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두 서울중앙지검 1차장 검사가 2009년 2월9일 용산참사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망루 내부를 설명하고 있다.
*참고: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돼 있음
영화 ’소수의견’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국가라는 건 말이다. 누군가는 희생을 하고, 누군가는 봉사를 하고. 결국엔 그 기반 위에서 움직이는 거야.” 증거를 조작했다 검사 옷을 벗은 홍재덕 변호사(김의성)가 그의 증거 조작을 폭로한 윤진원 변호사(윤계상)에게 내뱉은 말이다.
’소수의견’은 2009년 발생한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삼은 영화다. 그런데 참 ‘착한’ 영화다. 실제 현실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용산참사와 그 이후 일어난 재판에선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한 홍 변호사 같은 인물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피고인이자 피해자이자 국민인 용산 철거민들은 많은 사람들과 싸워야 했다. 현실 용산참사와 영화 소수의견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자.
#1 국민참여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용산 재개발 참사 때 망루에 불을 내 경찰관을 숨지게 한 혐의(특수공무방해치사)로 기소된 철거민들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국민참여재판 전담 부서였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한양석 재판장은 2009년 3월26일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철거민들의 신청을 기각했다. “(검찰이 신청한) 증인 숫자가 너무 많아 재판에만 20일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국민참여재판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검찰은 이날 경찰, 소방관, 용역업체 직원 등 60여 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강수산나 검사와 함께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여기까진 영화와 현실이 같다. 그런데 영화 ’소수의견’에서 배우 권해효가 연기한 재판장은 이 장면에서 검찰을 다그친다. 그는 참여재판을 기각하지 않는다. 대신 검찰에 ‘증인 숫자를 줄여라. 지금 장난하냐’는 메시지를 던진다. 원작자인 손아람 작가의 ‘희망’이 담긴 부분일 수도 있겠다.
여론의 관심이 많은 사안인데다 재판장이 참여재판을 고집했다면, 검찰도 마지못해 따르지 않았을까? 피고인들이 요구하는 수사기록은 공개하지 않은 채 60여 명의 증인을 신청하는 검찰의 의도는 너무나 뻔했다.
#2 ‘진실’은 묻혔고 중형이 선고됐다
2009년 10월28일 6개월의 공판 끝에 1심이 선고됐다. 처참했다. 철거민 5명, 경찰관 1명이 숨진 참사의 책임은 모두 기소된 9명의 철거민들에게 지워졌다. 7명에게 최장 징역 6년의 실형, 2명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화재 원인은 농성자가 던진 화염병”이라는 검찰 주장이 고스란히 받아들여졌다. 공판 과정에서 ‘화염병에 의한 발화’를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누가 던졌는지도 알 수 없는 채였다. 이른바 ‘공모공동정범’ 논리였다. 어려운 용어 같지만 ‘너네 한패잖아. 그럼 죗값도 같이 져야지’라는 논리다. 조직폭력단체를 처벌할 때 쓰는 법논리였다.
용산참사 재판장이었던 한양석 부장판사(가운데)가 2009년 10월12일 김형태 변호사(왼쪽)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한양석·주심판사 이진혁·정하경)는 철거민들이 농성을 시작한 바로 다음날 강경진압을 펼친 경찰에게는 면죄부를 줬다. 재판 과정에서 경찰이 당장 진압을 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지 않았다는 정황을 뒷받침하는 증언들이 나왔지만 무시됐다.
경찰의 무리한 진압 정황이 기록된 수사기록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변호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검찰에 미공개 수사기록을 공개하라고 명령했지만 말뿐인 명령이었다. 버티는 검찰을 상대로 법정에서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현장 상황을 잘 전달받았다면 진압을 중단시켰을 것” 따위의 경찰 지휘부의 증언들이 공개된 건 1심이 선고되고도 한참이 지난 2010년 1월16일이었다.
