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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영화 ‘소수의견’, 알고 보면 더 잘보이는 5가지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5-06-24 16:20수정 2022-08-19 17:21

[더(The) 친절한 기자들] 영화 ‘소수의견’ 관람을 위한 시민 법률상식
원작 소설 손아람 작가의 ‘소수의견’
원작 소설 손아람 작가의 ‘소수의견’

* 박스 안의 내용은 영화의 원작 소설 ‘소수의견’의 관련 대목입니다.

24일 개봉한 영화 ‘소수의견’은 용산참사를 모티프로 한 허구입니다. 그러나 지독히 현실적입니다. 영화 ‘소수의견’ 속에 담긴 현실을 개념어 사전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 정당방위

형법 제21조(정당방위)

①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그날 사건에 대해서 좀 더 여쭤봐도 될까요? 경찰을 각목으로 가격해서 죽인 사람이 박재호씨 맞습니까?”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아니 죽을거란 생각도 못했지. 난 아들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럼 사망한 경찰이 박재호씨 아들을 폭행한 사람 중 하나입니까?”

“그래요. 그놈들이 내 아들을 죽였소. 내가 그놈들 중 한 놈을 죽였고.”

-국선변호사 윤진원, 박재호와 구치소 접견소에서 만나

영화 ‘소수의견’은 아들을 폭행 중인 경찰을 때려 숨지게 한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아들은 결국 죽었습니다. 아들의 살인자를 처단한 아버지를 처벌해야 할까요. 2시간 동안 영화가 묻는 단 하나의 질문입니다. 법률적으로 바꿔 말한다면 “아버지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해야 할까요”가 될 것입니다.

형법 제21조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않는다”며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늘 판단이 어려운 부분은 ‘상당한 이유’의 인정 여부입니다. 박재호는 경찰의 뒷통수를 때릴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박재호씨에게 다른 방법은 없었는가? 꼭 전경 김희택의 뒤통수를 내리쳐 죽였어야만 아들을 구할 수 있었는가? 만약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면 여러분은 정당방위의 성립을 인정하여서는 안 됩니다.”

-이민정 검사, 박재호 유죄를 주장하며 최후진술에서

영화 ‘소수의견’
영화 ‘소수의견’

현실 속 법원은 정당방위를 거의 인정하지 않습니다. 20대 남성이 50대 절도범을 둔기 등으로 때려 식물인간 상태에 이르게 한 사건에 대해 지난해 10월 1심 법원은 지나친 폭행으로 판단하고 20대 남성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습니다. “최씨가 절도범을 제압하기 위해 김씨를 폭행했다고 하더라도 흉기 등을 전혀 소지하지 않고 아무런 저항없이 도망만 가려고 했던 김씨의 머리 부위를 발로 차는 등 장시간 심하게 때려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행위는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내 집에 침입한 도둑을, 이미 그 자체로 절도죄를 저지른 그가, 나에게 어떤 피해를 끼칠지 모르는데, 그럼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한단 말이냐”, “판사 너희 집에 도둑놈이 들어왔다면 넌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냐”고 누리꾼들은 비아냥댔습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정당방위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폭행사건을 유죄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판사들이 까다로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까다로운 관문을 넘어 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는 어떤 게 있을까요? 다음 기사 (▶ 바로 가기: 포크 대신 이빨로…판사한테 ‘정당방위’ 인정받는 6가지 비법’)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 수사기록 공개

형사소송법 제266조의3(공소제기 후 검사가 보관하고 있는 서류 등의 열람·등사)

② 검사는 열람·등사 또는 서면의 교부를 허용하지 않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열람·등사 또는 서면의 교부를 거부하거나 그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

홍재덕 검사의 문장은 정중했다. 답신에서 그는 정중한 태도로, 내가 신청한 자료의 열람과 등사를 모조리 거부했다. 그는 수사자료의 공개가 박재호 외 다른 철거용역 쪽 피고인의 수사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주장했고, 짧게 유감을 표명한 뒤, 내 요청을 거부하는 근거가 적시된 형사소송법 조항을 밝혔다.

-홍재덕 검사, 윤진원 변호사가 신청한 박재호 수사기록공개를 거부하면서

영화 속에서 홍 검사의 행위는 제출 않은 수사기록을 증거로 삼지 못하도록 하는 선에서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수사기록 공개를 둘러싼 싸움은 훨씬 치열하고 엄중했습니다.

검찰은 2009년 이충연 용산4구역 상가공사철거대책위원장 등의 1심 재판에서 전체 1만여쪽의 수사기록 중 경찰 핵심 지휘라인의 진술이 포함된 3000여쪽을 변호인에게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의 과잉진압 여부가 핵심 쟁점인 상황이었는데 그 부분을 따질 수 있는 수사기록을 비공개한 것입니다. 1심 재판부가 ‘검찰은 변호인에게 열람·등사를 허용하라’고 결정했지만 검찰은 막무가내였습니다. 훗날 헌법재판소는 검찰의 이같은 행위를 위헌(8대1)으로 판단했고, 대법원도 위법한 행위라며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수사기록 없이 1심 재판이 진행되면서 피고인들의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는 심각하게 침해받은 뒤였습니다.

