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적을 가진 재일조선인 3세인 정영환 메이지학원대 교수(왼쪽)와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가 지난 6일 도쿄 미나토구 메이지학원대에서 광복 70주년을 앞둔 한-일 관계의
현재와 과제, 동아시아 정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노자-재일조선인 3세 정영환 교수 대담
광복 70주년을 앞둔 한국 사회에서 급속히 세력을 키워가고 있는 담론은 한일이 이제 그만 과거를 잊고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는 ‘한일 화해론’이다. 한국 사회의 외부에 자리한 박노자(42) 오슬로국립대학 교수와 조선적을 가진 재일조선인 3세인 정영환(34) 메이지학원대 교수가 한일 양국에서 힘을 키워가고 있는 이런 흐름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역사수정주의에 기반한 한일 화해론이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가기 위한 이론적 근거가 돼 결국 한국이 북한을 배제하고 중국과 대립하게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었다. <한겨레>는 한국 내부와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해방 이후 70년에 걸친 한일관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이번 대담을 기획했다. 대담은 6일 도쿄 미나토구 메이지학원대에서 한 시간 반에 걸쳐 진행됐다.
-두분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가 있을 텐데, 먼저 소개를 부탁한다.
정영환(이하 정) “재일 조선인 3세다. 메이지학원대에서 역사학을 가르치고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조선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았다. 전공은 재일조선인사 특히 해방 직후 재일조선인 운동과 그 정책사고, 재일조선인의 시각에서 본 해방 5년사와 일본 전후사를 연구하고 있다.”(정 교수는 2009년 4월 조선적 재일조선인의 입국을 금지한 한국 정부의 조처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지만, 2013년 12월 최종 패소한 적이 있다.)
박노자(이하 박)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 동양학부 극동사학과에서 조선사를 전공했다. 학번은 89학번인데, 대학 3학년이던 1991년 나라가 망했다(웃음). 1990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조선어 실습을 가기 위해 서류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한국과 소련이 수교를 했다. 북한이 이에 대해 반발해 우리의 입국도 불가능해졌다. 그때 고려대학교에서 기회를 마련해 줘 3개월간 어학연수를 했고, 97년 6월부터 경희대학교에서 3년 계약직 교수를 했다. 이후 2000년부터 노르웨이의 오슬로국립대학교에서 정규직 교수로 재직 중이다.”.(박 교수는 2001년 한국에 귀화해 현재 국적은 대한민국이다.)
-현재 한국에선 ‘아베 담화’로 상징되는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2000년대 이후 뉴라이트 등의 역사 수정주의 흐름이 이어져 왔는데.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
미, 한-중 더 밀착하게 될라 우려
한-일의 ‘역사적 화해’ 바라
한·일 우파의 ‘역사수정주의’
한·미·일 삼각동맹과 연결땐
북한 배제·중국과 갈등 우려 박 “90년대 초 소련이 붕괴된 뒤 역사수정주의가 무엇인지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러시아에서 현실 사회주의라는 비자본주의적 개발 시대가 끝나고 신자유주의가 본격 도입되고 있었다. 그래서 자본주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엄청난 수정주의 공세가 퍼부어졌다. 사회주의 역사관을 180도 뒤집고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합리화가 진행됐다. 한국에선 90년대 말까지 그런 변화가 별로 눈에 띄진 않았는데, 2000년대 초부터 뉴라이트의 형성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 무렵)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작업이었다. 처음엔 그의 작업에 상당한 호의와 관심을 느꼈다. 한국엔 독도 등 영토 문제와 관련돼 상당히 어용적인 민족주의의 흐름이 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사실관계를 상당히 소홀히 한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제 쇠말뚝론’이다. 박 교수가 이런 다소 저질스러운 관제 민족주의를 비판하니까 마음이 끌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일본 민족주의를 대체로 긍정하면서 한국의 민족주의만을 비판하고 나아가서 피해와 가해의 역사를 완전히 뒤바꾸는 쪽으로 흘러가, 그럼 (그가 주장하는) 역사의 목적점이 무엇이냐는 의문을 품게 됐다. <제국의 위안부>가 나온 뒤 결국 ‘이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영환 메이지학원대 교수
