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공원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대학생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손팻말을 만들고 있다.
“한 나라의 역사는 몇몇 사람이 바꿀 수 없다
헬조선은 교과서가 아니라 노동개악이 만든다”
헬조선은 교과서가 아니라 노동개악이 만든다”
때 이른 가을 추위와 중간고사 기간이라는 압박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열기를 꺾지 못했다. 단단히 점퍼를 여미고 나온 학생들은 31일 오후부터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외치며 행진을 이어갔다.
각 대학 총학생회 등 대학생 단체들은 이날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과 이화여대 앞 대현공원 등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대학생 대회’를 열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서울 동·북부지역 대학생 집회에는 국정 교과서에 반대하는 대학생 400여명이 참여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외대인 모임’, ‘한국사 국정화 저지 고려대 네트워트’ 등의 깃발 아래 모인 이들은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습니까’, ‘친일과 독재를 정당화하는 역사교육 강요하지 말라’는 손팻말을 들고 “역사를 되돌리고 민주주의를 퇴보시키는 국정교과서를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가 시작되자 참석자들은 “대학생들이 앞장서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막아내자”고 강조했다. 고려대 부총학생회장 강민구(23)씨는 “학계와 대학생, 시민단체 모두가 반대하는 국정교과서를 어떻게 강행할 수 있는지 안타깝다”며 “4·19와 5·18, 6월 항쟁 등 우리 역사에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린 이들이 많다.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되돌리려는 국정 교과서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성신여대 총학생회장 한연지씨도 “정부 여당은 전국민이 반대하는 국정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색깔론까지 덧입히려 하고 있다”며 “정부의 검인정까지 통과한 교과서를 편향적이라고 몰아세우면서 이 정부가 만들고자 하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는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동덕여대에 다니는 김소연씨는 “권력자의 뜻대로 바꾸는 역사는 부끄러운 것”이라며 “한 나라의 역사는 몇몇 사람이 바꿀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대현공원에도 경기대, 명지대, 이화여대, 연세대, 서강대, 항공대, 홍익대 등 서울 서부지역 대학교 학생 200여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자유발언을 하고, 삼삼오여 둘러 앉아 손팻말로 쓸 문구를 만들었다.
스케치북으로 만든 손팻말에는 ‘전국민 노예교육 국정교과서 반대해요’, ‘헬조선은 현행 교과서가 아니라 노동개악이 만듭니다’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동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의 가사를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국정교과서 반대한다 국정교과서 반대한다 외쳐보겠네 외쳐보겠네~”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연세대 행정학과 1학년 홍용희(19)씨는 자유발언에서 “정부와 여당은 현행 역사교과서가 ‘좌편향’되어 있어 학생들이 ‘자학사관’을 배우고 있고, 이 때문에 청년층이 우울해지고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과 정신질환으로 이어졌다고 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좌편향과 자학사관이 뭔지 의문이다”라며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맞써 목숨을 걸고 싸운 우리 선조의 이야기가 좌편향이냐? 독재를 몰아냈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선배들의 이야기가 좌편향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청년들이 우울한 이유는 자학사관 때문이 아니라, 끝없는 내신성적 경쟁, 학점 경쟁, 스펙 경쟁, 치솟기만 하는 등록금, 해결책이 보이지 않은 청년 실업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역사는 국민들의 집단적 기억이다. 그 집단 기억을 권력이 선별하고 획일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온 재일 한국인 김성헌(20)씨는 “일본에서도 부끄러운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가 있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본에서도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지는 게 아닌데, 왜 미안하다고 못하냐고 이야기 해왔다. 같은 생각에서 한국의 교과서 국정화에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음악을 만든다는 그는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뜻을 담아 노래를 하나 지었다며, 후렴구 가사를 들려줬다. “슬픈 역사는 바꿀 수 없습니다. 지울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배울 수가 있고 다시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는 “부끄럽고 슬픈 역사일수록 남겨서 후손들이 다시 그런 일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동국대·서울대·성공회대·숙명여대·숭실대·한신대 등 서울 남부지역 대학생들도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 모여 국정화 반대 집회를 열었다.
세 곳에서 사전 집회를 마친 학생들은 국정 교과서 반대 펼침막과 손팻말 등을 들고 ‘전국대학생공동행동’ 이 주최하는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대학생 대회’가 열리는 청계광장까지 거리행진에 나섰다.
글·사진·영상 방준호 권승록 기자 whorun@hani.co.kr
31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서울 동북부지역 대학생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대학생 대회를 열고 있다.
31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서울 동북부지역 대학생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대학생 대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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