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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독재 막은 4·19때처럼…역사 교수들 거리로 나섰다

등록 2015-10-25 19:13수정 2015-10-25 22:07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사진 뒤쪽 왼쪽 일곱째)를 비롯한 원로 역사학자들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역사 연구자와 교사들과 함께 마스크를 쓰고 침묵으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사진 뒤쪽 왼쪽 일곱째)를 비롯한 원로 역사학자들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역사 연구자와 교사들과 함께 마스크를 쓰고 침묵으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70개 대학 454명 ‘집필 거부선언’

보수·진보, 소장·원로 아울러
역사학자 300여명 거리행진
“역사교육 정치적 중립성 위기”

정옥자 교수, 거듭 국정화 비판
“정부가 역사학계를 바보 취급
우리도 그냥 있을 수 없어”
“4·19혁명 때 사학과 교수들이 ‘학생들 피에 보답하라’며 전면에 나섰다. 그때보다도 역사학계의 저항이 크다고 느껴진다. 보수 성향 교수들까지 나서서 이렇게 많은 교수들이 한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서울 ㅅ대 역사학 교수)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님은 정치 성향으로 보면 중도보수다. 정 교수님까지 나서서 국정화를 비판하는 것을 보고 나도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 학문적 양심,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위기에 처해 있다.”(부산 ㅅ대 역사학 교수)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손자인 김경민 광복회 문화위원회 위원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국정 교과서에 반대하는 의미로 항일투사 후손들과 함께 기획한 ‘항일운동사 장례식’에서 조사 낭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손자인 김경민 광복회 문화위원회 위원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국정 교과서에 반대하는 의미로 항일투사 후손들과 함께 기획한 ‘항일운동사 장례식’에서 조사 낭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이제 역사학계는 대다수의 국정화 반대 교수와 집필에 참여하겠다는 극우적 성향의 극소수 교수로 나뉘고 있다.”(서울 ㅇ대 역사학 교수)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교수들의 교과서 집필 거부 선언이 전국으로 확산된 데 이어 역사학 교수들이 거리로 나서는 등 학계와 교수 사회의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이런 반발은 원로학자와 소장학자, 보수학자와 진보학자를 가리지 않고 있어, 역사학계 내부에서도 “4·19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5일 <한겨레>가 지난 13일 연세대 사학과 교수들의 집필 거부 선언 이후 23일까지 집계한 결과, 70개 대학 454명의 역사학 교수들이 집필 거부 선언에 동참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이른바 주요 대학의 교수들이 대부분 동참했으며, 지역적으로 여당 성향의 대구·경북, 부산·경남 지역 대학교수들도 대거 참여했다. 23일 부산·울산·경남 지역 14개 대학 88명이 참여한 거부 선언에 서명한 한 교수는 “여건이 안 되는 일부를 뺀 이 지역 대다수 역사 관련 교수가 참여했다고 보면 된다”며 “대구·경북 지역(지난 19일 9개 대학 40명 참여)도 그렇고 여당의 아성인 이 지역에서 학자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데 이렇게 한목소리를 낸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의 방은희 국장은 “국정화 결정 이전의 ‘국정화 반대 성명’보다 정부가 국정화를 결정한 이후 이뤄진 집필 거부 선언에 훨씬 더 많은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도 예상 못한 정도”라고 했다.

지난 24일에는 역사학 교수와 교사, 연구자들이 거리로 나섰다.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이이화 전 서원대 석좌교수,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등 백발이 성성한 원로 역사학자들과 젊은 신진 연구자들이 어울린 300여명이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정부와 여당이 역사쿠데타를 자행하고 있다”며 국정화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광화문까지 행진했다. 안병욱 교수는 <한겨레>에 “국정화는 역사학자들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도 아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역사에 대한 아무런 깊이가 없는 인식을 보이니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교수들이 먼저 요구해서 기자회견을 했지만, 설마 직접 거리로 나올까 싶었다. 그런데 전임교수들만 30여명 가까이 나오고, 50대 교수들까지 다수 보여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역사 관련 학회들 내부에서는 집필 거부 선언을 넘어서는 직접행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오는 30일과 31일, 서울대에서 열리는 역사학계 최대 학술대회인 제58회 전국역사학대회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서는 역사학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배경으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국사학자 90%가 좌파다” 발언 등 역사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정부·여당의 이념공세를 꼽는다. 부산지역 대학의 한 서양사 전공 교수는 “다양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좌파’라며 일방적으로 편가르기 하는 데서 거부감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국사학계가 분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권 입맛에 맞는 교과서 하나 만들자고 ‘좌익 교과서다’ ‘학계 90%가 좌파다’ 등 거짓말을 하는 정부의 태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 등 보수 성향 학자들까지 포함한 역사학계 원로들이 강하게 국정화를 비판하는 것도 후배 교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옥자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10월23일치 1면)에 이어 23일 티비에스(TBS) <퇴근길 이철희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에 적극 동의하지 않으면 좌파라고 몰아붙이는 모양인데, 어떻게 역사학계 90%가 좌파냐? 말도 안 된다”며 “가만히 있다고 지금 바보로 취급을 하나본데 그렇다면 우리도 그냥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진명선 박수지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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