‘평화헌법 파괴 비판’ 일본 진보
보수처럼 1945년 이후 역사는 미화
‘북·중에 대항 위해 한·일 화해 필요’
일 우파-리버럴 비슷한 주장
어느 의미에선 매우 부정적 영향 정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를 볼 땐 두 가지 대상을 봐야 한다. 하나는 한국에서도 비판하는 45년 이전 역사에 대한 수정주의다. 또 하나는 일본 패전한 뒤의 역사에 대한 수정주의다. (일본의 전후 역사와 관련해) 90년대까지 일본의 리버럴이나 진보들은 일본의 역대 정권이 평화헌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주장을 해왔다. 일본을 진정한 평화국가로 만들기 위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진보 세력들은 전후 일본의 역사 자체를 미화하면서 평화국가를 아베 정권이 파괴하고 있다는 식의 비판을 한다. 신자유주의의 영향 탓인지 고도 성장기의 일본을 파괴하지 말라는 식으로 향수를 동원하는 비판도 있다. 즉 80년대 이전 자민당 정권에 대한 평가가 크게 변한 것이다. 이러한 리버럴들의 주장에 대해선 보수도 동의를 한다. 그래서 아베 정권과의 대립은 심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의 진보와 보수가 거의 비슷한 전후사에 대한 역사 이미지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수정주의적 역사인식이나 식민지지배를 내심으로는 긍정하려고 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지만, 일본 전후사에 대한 수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박 “역사수정주의의 구조는 한국과 일본이 거의 흡사하다. 한국의 역사수정주의의 두 주체는 우파 계열의 뉴라이트와 일부 리버럴이다. 먼저 뉴라이트는 일제 시기를 새롭게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시기로 재정의하면서 조선 민중에 대한 착취, 폭력, 강제동원 등의 기억을 사상시킨다. 그래서 이들의 일본 제국주의 긍정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긍정이 된다. 또 해방 이후의 역사에 대해선 독재나 분단 시기가 아닌 한국 자본주의의 도약기로 재정의하고, 한국 자본주의가 세계체제의 주변부에서 준 핵심부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리버럴의 논리는 그보다 더 교묘하다. 이들이 좋아하는 단어는 ‘개인’이다. 그래서 일제의 폭력에 피해를 입었던 위안부나 징병 피해자들이 한 체제 아래서 살기 위해 맺어야 했던 불가분의 관계, 즉 일본어를 해야 하고, 인간관계를 맺어야 했던 이런 맥락을 전경화(前景化)해서 모든 폭력이나 착취 억압을 사상해 버린다. (위안부 여성이 위안소 안에서 일본군 병사의 호의에 고마움 등을 느꼈던 점 등을 서술하는) <제국의 위안부>의 논리가 바로 이런 논리다. 전후 역사에 대해선 한국 사회를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으로 나누고 양쪽이 다 필요했단 논리를 편다. 민주화도 필요했고 학생들의 저항도 필요했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의 관리자들이 한국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것도 목적론적으로 잘한 일이었다는 애기다. 여기서 박정희도 옳았고, 학생 데모도 옳았다는 재미있는 논리가 성립한다. 이 둘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고, 그래서 우린 부자가 됐고, 만족스럽진 않지만 민주주의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영화 <국제시장>과 같은 자화자찬 사관이다.” -올해는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현재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상대적인 쇠퇴와 함께 중국이 부상하고 있고,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려 하는 등 군사적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동아시아의 지각 변동을 어떻게 봐야 할까. 박 “전후 미국은 일본 제국이 갖고 있던 판도의 상당 부분을 접수했다. 즉, 한반도의 남반부, 대만, 일본 본토를 접수했고, 오키나와는 직할령으로 둬 군사식민지로 만들었다(오키나와는 1972년 5월 일본에 복귀한다). 그래서 대륙의 혁명세력에 맞서 교두보로 만든 게 전후의 동아시아의 기본 구도다. 일본은 지난 70년 동안 사실상 평화국가가 아니었고 때로는 미군의 활동 근거지로, 때로는 미 제국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하는 주체로 미군 주둔 분담금을 부담했다. 그러나 지금은 미 제국이 동아시아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미국의 군사 보호령으로 존재하긴 하지만 대중 무역이 대미 무역보다 2배나 크고 경제 관계에선 오히려 중국이 더 중요해졌다. 그 때문에 남한의 지배계층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아주 조심스런 줄타기를 하고 있다. 