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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우리는 계란이 아니야, 저들도 바위가 아니야

등록 2015-10-23 18:38수정 2015-12-22 14:35

대표적인 여성주의자이자 한의사인 고은광순씨가 지난 14일 낮 거처인 충북 옥천군 청산면 삼방리 ‘솔빛한의원’ 앞 마을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일을 묻자 “평화를 만들고 무기회사를 없애는 일”이라고 답했다. 옥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대표적인 여성주의자이자 한의사인 고은광순씨가 지난 14일 낮 거처인 충북 옥천군 청산면 삼방리 ‘솔빛한의원’ 앞 마을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일을 묻자 “평화를 만들고 무기회사를 없애는 일”이라고 답했다. 옥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시골 한의사 고은광순
관객이 예닐곱명밖에 들지 않은 공연장에서, 연극을 본 적이 있다. 배우는 단 한명의 관객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펼쳐 보이겠다는 듯 혼신을 다해 열연을 펼쳤지만, 그럴수록 나는 불편하고 초조했다. ‘왜 관객이 이것밖에 안 왔을까?’ 연신 두리번거리다가, 시간이 지나도 더 이상 관객이 들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는 배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왠지 죄스러워 발가락이 움츠러들었다. ‘암전이 될 때 슬쩍 도망가버릴까?’ 생각하다가 ‘다른 관객도 혹시 나 같은 생각을 하면 어쩌지?’ 싶어 화들짝 놀랐다. ‘제발 아무도 나가지 않기를….’ 그날 연극 관람은 벌서는 것처럼 고단했다.

지난 8월 인터넷에서 그의 사진을 봤을 때 심정이 그랬다. 백악관을 등지고, 손글씨로 비뚤비뚤 쓴 손팻말을 들고 그가 서 있었다.

‘무기 생산을 중단하라’

‘전쟁은 그만! 양쪽 군인 모두 어느 어머니의 자식이다’

한글과 영문으로 구호를 찍어 조끼처럼 몸에 두르고, 바닥에도 여러 장의 손팻말을 늘어놓았다. 한여름의 강렬한 땡볕이 그의 발밑에 짧고도 진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후끈 달아오른 아스팔트 열기가 사진으로도 전해지는 듯했다. 그의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데도, 모래알을 씹는 것처럼 떨떠름하고 불편했다.

확신에 차 옳은 일을 하는 사람 앞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는 이 용렬함은 대체 뭘까? “경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워싱턴 근교 공원에 텐트를 치고 도시락을 싸서 하루도 빠짐없이 백악관 앞에 시위를 나간다”는 기사를 읽고는, 안쓰러움을 넘어서서 왈칵 짜증까지 치밀어 올랐다. 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자면 이랬다. ‘되지도 않을 일에 뭘 거기까지 가 가지고….’

스스로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게 또한 죄스러웠다. 염치없지만 그를 만나 직접 묻는 게 차라리 속 시원할 것 같았다. 왜 그리 무모해 보이는 싸움을 하는지, 그렇게 해서 해결이 될 거라고 진짜 믿는 건지…. 그러나 지난달 14일 그가 사는 충북 옥천군 청산면으로 차를 타고 내려가면서도, 그 질문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했다. 고민하는 사이, 삼방리 저수지 지나 언덕배기 입구에 작은 나무 팻말이 나타났다. ‘솔빛한의원’. 한국 여성운동의 기수이며 한의사인 고은광순(60)이 거처하는 곳이다.

“무기생산 중단하라” 팻말 들고
백악관까지 찾아가 시위한 그의
사진 보며 나는 왜 떨떠름했을까
무모해 보이는 싸움 하는 이유를
직접 만나 속시원히 묻기로 했다

상태 악화되는 치매 어머니를
더 이상 남의 손에 맡길 수 없어
5년 전 모든 걸 내려놓고 공주행
생애 마지막 6개월 함께해드려
이후 가족과 떨어져 옥천서 지내

바람이 무서우랴, 나무가 무서우랴

고은광순을 만든 시간들
고은광순을 만든 시간들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언덕 위에 그의 집이 있었다. 텃밭에는 아직 거두지 못한 고구마 덩굴이 무성했다. 그가 놓아기르는 닭과 병아리 40여마리가 고구마밭에서 폴짝거리다 인기척이 나자 50도 가파른 비탈 위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광채 나는 꽁지깃을 우아하게 펼치고 10여m를 가뿐히 나는 놈도 있었다. ‘닭 쫓던 개’ 꼴이 되어 돌아온 우리에게 그가 곱게 우려낸 우엉차를 내놨다.

