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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시민의 이름으로… ‘에볼라 의사’ 1인시위

등록 2015-11-05 19:16수정 2015-11-05 22:21

국외 의료봉사 앞장 최영미씨
‘국정화 반대’ 팻말 들어
“다른 의견 무시, 민주주의 역행
부모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의료봉사 앞장’ 최영미씨
‘의료봉사 앞장’ 최영미씨
‘목숨 바쳐도 아깝지 않습니다.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에볼라 의사.’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확정 고시한 다음날인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엔 이런 글이 쓰인 손팻말을 든 한 여성이 서 있었다.

최영미(45) 경기 시화병원 응급의학과장은 ‘에볼라 의사’다. 지난해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 정부 공모에 자원해 한국 구호대 1진으로 시에라리온에 다녀왔다.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환자를 채혈하다가 환자가 몸부림치는 바람에 손가락에 주삿바늘이 스쳐 독일 병원으로 긴급 이송돼 격리 치료를 받는 아찔한 순간도 겪었다. 하지만 최씨는 올해 초 네팔 대지진 피해 현장으로 또다시 뛰어갔다. 그를 이런 험난한 현장으로 이끄는 것은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함께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인도주의를 실천한다는 자부심이었다. 그는 다른 대원들과 함께 지난 5월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기도 했다.

그런 최씨가 광화문광장에 섰다. 전문직 의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1인시위에 나섰다고 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이 발표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참담해서 가만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는 “정부와 대통령이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일을 진행하면서도 전문가와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무작정 관철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보고 가만히 있는 건 올바른 시민의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아들과 딸은 최씨가 거리에 나선 또다른 이유다. “얼마 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한국인도 나왔고, 요즘은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데 과연 이런 아이들한테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필요한지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역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토론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최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꼬박 6시간 동안 광장을 지키며 적잖은 ‘응원군’을 만났다. 그는 “따뜻한 커피를 사다준 여대생도 있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지나가는 아저씨도 있었다”며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이 ‘국정화 찬성하는 사람들은 많이 모여 있는데 반대하는 사람들 왜 이렇게 안 나오느냐’고 격려해주기도 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물론 욕을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응급실에서 워낙 험한 일을 많이 봐서 괜찮다”고 했다.

최씨는 수많은 격려를 받으면서 ‘다들 생각은 있어도 선뜻 행동하기가 어려운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우리가 시민으로서 의사를 ‘표현’해본 일이 별로 없고, (그런 방법에 대해)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라 행동하기 어렵지만, 결국 우리가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그는 “국민훈장을 받았으니 제대로 국민답게 행동해야죠”라고도 말했다.

최씨는 당분간 근무가 없는 날마다 틈틈이 광화문광장을 찾을 계획이다.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국정화 고시가 철회되길 희망하며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목소리를 내보려고요. 이번 주말엔 한두 사람이라도 더 같이하면 좋을 것 같아요.” 생애 첫 1인시위를 끝마친 최씨는 “허벅지가 좀 땅기긴 했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글·사진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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