미 지배층이 갖는 가장 큰 걱정은 남한 지배자들이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역사 정치’ ‘기억 정치’에선 한국의 지배자들이 중국의 지배자들과 한 블록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1월 중국 하얼빈에 안중근 기념관을 만들 때 한·중이 협력을 했고, 일본은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했다. 미국은 이를 너무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미국이 바라는 것은 한-일의 역사적 화해다. 여기에 박유하의 담론이 딱 들어맞는다.” 정 “한국인들이 현재 상황을 19세기 말 20세기 초처럼 느끼는 위기의식은 정당하다. 그런데 이것이 국가주의적인 담론으로 흡수되면 방향이 달라진다. 일본에서도 우파의 주장은 안보 강경론이다. 일본에서 얼마나 현실성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키나와 기지 문제가 심각해지고 (오키나와) 독립론이 힘을 얻게 되면 나오는 게 중국 위협론이다. 중국이라는 적을 내세워 오키나와의 ‘반일’을 깨고 일본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담론이다. 일본 리버럴에선 이 동아시아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면 한국의 반일 자체를 깨야 한다고 말한다. 즉 한일의 화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아미티지-나이 보고서’(미국의 대일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지금까지 세 차례 발표한 보고서)도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 중국이나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 한일 간에 역사적인 화해가 필요하다 주장이다. 그래서 결국 일본 우파의 안보 강경론과 리버럴의 한일 화해론이 거의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는 꼴이 된다. 이들에게 문제는 한국의 민족주의다.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일본 리버럴들이 환영하는 배경에는 이런 맥락이 있다. 현재 일본에선 일본의 ‘혐한’과 한국의 ‘반일’을 동일시하는 담론이 대세다. 혐한류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한일 화해를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일베’와 일본의 ‘혐한류’가 같다는 게 아니라 혐한류와 정대협이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해론 자체는 어느 의미에선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박 “이 논리는 결국 한국군이 유사시에 일본의 자위대와 하나가 되어 대륙 세력과 싸워 미국을 위한 총알받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한일 화해 담론이 이와 같은 차후 구도를 미리 합리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씨가 일본에서 매우 유의미한 발언을 했다. ‘우리가 친일·친미해야지 왜 친북하냐’는 것이다. 즉, 일본과의 화해라는 게 친북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다. 북한 혹은 암묵적으로 중국에 맞서기 위해 한국이 일본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한일 화해론의 근거가 된다면 굉장히 위험한 논리가 될 수 있다. 북한과 일본 중에서 선택을 하게 되면 일본을 선택해서 북한과 같이 싸우자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정 “화해란 말 자체는 거부하기 힘들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안보 문제와 화해가 세트로 결합된 상황에서 화해 자체를 재검토하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일본 리버럴들은 한편에서는 한일 화해를 거론하면서 대북 경제제재에 찬성하고 있다. 어느 의미에서 일본 헌법의 평화주의 자체가 유명무실화 되고 있는 것이다.” -미·일이 한일 화해를 통해 현재 추진하려는 것은 한-미-일 삼각동맹이다. 현재 이를 막는 것이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저항이다. 박 “일본의 민중은 국가와 혼연일체 되는 경향이 강했고, 특히 식민지에선 민중과 국가가 거의 하나가 된 경우도 많았다.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중국인을 학살한 것은 군인이 아니라 일본 민중이었다. 그만큼 일본 민중 안에 조선인·중국인에 대한 혐오감과 우리 민족이 우월하다는 생각이 강했다. 한국 민중의 일본 혐오는 그런 부분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일본 민중들은 과거에 취했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또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서구화에 성공한 것을 이용해 동아시아를 침략했고, 이를 통해 현재 번영의 기초를 잡았다. 일본 민중들이 현재 누리는 높은 생활수준이 타자들의 희생을 통해 얻어진 것임을 인식하기 시작할 때 진짜 화해는 가능할 거라고 본다.” 