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집필 참여 양정현 교수 ‘쓰디쓴 추억’
“이건 내 원고 아니다 항의한 이도
1년만에 제작·배포하겠다는 건
좋은 교과서 만들 생각 없다는 것”
“이건 내 원고 아니다 항의한 이도
1년만에 제작·배포하겠다는 건
좋은 교과서 만들 생각 없다는 것”
“이건 내가 쓴 원고가 아니야!”
2002년 발행된 중학교 국사 교과서(7차 교육과정)의 최종 원고가 나온 날, 현대사 부분 집필자로 참여한 한 학자가 크게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각 단원 담당자들이 쓴 초고를 모은 뒤 이를 윤문·교정하고 다듬는 균질화 작업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집필자와는 상의도 없이 편찬 실무진이 원고를 수정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거든요. 그 선생님께서 최종 원고를 보니 아주 낯선 글이었던 거죠.” 당시 집필에 참여했던 양정현 부산대 교수(역사교육과)가 털어놓은 국정교과서의 쓰디쓴 ‘추억’이다.
양 교수는 지난 15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꼭 독재정권 시절이 아니라고 해도 국정교과서 집필 과정을 살펴보면 교육부 관료와 실무진 등 관료들의 개입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다”며 “국정교과서는 구조적으로 좋은 교과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중학교 국사 교과서를 만들 당시 “집필자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실무진들이 알아서 수정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회고했다. 양 교수 설명에 따르면, 당시 국정교과서는 집필진을 꾸린 뒤 몇 차례 회의를 거쳐 큰 틀을 짜고, 이후 각 시대 전공자들이 단원별로 ‘초고’ 작성 단계를 가졌다. 초고가 넘겨진 뒤 집필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회의는 한두 차례 정도고, 남은 건 실무진에 의해 “매우 오랫동안, 수십번 고치는 작업”이었다. 교과서 제작 과정에 어떤 방식으로든 ‘외압’이 개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는 “실무를 맡은 관료들이 ‘어떤 교과서가 나와야 윗분들 마음에 들겠다’는 판단을 한다. 결과적으로 관료들의 입장이 투영된 교과서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그때는 그래도 2년의 시간을 두고 교과서를 만들었지만, 지금 정부는 1년 만에 국정교과서를 제작해서 학교 현장에 배포까지 하겠다는 것이 아니냐”며 “애초에 좋은 교과서를 만들 생각 자체가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개선을 위해) 7차 국정교과서 집필 기록을 남기려고 자료를 갖고 있었는데, ‘설마 다시 국정화 얘기가 나오겠나’ 싶어서 자료를 버렸다”며 “그때 자료를 정리했더라면 지금 상황에 참고가 됐을 텐데, 역사를 전공했다고 하는 사람이 그런 기록의 가치를 모르고 버린 것 같아 무척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양정현 부산대 교수.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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