-여기서 혼자 사시나요? 가족은요?

“남편이랑 아들 둘은 서울 살고, 나는 주로 여기서 지내요.”

-남편이 직장 때문에 지방 내려가고 부인과 아이들이 서울 사는 경우는 종종 보지만, 그 반대 경우는 흔치 않은데.

“2010년에 어머니 모시고, 내가 명상공부를 하러 다니던 공주에 내려가 살았어요. 그때 내 도움을 제일 많이 필요로 하는 건 편찮으신 어머니였으니까, 건강한 세 남자는 내가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내려오기 전에 남편한테 요리강습도 받게 하고 일주일에 절반씩 나랑 교대로 음식도 만들게 했죠. 그랬더니 내리 두부만 부치데. 하하하….”

-지금은 요리 잘하시나요?

“아이고, 가보면 김치만 해서 밥 먹고 있어요. 내가 김치는 해다 주거든요.”

치매를 앓던 친정어머니는 2011년 돌아가셨지만, 고은광순은 다시 서울로 올라가지 않았다. 자연에서 살아보니 잿빛 도시로 다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명상공부를 같이 하던 도반들과 공동체를 만들 생각으로 충북 옥천으로 이주한 것이 2012년. 이제는 서울과 옥천을 오가며 사는 게 익숙해졌다.

-외딴집에 여자 혼자 사는데, 외롭거나 무섭지 않으세요?

“외로울 틈도 없고 무서울 것도 없고. 나무가 무섭나, 바람이 무섭나, 호랑이가 있어서 문 열고 들어오나. 뭐가 무섭나? 인터넷으로 외부와 소통 다 되지. 새소리, 완전히 서라운드 돌비시스템으로 들리지.(웃음) 꽃 피지, 열매 맺지, 눈 오지. 얼마나 좋은데요.”

-그래도 가족이란 한솥밥을 먹고 한 지붕 아래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요즘은 카톡도 있고 텔레그램도 있고 그렇잖아요? 우리 가족끼리 채팅을 하는데 같이 살 때보다 대화를 더 많이 해요. ‘오늘 꽃을 봤는데 너무 예뻤어!’ 그러곤 꽃 사진도 보내주죠. 주로 하는 게 가족간에 격려하고 지지하는 말들이에요. 같이 살 때는 오히려 그런 얘기 잘 못하는데. 더 많은 얘길 하고 살아요.”

-어머니 간병을 위해 공주 갑사마을로 내려와 겪은 이야기를 쓰신 <시골 한의사 고은광순의 힐링>을 읽었습니다. 시골로 간다고 해서 어머니가 크게 호전될 수 있는 상황은 이미 아니었잖아요?

“그냥… 인간에 대한 예의죠. 어머니가 6남매를 키워주셨는데 그동안 자식들 도시락 싼 걸 헤아려보면 만개가 넘어요. (목이 메는 듯) 돌아가시기 전, 그때가 가장 보살핌이 많이 필요한 시기인데, 어머니와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아들딸이, 어머니를 돌봐드려야죠. 남자들이 자기 부모 기저귀 한번 안 갈아보고, 마누라 통해서 ‘리모컨’ 효도나 하려 드는 건 정말 잘못된 거예요. 그래 놓고 돌아가시면 죽은 사람한테 상 차리는 일도 마누라한테 맡기죠. 진짜 중요한 건 죽은 사람한테 상 차려놓고 죽음을 기리는 게 아니고 살아있는 동안 추억 많이 만들고 더 많이 사랑하는 거예요.”

이내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은광순이 유신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거나 제적될 때에도 ‘이 애가 못된 짓 할 애는 아니다’란 믿음으로 딸아이를 믿어주던 강단있는 어머니였다.