정 “화해란 말이 너무 정치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어떤 화해가 필요하냐는 문제 설정을 일단 거부해야 한다. 화해가 필요한 게 아니라 진상규명과 피해회복이 필요하다.” -현재 양국 간 가장 큰 관심은 한일 정상회담 실현이다. 박 “한-일의 지배 계급은 이미 유착돼 있어 더 이상 화해할 것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안 만났을 뿐이지 이미 실무자 선에선 다 만나도 모든 채널이 다 가동 중이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미국의 우산 아래 있으니 상호간에 계속해서 물밑 조율을 한다. 한국인에게 중국과 일본 사이에 선택할 때 중국이 아닌 일본을 선택하라는 거지 뭐 특별히 더 화해할 게 있나(웃음). 화해가 필요한 것은 남과 북이다. 현재 너무 골이 깊다.” 정 “(남북 사이엔) 전쟁을 먼저 끝내야 한다.”(현재의 휴전 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의미) 박 “남과 북은 서로 너무나 달라져 서로가 얼마나 달려졌는지 인식도 못하고 있다. 최근 영국 <가디언>이 남한에 사는 탈북자 가운데 재 입북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는 보도를 했다. 탈북해서 남한에서 살았는데 저임금 육체노동을 하면서 차별 받고 괴롭힘만 당했다는 것이다. 현재 재입북을 준비하는 이가 <가디언> 추산으로 70~100명이나 된다고 한다. 서로 화해는커녕 공존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도쿄/사회·정리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
한-일의 ‘역사적 화해’ 바라
한·일 우파의 ‘역사수정주의’
한·미·일 삼각동맹과 연결땐
북한 배제·중국과 갈등 우려 박 “90년대 초 소련이 붕괴된 뒤 역사수정주의가 무엇인지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러시아에서 현실 사회주의라는 비자본주의적 개발 시대가 끝나고 신자유주의가 본격 도입되고 있었다. 그래서 자본주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엄청난 수정주의 공세가 퍼부어졌다. 사회주의 역사관을 180도 뒤집고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합리화가 진행됐다. 한국에선 90년대 말까지 그런 변화가 별로 눈에 띄진 않았는데, 2000년대 초부터 뉴라이트의 형성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 무렵)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작업이었다. 처음엔 그의 작업에 상당한 호의와 관심을 느꼈다. 한국엔 독도 등 영토 문제와 관련돼 상당히 어용적인 민족주의의 흐름이 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사실관계를 상당히 소홀히 한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제 쇠말뚝론’이다. 박 교수가 이런 다소 저질스러운 관제 민족주의를 비판하니까 마음이 끌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일본 민족주의를 대체로 긍정하면서 한국의 민족주의만을 비판하고 나아가서 피해와 가해의 역사를 완전히 뒤바꾸는 쪽으로 흘러가, 그럼 (그가 주장하는) 역사의 목적점이 무엇이냐는 의문을 품게 됐다. <제국의 위안부>가 나온 뒤 결국 ‘이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영환 메이지학원대 교수
보수처럼 1945년 이후 역사는 미화
‘북·중에 대항 위해 한·일 화해 필요’
일 우파-리버럴 비슷한 주장
어느 의미에선 매우 부정적 영향 정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를 볼 땐 두 가지 대상을 봐야 한다. 하나는 한국에서도 비판하는 45년 이전 역사에 대한 수정주의다. 또 하나는 일본 패전한 뒤의 역사에 대한 수정주의다. (일본의 전후 역사와 관련해) 90년대까지 일본의 리버럴이나 진보들은 일본의 역대 정권이 평화헌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주장을 해왔다. 일본을 진정한 평화국가로 만들기 위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진보 세력들은 전후 일본의 역사 자체를 미화하면서 평화국가를 아베 정권이 파괴하고 있다는 식의 비판을 한다. 신자유주의의 영향 탓인지 고도 성장기의 일본을 파괴하지 말라는 식으로 향수를 동원하는 비판도 있다. 즉 80년대 이전 자민당 정권에 대한 평가가 크게 변한 것이다. 이러한 리버럴들의 주장에 대해선 보수도 동의를 한다. 그래서 아베 정권과의 대립은 심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의 진보와 보수가 거의 비슷한 전후사에 대한 역사 이미지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수정주의적 역사인식이나 식민지지배를 내심으로는 긍정하려고 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지만, 일본 전후사에 대한 수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박 “역사수정주의의 구조는 한국과 일본이 거의 흡사하다. 