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정치인들과 현 정부는 이 나라에서 (자신들만) 역사와 국가에 충성하는 유일한 세력이고, 나머지는 ‘반역자’(traitor)로 보는 것 같다.”
한국 역사학계의 ‘내부자이자 외부자’인 흐리데이 나라얀 한국외국어대 교수(사학과)가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인도에서 ‘한국 현대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나라얀 교수는 2003년 성균관대를 시작으로 국내 여러 대학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다가 2011년부터 한국외대 사학과 조교수로 재직하며 ‘한국 현대사’ 등을 가르치고 있다.
나라얀 교수는 21일 <한겨레>와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과 관련해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역사교과서 집필 과정에 통제·간섭하는 것에 대해 완전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갖추기 위해선 (사안을) 깊이 연구한 학자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라얀 교수는 역사학자로서 국정화가 역사를 ‘사실’보다는 ‘정치’의 영역으로 휘말려들게 될 것을 우선 염려했다. 그는 “정부의 ‘올바른 역사교과서’는 일본의 식민지배, 한국전쟁과 박정희 정권을 포함한 역사의 많은 부분에 대해 아마도 다른 입장을 취할 것 같다”며 “(국가가 교과서를 발간할 때) 역사가 사실에 근거하기보다는 정치적인 의도로 쓰일 위험은 훨씬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국정교과서 정책이 역사적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지만, 궁극적으로 정부와 교육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저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손실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국정화는) 교육에 대한 권위주의적인 접근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며 “결국 학자들이 정부와 교육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와 여권 일각에서 ‘역사학계 90%가 좌편향돼 있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정당화하려는 발언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그는 “정부가 역사학자 대다수를 무시한다면 어느 나라든 올바른 역사를 쓴다는 게 가능하겠느냐”며 “정부가 학계의 편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내겐 꽤나 우습게(quite funny) 여겨진다”고 말했다.
나라얀 교수는 역사교육의 바람직한 방향과 관련해 “인도에선 논쟁적인 역사적 주제를 피하지 않고 학생들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토론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며 “한국 학생들이 암기보다는 사실에 근거한 토론과 상호 질문을 통해 자신만의 역사적 지식을 갖춰 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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