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역사학자, 역사를 공부하는 학부, 대학원생 등 전국역사인들이 31일 오후 서울 역사박물관 앞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만인만색 전국역사인대회를 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역사학 교수·대학원생·학부생·교사 등 400여명 모여
“연애도 제대로 못하며 공부하는데 종북 운운하니 화가 나
공부해야 할 시간에 거리로 나서야하는 우리 처지가 씁쓸”
“연애도 제대로 못하며 공부하는데 종북 운운하니 화가 나
공부해야 할 시간에 거리로 나서야하는 우리 처지가 씁쓸”
연세대 사학과 박사과정 장미현(37)씨는 현행 역사교과서에 대해 ‘쉽게’ 말하는 정부의 태도 때문에 억울하다고 했다. 7년동안 한국사 석·박사과정을 공부하며 하루 100쪽의 사료를 읽고 한 줄도 못 건지는 날이 숱하게 많았단다. 장씨는 “연애도 제대로 못하며 공부하고 기록해온 우리에게 어떤 엄밀함도 없이 현행 교과서가 종북이라느니, 자학사관이라느니 하는 말들을 들으면 화가 난다. 교과서의 구절을 문제삼고자 한다면 그에 합당한 근거를 댔으면 한다”고 했다.
31일 ‘만인만색 역사연구자네트워크(만인만색)’가 연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역사인 대회’에 역사학 교수, 대학원생, 학부생, 교사 등 역사연구자 400여명이 모였다. 연구자들은 “평소 만인만색 생각이 다르고 자기 공부하기 바빠 잘 뭉치지 않는 연구자들이 거리로 몰려나온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그만큼 심각한 사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만인만색은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발표 이후 문제를 느낀 몇몇 대학원생들이 ‘급조’한 뒤 차츰 연구자 네트워크로 ‘진화’한 단체다. 연구자들은 빨간색 뿔 머리띠를 쓰고, “국가의 역사독점 우리는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집회가 낯선 연구자들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주장은 명료했다. 동국대 사학과 석사과정인 황교성(30)씨는 “다양한 연구를 하는 역사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라면서도 “한 명의 사람처럼 역사도 잘한 것은 칭찬받고 못한 것은 비판받으며 성장한다. 자학사관은 역사학도 입장에서 봤을 때 틀린 말이다. 과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성찰하는 것이 역사의 본질”이라고 했다. 장미현씨도 연단에 올라 “설사 국정화가 돼도 나는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도 연구할거다. 이 연구가 우리의 배후세력이고 힘이다. 그들은 역사를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현실을 기록으로 다지고 남겨서 후학에게 가르칠 것”이라고 했다.
이이화 전 서원대 석좌교수도 “저는 늙었고 날씨도 쌀쌀하지만 방안에 앉아서 컴퓨터나 두드리고 역사 책을 쓸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 나왔다. 우리가 써온 역사를 좌파, 빨갱이라고 하는 상황에서 가만 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연구자들은 색색의 풍선을 들고 정동길을 거쳐 ‘범국민 집중 촛불대회’가 열리는 서울 청계광장까지 행진했다. 앞자리에는 이 전 교수를 비롯해, 윤경로 한성대 명예교수, 성대경 성균관대 명예교수 등 역사학계 원로들이 섰다. 둘째줄에 선 도면회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거리로 나온 것이 뿌듯하면서도, 국정화 논란 이후 제대로 공부도 못하고 정신없이 반대에 나서고 있는 우리 처지가 씁쓸하기도 하다”고 했다. 젊은 연구자들은 “역사왜곡 중단하라”고 외치며 선생님들의 뒤를 따랐다.
글·영상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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