한국의 역사수정주의의 두 주체는 우파 계열의 뉴라이트와 일부 리버럴이다. 먼저 뉴라이트는 일제 시기를 새롭게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시기로 재정의하면서 조선 민중에 대한 착취, 폭력, 강제동원 등의 기억을 사상시킨다. 그래서 이들의 일본 제국주의 긍정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긍정이 된다. 또 해방 이후의 역사에 대해선 독재나 분단 시기가 아닌 한국 자본주의의 도약기로 재정의하고, 한국 자본주의가 세계체제의 주변부에서 준 핵심부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리버럴의 논리는 그보다 더 교묘하다. 이들이 좋아하는 단어는 ‘개인’이다. 그래서 일제의 폭력에 피해를 입었던 위안부나 징병 피해자들이 한 체제 아래서 살기 위해 맺어야 했던 불가분의 관계, 즉 일본어를 해야 하고, 인간관계를 맺어야 했던 이런 맥락을 전경화(前景化)해서 모든 폭력이나 착취 억압을 사상해 버린다. (위안부 여성이 위안소 안에서 일본군 병사의 호의에 고마움 등을 느꼈던 점 등을 서술하는) <제국의 위안부>의 논리가 바로 이런 논리다. 전후 역사에 대해선 한국 사회를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으로 나누고 양쪽이 다 필요했단 논리를 편다. 민주화도 필요했고 학생들의 저항도 필요했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의 관리자들이 한국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것도 목적론적으로 잘한 일이었다는 애기다. 여기서 박정희도 옳았고, 학생 데모도 옳았다는 재미있는 논리가 성립한다. 이 둘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고, 그래서 우린 부자가 됐고, 만족스럽진 않지만 민주주의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영화 <국제시장>과 같은 자화자찬 사관이다.” -올해는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현재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상대적인 쇠퇴와 함께 중국이 부상하고 있고,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려 하는 등 군사적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동아시아의 지각 변동을 어떻게 봐야 할까. 박 “전후 미국은 일본 제국이 갖고 있던 판도의 상당 부분을 접수했다. 즉, 한반도의 남반부, 대만, 일본 본토를 접수했고, 오키나와는 직할령으로 둬 군사식민지로 만들었다(오키나와는 1972년 5월 일본에 복귀한다). 그래서 대륙의 혁명세력에 맞서 교두보로 만든 게 전후의 동아시아의 기본 구도다. 일본은 지난 70년 동안 사실상 평화국가가 아니었고 때로는 미군의 활동 근거지로, 때로는 미 제국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하는 주체로 미군 주둔 분담금을 부담했다. 그러나 지금은 미 제국이 동아시아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미국의 군사 보호령으로 존재하긴 하지만 대중 무역이 대미 무역보다 2배나 크고 경제 관계에선 오히려 중국이 더 중요해졌다. 그 때문에 남한의 지배계층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아주 조심스런 줄타기를 하고 있다. 미 지배층이 갖는 가장 큰 걱정은 남한 지배자들이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역사 정치’ ‘기억 정치’에선 한국의 지배자들이 중국의 지배자들과 한 블록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1월 중국 하얼빈에 안중근 기념관을 만들 때 한·중이 협력을 했고, 일본은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했다. 미국은 이를 너무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미국이 바라는 것은 한-일의 역사적 화해다. 여기에 박유하의 담론이 딱 들어맞는다.” 정 “한국인들이 현재 상황을 19세기 말 20세기 초처럼 느끼는 위기의식은 정당하다. 그런데 이것이 국가주의적인 담론으로 흡수되면 방향이 달라진다. 일본에서도 우파의 주장은 안보 강경론이다. 일본에서 얼마나 현실성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키나와 기지 문제가 심각해지고 (오키나와) 독립론이 힘을 얻게 되면 나오는 게 중국 위협론이다. 중국이라는 적을 내세워 오키나와의 ‘반일’을 깨고 일본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담론이다. 일본 리버럴에선 이 동아시아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면 한국의 반일 자체를 깨야 한다고 말한다. 즉 한일의 화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아미티지-나이 보고서’(미국의 대일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지금까지 세 차례 발표한 보고서)도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 중국이나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 한일 간에 역사적인 화해가 필요하다 주장이다. 