고은광순은 1955년 아버지 고주상과 어머니 은예동의 6남매 중 넷째 딸로 태어났다. 1973년 이화여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가 두번 구속되고 두번 제적되는 고초를 겪은 뒤 1984년 다시 입시를 치르고 대전대 한의학과에 입학해 한의사가 되었다. 안티미스코리아 운동, 호주제 폐지운동, 내 제사 거부하기 운동 등 여성주의 운동에 앞장섰고, 종교법인의 재정 투명화, 무자격자의 한약 조제 금지, 최근의 반전평화 시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이었지만, 상태가 악화되는 치매 어머니를 더 이상 남의 손에 맡겨놓을 수가 없어, 5년 전 모든 걸 내려놓다시피 하고 어머니를 위해 시골로 내려왔다. 밤새 기저귀 갈고 가래를 뽑고 욕창을 치료하고 유동식을 만들고 노래를 불러드렸다. 어머니는 생의 마지막 6개월을 막내딸과 함께하다가 명상음악과 시와 기도문을 들으며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책에 보면 어머니의 임종을 굉장히 담담하고 평화롭게 그려놓으셨어요. ‘어머니의 삶이 의미있는 것이었음에, 감사함에 박수를 쳐드렸다. 어머니는 어느 순간 숨을 내뱉더니 다시는 들이쉬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보내드릴 생각을 하셨어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요. 사람이 생의 마지막에 원하는 건 뭘까?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기보다는 감사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후회 없이, 한이 남지 않게 마무리가 잘되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죽을 때도 박수 쳐서 보내주면 좋겠어요. 내가 힘들게 살았다면 그 고통을 벗어나는 것이 축하해줄 만한 일이고, 내가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았다면 그것 또한 박수 쳐줄 일 아닌가요. 어머니도 그렇게 보내드리고 싶었어요.”

고은광순씨가 솔빛한의원 앞마당에서 찾아온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옥천/강재훈 선임기자
고은광순씨가 솔빛한의원 앞마당에서 찾아온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옥천/강재훈 선임기자

‘엄마 앞에서 짝짜꿍’ 정순철을 아세요?

살림집과 서재, 한의원을 겸하도록 설계된 그의 집에서, 서재는 부엌과 한 공간으로 틔어 있다. 책상 위에는 한 무더기 책과 원고 뭉치, 큰 지도가 포개어진 채 펼쳐져 있었다. 우리를 맞이하기 전까지 작업을 하고 있었던 듯했다.

-무슨 일을 하고 계셨어요?

“(부끄럽다는 듯) 아이고, 그쪽은 엉망진창인데 보지 마세요.(웃음) 작년 한 해 내내, 동학에 관한 ‘다큐소설’을 써왔는데 이제 마무리 작업 중이에요. 알음알음으로 여자들 15명이 모여서 동학 봉기와 이후 동학 2세대들의 삶을 역사적 기록에 근거해서 약간의 픽션을 가미해 재구성한 건데, 총 13권 분량으로 연말까지 완간이 돼요.”

-대단한 기획이군요. 작업에 참가한 분들은 어떤 분들이죠?

“국어교사도 있고 시민운동가, 명상지도사도 있지요. 동학연구의 대가인 원광대 박맹수 교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봐주셨고요.”

-어떻게 이런 작업을 할 생각을 하셨어요?

“모든 인연과 사건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생기는 것 같아요. 어떤 인연에선지 ‘동학이 내게 동서남북으로 쳐들어왔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처음 이리 올 때는 몰랐는데 1894년 동학의 총본부가 여기 청산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됐죠.”

-아, 그래요?

“내가 청산에 집을 짓는다는 소문을 듣고 도종환 시인이 책을 한권 보내줬는데 그게 <정순철 평전>이었어요.”

-누구요?

“정순철. ‘엄마 앞에서 짝짜꿍…’ 하는 노래,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하는 졸업식 노래를 만든 동요 작곡가예요. 근데 평전을 펼치니 맨 동학 얘기만 나오는 거예요. 알고 보니 정순철이 청산 태생인데, 해월 최시형(동학의 2대 교주)의 외손주더라고요.”

-아하!

“내가 호주제 폐지운동 하면서 한국 남자들의 찌질한 모습을 굉장히 많이 봤어요. 우리를 ‘앉아서 오줌 누는 빨갱이년들’이라고 부르면서 차별을 당연시하고 부계 혈통만 따지는 남자들. 한국 남자들의 유전자에 찌질함이 있나? (갸우뚱) 알고 보니 그게 다 일제 때 생긴 것들이에요. 한국의 가부장제엔 허깨비 같은 게 많아요. 김, 이, 박 3성이 45%라는 건 뭐예요? 족보가 대부분 가짜고, 일제 때 양반 흉내 놀이를 시작했단 건데, 그런 거짓말, 위선, 허세 그런 걸 미풍양속인 줄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일제강점기 전엔 동학이 있었고, 거기 진짜 ‘상남자, 상여자’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상남자, 상여자라고요?

