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6시 10분께 경기도 평택시 서해대교 목포방면 행담도 휴게소 2㎞ 전방 주탑에 연결된 와이어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소방당국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현장 주변 차량 통행을 전면 통제하고 있다. 다리 상판과 주탑 꼭대기를 연결하는 와이어가 화재로 인해 끊어져 있다(빨간색 점선). 연합뉴스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과학·기상 담당 이근영입니다. 전에 우주에 혼자 떨어져 떠돌던 샌드라 불럭이 천신만고 끝에 지구로 다시 떨어지는 영화 <그래비티>와 경남 진주 파프리카 하우스에 떨어진 운석 이야기로 찾아뵀습니다. 이번에는 얼마 전 서해대교에 떨어졌다는 추정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낙뢰’ 이야기를 해드리려 합니다. 주로 ‘떨어지는’ 얘기를 하게 되네요. 아직 덜떨어져서인가 봅니다. 지난번 <그래비티>기사가 나간 뒤 헤살꾼(스포일러)으로 야단을 맞았습니다. 이번에도 개봉 박두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발표의 스포일러일 수 있음을 미리 정중히 밝혀 둡니다.
먼저 한국도로공사가 4일 발표한 보도자료를 보면, 서해대교 케이블 화재 사고는 “지난 3일 오후 6시20분께 낙뢰(추정)로 목포 방향 주탑 부근 케이블에 화재가 발생해 사장교 케이블 3개 중 1개가 끊어지고 2개가 손상된 사고”입니다.
사고 원인으로 추정한 낙뢰는 실제로 있었을까요? 기상청은 “사고 시점에 낙뢰가 관측된 바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근거는 이렇습니다. 기상청은 전국에 21개 낙뢰관측센서를 설치해 놓았는데, 사고 무렵 낙뢰로 관측된 것은 오후 6시1분에 동경 126.61도, 북위 36.3도에서 81.6㎄(킬로암페어)짜리가 유일합니다. 위치는 대략 충남 보령시쯤 됩니다. 사고 지점과는 거의 100㎞ 떨어진 곳이지요. 다음은 오후 6시30분에 4.7㎄짜리가 있었는데, 광주 무등산 근처에서 관측된 것입니다.
혹시 기상청 관측센서가 낙뢰를 놓친 것 아닐까요? 기상청은 지난해 12월 독일 회사로부터 낙뢰관측센서를 구입했습니다. 사양에는 4㎄ 이상의 낙뢰를 95% 신뢰도로 관측한다고 돼 있습니다. 기존 기상청 장비가 신뢰도 90%였으니 조금 개선된 것이지요. 물론 5%의 비신뢰구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장비로 최소 1.7㎄짜리 낙뢰도 관측되고 있으니 작은 낙뢰가 숭숭 빠져나가는 건 아니지요. 30㎃(밀리암페어)만 돼도 심장에 무리를 주는 전류이니, 1.7㎄ 정도만 해도 엄청난 전류이지만요. 하지만 여름철 낙뢰가 보통 30~35㎄, 겨울철 낙뢰가 70~75㎄짜리인 것을 고려하면 1.7㎄는 꽤 작은 낙뢰입니다.
도로공사가 초청한 프랑스 낙뢰전문가 알랭 루소는 “높은 전압의 소전류는 사장 케이블을 보호하는 덕트(튜브)에 구멍을 내어 케이블의 내부로 침투할 수 있다. 만약 전류가 충분히 오래 흐르고 생성된 구멍이 적당한 경우에는 연통 효과에 의해 국부적인 열점이 케이블의 내외부로 번지는 화재로 변화할 수 있다”고 밝혀 ‘낙뢰설’에 다시 한번 힘을 실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 생각은 다릅니다. 엄주홍 기초전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루소가 실험해 발표한 논문 내용을 보면 장시간 뇌격(롱스트로크)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국제표준에 장시간 뇌격이 단독으로 발생한다는 얘기는 없다. 루소가 얘기하는 장시간 뇌격이란 뇌운에서 주뇌격(기간뇌격)이 한차례 치고 난 뒤 내부에 잔류했던 충전된 전하가 서서히 시간을 두고 빠져나갈 때 나타나는 전류를 말하는데 400A(0.4㎄)가 0.5초 정도 흐르는 수준이다. 이것으로 케이블을 싸고 있던 튜브를 뚫기는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낙뢰설을 지지하는 증거는 또 있습니다. 사고 순간 가로등들이 꺼지는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입니다. 여기에 대해 한 케이블 전문가는 “철로 된 케이블이 추운 겨울에 수축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튜브 안에 열선을 넣어 놓는데 여기에 과부하가 걸리면 용접할 때처럼 스파크로 화재가 발생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정전도 함께 설명될 수 있지요. 하지만 이 역시 추정입니다. 낙뢰는 수백 마이크로초의 짧은 시간에 지나가는 것이어서 과부하를 일으키지는 않는답니다.
강풍에 의해 케이블 가닥들이 마찰을 일으켜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여전히 고려 대상입니다. 사고 당일 서해대교 인근에 설치된 자동관측장비(AWS)에는 거의 하루 종일 매시간 최대순간풍속이 초속 18.8m로 기록될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자동관측장비는 지상 10m에 있으니, 케이블이 위치한 80m 높이에서는 바람이 훨씬 강했겠지요.
이근영 라이프에디터석 삶과행복팀 선임기자 kylee@hani.co.kr
이근영 라이프에디터석 삶과행복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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