그래서 결국 일본 우파의 안보 강경론과 리버럴의 한일 화해론이 거의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는 꼴이 된다. 이들에게 문제는 한국의 민족주의다.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일본 리버럴들이 환영하는 배경에는 이런 맥락이 있다. 현재 일본에선 일본의 ‘혐한’과 한국의 ‘반일’을 동일시하는 담론이 대세다. 혐한류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한일 화해를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일베’와 일본의 ‘혐한류’가 같다는 게 아니라 혐한류와 정대협이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해론 자체는 어느 의미에선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박 “이 논리는 결국 한국군이 유사시에 일본의 자위대와 하나가 되어 대륙 세력과 싸워 미국을 위한 총알받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한일 화해 담론이 이와 같은 차후 구도를 미리 합리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씨가 일본에서 매우 유의미한 발언을 했다. ‘우리가 친일·친미해야지 왜 친북하냐’는 것이다. 즉, 일본과의 화해라는 게 친북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다. 북한 혹은 암묵적으로 중국에 맞서기 위해 한국이 일본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한일 화해론의 근거가 된다면 굉장히 위험한 논리가 될 수 있다. 북한과 일본 중에서 선택을 하게 되면 일본을 선택해서 북한과 같이 싸우자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정 “화해란 말 자체는 거부하기 힘들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안보 문제와 화해가 세트로 결합된 상황에서 화해 자체를 재검토하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일본 리버럴들은 한편에서는 한일 화해를 거론하면서 대북 경제제재에 찬성하고 있다. 어느 의미에서 일본 헌법의 평화주의 자체가 유명무실화 되고 있는 것이다.” -미·일이 한일 화해를 통해 현재 추진하려는 것은 한-미-일 삼각동맹이다. 현재 이를 막는 것이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저항이다. 박 “일본의 민중은 국가와 혼연일체 되는 경향이 강했고, 특히 식민지에선 민중과 국가가 거의 하나가 된 경우도 많았다.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중국인을 학살한 것은 군인이 아니라 일본 민중이었다. 그만큼 일본 민중 안에 조선인·중국인에 대한 혐오감과 우리 민족이 우월하다는 생각이 강했다. 한국 민중의 일본 혐오는 그런 부분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일본 민중들은 과거에 취했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또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서구화에 성공한 것을 이용해 동아시아를 침략했고, 이를 통해 현재 번영의 기초를 잡았다. 일본 민중들이 현재 누리는 높은 생활수준이 타자들의 희생을 통해 얻어진 것임을 인식하기 시작할 때 진짜 화해는 가능할 거라고 본다.” 정 “화해란 말이 너무 정치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어떤 화해가 필요하냐는 문제 설정을 일단 거부해야 한다. 화해가 필요한 게 아니라 진상규명과 피해회복이 필요하다.” -현재 양국 간 가장 큰 관심은 한일 정상회담 실현이다. 박 “한-일의 지배 계급은 이미 유착돼 있어 더 이상 화해할 것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안 만났을 뿐이지 이미 실무자 선에선 다 만나도 모든 채널이 다 가동 중이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미국의 우산 아래 있으니 상호간에 계속해서 물밑 조율을 한다. 한국인에게 중국과 일본 사이에 선택할 때 중국이 아닌 일본을 선택하라는 거지 뭐 특별히 더 화해할 게 있나(웃음). 화해가 필요한 것은 남과 북이다. 현재 너무 골이 깊다.” 정 “(남북 사이엔) 전쟁을 먼저 끝내야 한다.”(현재의 휴전 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의미) 박 “남과 북은 서로 너무나 달라져 서로가 얼마나 달려졌는지 인식도 못하고 있다. 최근 영국 <가디언>이 남한에 사는 탈북자 가운데 재 입북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는 보도를 했다. 탈북해서 남한에서 살았는데 저임금 육체노동을 하면서 차별 받고 괴롭힘만 당했다는 것이다. 현재 재입북을 준비하는 이가 <가디언> 추산으로 70~100명이나 된다고 한다. 서로 화해는커녕 공존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도쿄/사회·정리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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