“한줄 혈통은 존재하지 않아요. 모계가 끊임없이 섞여 들어왔기 때문에 내 조상은 위로 갈수록 많은 거잖아요. 그러니 ‘나’는 뿌리이면서 열매거든요. ‘조상 섬기기 전에 너 자신을 존중하고 네 옆 사람을 귀하게 여겨라.’ 그게 우리가 호주제 폐지운동 하면서 입이 닳도록 한 얘긴데, 알아먹는 사람이 없었어요. 근데 120년 전에 해월이 그 얘기를 했던 거예요. ‘향벽설위’(向壁設位)하지 말고 ‘향아설위’(向我設位)하라. 벽에다 죽은 자를 위해 패를 설치하지 말고 너를 위해 상을 차려라. 너를 존중하고 네 옆의 만물을 존귀하게 여겨라. 정말 깜짝 놀랐어요.”

-동학정신은 서양의 자유주의보다 더 근원적이고 진보적이었단 말씀이네요.

“그렇죠. 아이를 때리지 마라. 아이가 하느님이다. 제자들이 부부관계를 고민하면, 해결 방법으로 부부가 맞절을 하라고 했어요. 동학에선 양반과 백정도 지위고하 없이 서로 존대를 했어요. 수평적인 천국천인(天國天人)을 꿈꿨죠.”

-천국천인 이상사회!

“‘유무상자’(有無相資)도 동학의 핵심 키워드예요. 있으나 없으나 서로 돕는다. 가진 사람이 일방적으로 나눠주는 게 아니고, 없으면 없는 대로 새끼 꼬아주고 짚신 만들어주고 기술로 도우라고. 함께 나누려는 정신이 거기 있었죠. 지금 우리가 엄친아, 엄친딸 하고 서로 경쟁하면서 더 행복해졌나요? 진짜 행복한 세상은, 자연에 가깝게 서로 벽이 없는 관계잖아요. 지금은 각자 벽을 쌓고 내 벽이 더 반짝거리니, 네 벽이 더 반짝거리니 다투는데. ‘귀한 우리, 함께 잘 살자’가 동학의 기본정신이었어요.”

-선생님의 종교는 그럼 동학인가요?

“동학은 ‘믿는다’라고 하지 않고 ‘동학을 한다’고 말해요. 종교가 아니라 삶의 철학인 거죠. 근데 사실은 ‘믿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어려워요. 하하하…. 절대적인 존재한테 ‘해주세요’ 하기는 쉬운데 ‘한다, 하겠어요’ 이거 쉽지 않아요.”

끝내 승리한 호주제 폐지운동 하며
지겹게 본 한국남자 찌질한 모습들
그게 다 일제 때 생긴 것들이었네
‘동학 다큐소설’ 준비하면서
동학의 상남자·상여자를 만나다

일본 총에 ‘개벽세상’ 꿈 사그라져
지금도 전쟁 일어나는 건 무기 탓
무기 없애자는 주장 무모해 보여도
100만명 1인시위 하면 세상 바뀔것
“귀한 우리, 함께 잘 살았으면”

고은광순(왼쪽)씨가 솔빛한의원 거실에서 인터뷰를 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이진순(오른쪽)씨와 함께 점심상을 차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옥천/강재훈 선임기자
고은광순(왼쪽)씨가 솔빛한의원 거실에서 인터뷰를 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이진순(오른쪽)씨와 함께 점심상을 차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옥천/강재훈 선임기자

“저는 실패하지 않았어요! 해냈어요!”

-동학 마무리 출간을 앞두고 한창 바쁠 땐데 미국까지 원정시위를 가셨어요. 얼마나 계셨죠?

“8월12일 출국해서 9월9일 돌아왔어요. 백악관 앞에서 23번, 그리고… (수첩을 뒤적이며) 펜타곤 앞에서 12번, 무기회사인 보잉사와 록히드마틴사 앞에서 각각 8번과 3번, 뉴욕의 유엔본부 앞에서도 2번의 시위를 했어요.”