진실은 없고 처벌만 있었던 현실에 비한다면 영화 ’소수의견’은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을 끌어간 핵심 동기였던 검사의 증거·증언 조작이 선고 전에 법정에서 공개됐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이 이뤄졌기에, 적어도 진실을 알고 싶어한 재판장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3 변호인들은 검찰+판사와 싸웠다
결국 현실에서 피고인과 변호인은 경찰·검사와도 싸워야 했고, 판사와도 싸워야 했다. 변호인단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법언을 공판마다 되새겨야 했다. (▶ 바로가기: 헌법 정신 외면한 ‘용산 재판부’) 재판 진행이 이 법언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열 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자를 벌하지 말라”는 고대법의 정신과 이어지는 법언이다.
영화 ’소수의견’ 속 재판장은 까칠하긴 해도 최소한 피고인들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반면 한양석 재판장은 선고날 철거민들에게 ‘적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중형을 선고하면서 “이들은 범죄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려 하고 있으며 법정을 투쟁의 장으로 만드는 등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피고인 모두에게 무거운 형을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관기피신청을 하고 변론 거부에 이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사임계를 낸 변호인들을 향한 재판부의 ‘답변’이었다.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4 용산참사 재판장이 권해효만큼만 했다면…
1심 선고가 나온 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성명을 내어 재판부를 비판했다. 철거민들과 변호사들이 재판부를 비판한 이유와 일치하기에 그 일부를 인용한다.
“용산사건의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그렇게도 원한 국민참여재판을 성사하기 위하여 검찰의 무리한 증인신청을 제어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보여주지 않은 채 이를 무산시켰고, 더 나아가 검찰이 공개를 거부한 수사기록을 공개하여 피고인과 변호인에게 제공하라고 스스로 명령하고서도 이를 거부하는 검찰에 대하여 어떠한 불이익이나 사법적인 제재를 가한 바 없다.
일찍이 우리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변호인들이 원하는 수사기록을 검토할 수 있어야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고 검사는 수사기록 중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출할 의무가 있다고 분명하게 판시하였고, 이를 들어 피고인들과 변호인들은 검찰이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3000쪽가량의 수사기록 없이는 공정한 재판이 불가능하다며 최소한 검찰이 수사기록을 공개할 때까지 재판을 잠정 정지함으로써 검찰의 적극적인 응답을 유도해 달라고 재판부에 간청도 해보고, 검찰이 순순히 내놓지 않으면 재판부가 형사소송법에 따라 압수수색이라도 해서 이를 피고인들이 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촉구도 해 보았지만, 재판부는 ‘이미 입장을 밝혔으니 더 이상 논하지 말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함으로써 공정한 재판을 향한 의지가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었다. 심지어 수사기록 없이는 더 이상 피고인들을 위해 변론하기 어렵다는 변호인들에게 ‘변론할 수 없다면 퇴정하라’고 겁박하기까지 하였다. 그와 같은 재판을 두고 누가 공정하다 할 것이며 오늘 내린 재판부의 판단과 선고를 누가 순순히 인정하고 신뢰할 것인가.
오늘 용산사건의 재판결과는 이처럼 피고인들의 손발을 묶어 놓고,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자료는 모조리 감춰둔 채 일사천리로 진행된 재판이 사법의 치욕이며 그 재판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법조계의 예상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나아가 공익의 대표자가 아니라 사익의 대변자로 전락한 검찰의 후안무치와 사법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 법원의 비겁함을 여과 없이 드러낸 사례임도 분명하다.”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기사 속 뉴스 AS
용산참사 재판장이던 한양석 부장판사는 선고 이듬해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한 뒤 부산고법, 서울고법에서 근무했다. 2013년 퇴직하고 법무법인 광장에 변호사로 취업했다. “송무전문변호사로서 특히 형사소송, 기업소송, 헬스케어 관련 소송, 금융 및 보험소송, 부동산 소송 등의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고 광장 홈페이지에선 소개하고 있다. 그는 최근 집행유예가 선고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항소심 변론을 맡았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더친기] 영화 ‘소수의견’, 알고 보면 더 잘보이는 5가지[관련 영상] 우여곡절 <소수의견> … “국가란 게 뭐요” / 잉여싸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