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자코 유카 리츠메이칸대 교수
“이 자료가 현재 민족문제연구소가 보관하고 있는 자료 가운데 가장 값어치 있는 보물일 겁니다. 한국이 아닌 일본에 남아 있던 자료입니다.”
14일 오후 도쿄 미나토구 근로복지회관 1층 회의실.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장이 <친일인명사전>의 편찬에 이은 연구소의 후속 사업인 ‘식민지 역사박물관’ 건립 계획의 의의를 설명하기 위해 일본 시민사회 관계자들 앞에 제시한 자료는 3·1운동 때 전국에 배부됐던 ‘독립선언서’였다.
김 실장은 “3·1운동 당시 이 선언서가 전국에 2만1000장이 배부됐지만, 현재 국내에 남은 원본은 5장뿐”이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어떻게 이 자료를 손에 넣을 수 있었을까. 통감부 시기부터 3·1운동 무렵까지 조선에 검사로 재직하던 ‘이시카와’라는 인물이 남긴 <다이쇼 8년(1919년) 보안법 사건>이라는 자료를 일본에서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써 신경 군관학교에 입학했다는 기사(<만주신문> 1939년 3월31일치)도 한·일 간 공동 작업을 통해 일본에서 발굴할 수 있었다. 연구소는 2009년 11월 이 자료를 공개해 박정희 대통령을 둘러싼 지루한 친일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김 실장은 “식민지 관련된 자료는 식민지배에 관계했던 이들이 일본에 가져와 일본에 많이 남아 있다. 박물관 건립을 위해선 연구소가 가진 한국 근현대사 자료 7만여점 외에도 일본 쪽 자료들의 추가 수집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소의 설명을 들은 일본 시민사회는 이날 ‘식민지 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을 정식으로 출범시키고 △건립 자금 모금(목표액 500만엔) △자료 수집 △지원 활동을 위한 전국 네트워크 구축 등의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게 된 안자코 유카(사진)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내가 처음 공부할 땐 한반도의 역사를 알기 위해 기본적으로 읽어야 할 책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세대는 스마트폰 등을 통해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한반도 역사에 대한) 기본이 없는 상황이 이어져 자기가 알고 싶은 정보만 얻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일본의) 상황을 생각해볼 때 박물관이 갖는 의의는 점점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모임의 사무국을 맡게 된 야노 히데키도 “사업의 성공을 위해 일본에서도 할 수 있는 지원을 해 나갈 것이다. 이 박물관은 원래 일본에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지원 약속에 대해 임헌영 연구소 소장은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만든다는 시대적 사명감을 갖고 이번 사업을 꼭 성공시키겠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