-미국 원정시위를 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동학이 성공했다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동학 봉기 직전에 우리 인구가 1050만명, 그중에 300만명이 동학도였다고 하니까 일본만 아니었으면 진짜 개벽세상이 되었을지도 몰라요. 근데 일본놈들이 고성능의 총을 갖고 들어와서 대학살을 시작했어요. 두달 사이에 3만명에서 5만명을 싸그리 죽였죠. 일본제국 최초의 제노사이드(대학살)예요. 거기서 무기의 꿀맛을 보고 그다음에 아시아 27개국을 식민지로 삼잖아요. 1945년까지 반세기 동안 2천만명을 죽였어요.”

-그렇게 많아요?

“일본학자가 집계한 숫자예요. 그래서 동학소설을 쓰면서 절감했죠. 무기가 문제다. 무기 없애는 일을 해야겠다! 지금도 세상에 전쟁이 일어나는 건 무기산업 때문이잖아요. 록히드마틴사의 사장 연봉이 370억원인데 그 사람이 한국에 와서 사바사바하면 F-15가 F-35로 바뀌고, 만들어지지도 않은 비행기, 한대에 1000억원이 넘는 걸 10대씩 4년간 사겠다고 계약을 해요. 지금 우리나라 방위산업체, 국방부, 국가정보원, 정부는 굳기름처럼 두껍게 한국 사회의 숨통을 조이고 있어요. 분단으로 해서 이익을 보는 분단마피아가 총풍이니 북풍이니 해서 전쟁 위협으로 장난을 치는 거죠.”

-그래서 미국 갈 생각을 하셨나요? 1인시위를 하러?

“때마침 여성평화운동가들의 비무장지대 도보행진 소식을 들었어요. 이거구나 싶었죠. 자식을 전쟁터에 내보내는 엄마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가슴에 담아두었던 내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 그의 시위 사진을 본 소감을 솔직히 고백했다. 빈 객석을 향해 열연을 펼치는 배우를 보는 것 같았다고. 인류 역사상 전쟁과 폭력이 없었던 적이 없는데 그런 이상적인 구호가 통하리라 보느냐고. 거대한 철탑 앞에 선 손팻말 몇개로 대체 무엇을 이룰 수 있겠느냐고. 그는 내 말을 조용히 듣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호주제 폐지 주장할 때 다들 그렇게 말했어요.”

그는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바위에 계란 던지기다. 그게 되겠냐고. 근데… 되어야 하는 거니까 했어요. 그리고 결국 됐잖아요. 약사법 개정운동 때도 그랬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게 되겠냐고 반문했는데, 결국 바꿨잖아요. 저는 실패하지 않았어요. 학생운동으로 감옥도 두번이나 갔다 왔지만 결국 박정희가 나보다 먼저 죽었어요.”

-그 따님이 대통령이에요.

“딸이 18년을 하겠어요? 국방부 시계도 간다고 군인들이 말하는데, 청와대 시간도 갑니다. 지금 국정 교과서니 뭐니… 욕심부리다 보면 터지게 돼 있어요. 지금 구덩이 파고 있잖아요.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틀림없이 비가 온다고 하지요? 비올 때까지 기우제하니까 그런 거예요.(웃음)”

그가 맑고 높은 소리로 깔깔깔 웃었다. 그는 웃는데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래도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 가능한 요구를 할 수 있잖습니까? 무기 중에서도 최소한 대량살상무기, 화학무기를 전량 폐기하라든가, 군사적 위협을 고조시키는 비방전을 중단하라든가…. 세상에 무기산업 다 없애고 전쟁 끝내라, 이게 되겠습니까?

“맞아요. 근데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면 길을 잃는 경우가 많아요. 무기 없는 세상을 만든다, 그건 숲이에요. 평화협정 체결해라, 그건 나무예요. 두개가 같이 가야 해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평화란 뭡니까?

“귀한 우리, 함께 잘 사는 것.”

-선생님이 평생 추구해온 여성주의는 뭡니까?

“귀한 우리, 함께 잘 사는 것.”

-여성주의와 동학, 평화운동이 다 하나란 말씀이네요.

