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만에 찾아온 기시감에 당혹
“우리땐 그렇다 쳐도 지금은 21세기”
“우리땐 그렇다 쳐도 지금은 21세기”
“중·고교 때 국정교과서에 나온대로 5·16을 ‘군사혁명’,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외웠고 그게 사실이라고 믿었다. 박근혜 정부가 도입하려는 국정교과서는 국민을 다시 독재자의 말 잘듣는 바보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지켜보는 직장인 김맹수(58)씨는 참담하다고 했다. 김씨처럼 학창시절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운 40~50대들은 수십 년만에 찾아온 기시감에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직장인 김정희(48)씨도 ‘국민 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야 했던 19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김씨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유신헌법은 자랑스러운 ‘한국적 개헌’이라고 배운 세대다. 또 공산주의는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배웠다”며 “지금 정부가 만들려는 교과서는 옛날 국정교과서의 되풀이에 불과할 것이다”고 했다.
자녀 세대까지 국정교과서를 배우는 일이 반복된다는 사실에 황당해하는 반응도 있다. 자영업을 하는 박아무개(57)씨는 “우리 때는 못 살고 못 배워서 그랬다고 치자. 그런데 지금은 다양성이 시대적 가치가 된 21세기가 아닌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시대착오적 사고방식을 아이들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게 말이 안된다”고 했다.
‘객관적인 집필진을 구성해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농사를 짓는 이아무개(50)씨는 “내가 본 국정교과서는 현재 집권세력에게 불리한 것은 다 없애고 좋은 점만 부각해서 쓰여져 있었다. 앞으로 만들어질 국정교과서도 역사 왜곡의 가능성이 높다. 국정교과서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했다. 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김선미(44)씨는 “우리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도 아이들이 역사교과서가 지루하다면서 그대로 달달 외우려 든다. 국정교과서가 나오면 애들은 그 내용을 아마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건 엄청난 문제다”고 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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