■ 국가배상소송

국가배상법 제2조 (배상책임)

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혹시 국가배상청구에 대해 생각해보셨습니까?”

“아니요.”

“경찰 진압 중 박재호 아들이 죽은 것에 대해 국가배상을 청구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국가배상청구소송은 언론의 관심을 끌지요.”

“국가를 소송하라. 제가 국선전담변호인이라는 사실을 다들 자주 잊는군요.”

-이주민 교수가 박재호의 변호인단에게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권하면서.

경찰의 과잉진압이 인정돼 국가배상소송에서 이긴 경우는 몇 차례 있습니다. 2005년 11월15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쌀 비준 반대’ 시위를 벌이던 농민 전용철·홍덕표씨가 진압 경찰에 맞아 치료를 받다가 숨졌는데, 이들은 모두 경찰의 과잉진압이 인정돼 손해배상을 받았습니다.

핵심은 경찰이 진압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을 어겼는지’ 여부입니다. 용산참사 당시 국가배상소송은 검찰의 수사기록 비공개 행위에 대해서만 진행됐습니다. 경찰의 직무집행에 대해서는 형사적으로 무혐의 판단이 나와서 국가배상소송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배상소송에서의 쟁점은 ‘국가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을 어겼느냐’입니다. 국가는 이런 쟁점에 휘말리기 싫어합니다. 용산참사 때도, 세월호 사고 때도 정부가 배상이 아닌 보상으로 무마하려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재판을 거쳐 책임을 엄밀히 따져묻지 말고 돈으로 합의하자는 뜻입니다.

■ 양형거래

“검사는 제가 거짓 자백하면 3년 이하로 구형해주고, 집행유예가 나오도록 애쓰겠다고 했습니다.”“양형거래라는 거지요. 중대한 불법입니다.”

-박재호 아들을 죽인 혐의로 기소된 폭력배가 검사의 요청에 따라 허위진술을 했다고 증언하면서.

양형거래는 불법입니다. 영화 ‘소수의견’에 나오는 날조 수준의 양형거래는 더더욱 불법입니다. 그러나 ‘죄를 자백하면 이 부분은 좀 봐줄게’라는 약한 수준의 양형거래는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특히 뇌물사건의 경우 ‘뇌물을 줬다’고 말하는 순간 뇌물공여죄를 자백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검사와 거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횡령액수를 감해주거나, 가족의 비리를 덮어주는 식입니다.

현실적으로 이런 식의 양형거래를 없애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검찰에서는 이를 ‘수사기법’으로 간주하기까지 합니다. 이 때문에 아예 공식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수사에 협조한 범죄자에 대해 기소를 면제하거나 형을 줄여주는 이른바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 제도가 그것입니다.

플리바게닝 제도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 때 도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재추진에 나섰지만 국무회의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검사의 권한이 현재도 막강한데 칼자루를 더 쥐어줄 수 없다는 여론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 배심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46조(재판장의 설명ㆍ평의ㆍ평결ㆍ토의 등)

⑤ 평결과 의견은 법원을 기속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결은 배심의 평결에 구속되지 않으므로, 본 재판장은 피고인의 범죄사실과 폭행정도의 과잉을 살펴 정당방위 성립을 부정하겠습니다.”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박재호 무죄 의견을 냈으나 판사가 이를 거부하면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안중근 의사 유묵(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의 도난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안도현 시인에 대해, 전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은택)가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단의 만장일치 ‘전부 무죄’ 평결을 뒤집고 ‘일부 유죄’를 선고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판사가 배심원의 판단을 따를 의무는 없지만, 실무적으로는 대부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따르지 않는 경우도 배심원들의 유죄 의견을 무죄로 판단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반대는 매우 드뭅니다.

대법원도 배심원의 판단을 존중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고 있습니다. 2009년 서울 마장동 축산물유통업체 직원 문아무개씨가 옆가게 종업원 김아무개씨와 시비 끝에 흉기로 내리친 혐의(살인미수) 등으로 기소됐습니다. 국민참여재판에서 1심 재판부는 배심원 7명이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하자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2심은 이와 달리 살인미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2011년 3월 “배심원이 증인신문 등 사실심리의 전 과정에 함께 참여한 후 만장일치 의견으로 내린 무죄 평결이 재판부의 심증에 부합해 그대로 채택된 경우라면, 항소심에서 새로운 증거조사를 통해 그에 명백히 반대되는 사정이 나타나지 않는 한 함부로 뒤집을 수 없고, (배심원 평결은) 한층 더 존중돼야 한다”며 2심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배심원들이 유무죄를 결정하고 판사는 형량만 정하는 미국의 배심제와, 시민과 법관이 함께 재판부를 구성해 유무죄 여부와 형량까지 정하는 독일의 참심제 등 오랜 전통을 가진 외국 배심제도에 견주면, 우리나라 참여재판은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대법원은 국민참여재판 정착을 위해 확대 시행을 꾀하고 있습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관련영상] 영화 소수의견

[관련영상] 용산참사 6주기, 여기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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