“그렇죠. 몇년 전에 우연히 티브이를 보는데, 미국 나사에서 달에 물이 있는지를 확인한다고 달에다가 폭탄인지 뭔지를 터뜨려서 큰 충격을 주더라고요. 달이 크게 진동하면서 먼지가 퍼지는데, 어찌나 화가 나던지….”

-영화가 아니고 진짜 있었던 실험이에요?

“그렇다니까요. 진짜 쓸데없는 짓이잖아요. 물이 있는지 알면 너희가 어쩔 건데? 우주라고 하는 게 얼마나 정교하게 돌아가는 건데, 달이 지들 것도 아니면서. 그리고 물은 지구에 ‘천지삐까리’다!”

-하하하….

“화성에 가서 바이러스 찾는다고? 생명은 지구에 쌔고 쌨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지구에 폭탄 터뜨리고 사람 죽이는 놈들이 뭘 우주에 가서 물 찾고 생명을 찾냐고? 이 지구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데, 지구자원을 엄청나게 소모하면서 바깥에 나가서 그런 짓을 왜 해? 지구방위대도 필요 없고 너나 잘해라!(웃음)”

그가 다시 깔깔깔 낭랑한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이번엔 그를 따라 웃을 수 있었다.

발끈하지 말고 사랑하고 감사하라

나는 고은광순의 원정시위 사진을 보며 그가 외롭고 고독할 것이라고 예단했지만, 그는 누구보다 밝고 부드럽고 여유로워 보였다. 가장 치열한 현장에서 온유함을 잃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힐링>에서 이렇게 썼다.

분노와 살기는 한없이 밑지는 장사… 너를 죽이려다 내가 죽는다.(198쪽)

휘둘리고 상처를 주고받으면 지옥이고 어떤 상황에서나 미소로 사랑과 감사를 주고받으면 천국이다. 에헤라 디여~(199쪽)

-오랫동안 사회운동을 해오신 분들이 모두 선생님 같진 않습니다. 상처에 휘둘리지 않고 분노나 우울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어떻게 싸우죠?

“영국 여성인데 티베트 불교에 심취해서 승려가 된 텐진 팔모 스님이라고 있어요.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분노와 증오로 싸우지 말고 자유를 향한 마음으로 싸워라.’ 내 안에 태산이 쌓이면 쥐가 구멍을 뚫어도 괜찮고 바람 불어도 괜찮아요. 내 경험상 내공을 키우는 데 좋은 방법은 감사명상, 축복명상입니다. 비가 오네? 감사합니다. 바람이 부네? 감사합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 안에도 아기예수, 아기부처가 있어요. 발끈하지 말고, 축복의 마음으로, 그 아기예수, 아기부처가 커지길 비는 마음으로 싸워야죠.”

-아기예수, 아기부처가 없는 것 같은 사람도 있어요.

“있어요. 좁쌀만해서 그렇지. 하하하….”

-올해로 환갑이 되셨죠?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후회되는 점이 있다면?

“별로 후회 안 해요. 여기 살면서 아, 이만하면 백점짜리잖아 생각해요. 난 기준을 높게 안 잡거든요. 하하…. 한달에 50만원을 벌어도 아, 잘했어. 아이고 난 백점이네….”

-스스로 생각하는 훌륭한 점은 뭔데요?

“해야 할 일을 하잖아요. 게으름 부리지 않고. 적어도 세상에 와서 폐를 끼치고 가지는 말자고, 돌멩이 발부리에 차이지 않게 치우면서 사는 것, 그러는 나 스스로가 고마운 거지.”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평화 만들고 무기회사 없애는 일이요. 분단마피아 굳기름 떠내는 일. 지금도 미국대사관 앞에서 우리가 화·목 1인시위를 하는데 그걸 방방곡곡에서 100만명이 하면 세상이 바뀔 거예요.”

인터뷰를 마치자 그가 잠깐 기다리라며 부엌으로 달려가더니 잠시 뒤 우리 일행에게 작은 병 하나씩을 건네주었다. 그가 손수 텃밭에서 키운 방울토마토로 만든 장아찌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가 출력해서 들고 갔던 그의 미국 시위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다시 보는 사진은 불편하지 않았다. 그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당당해 보였다. 그가 꼭 써달라며 당부한 마지막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우리는 계란이 아니다. 저들도 바위가 아니다.”

녹취 박성희(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이진순
이진순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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