 고려한 뒤 거점병원 지정이 이뤄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승 김성환 기자 raison@hani.co.kr
[그래픽 뉴스] 메르스 이렇게 확산됐다…환자 발생 지역와 전파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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