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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영등포 명화나이트의 밤…몇 번의 부킹 뒤 몸이

등록 2015-12-25 19:36수정 2015-12-27 11:32

나이트는 단순성의 세계다. 비틀거리는 공간에서 남녀들은 과장된 몸짓과 어색한 웃음으로 서로를 탐색한다. 짝짓기를 위한 ‘수컷’의 부지런한 구애는 밤늦도록 계속된다. 지난 15일 밤, 서울 영등포구 명화나이트 앞 횡단보도를 중년 남성들이 건너고 있다. 사진 오승훈 기자
나이트는 단순성의 세계다. 비틀거리는 공간에서 남녀들은 과장된 몸짓과 어색한 웃음으로 서로를 탐색한다. 짝짓기를 위한 ‘수컷’의 부지런한 구애는 밤늦도록 계속된다. 지난 15일 밤, 서울 영등포구 명화나이트 앞 횡단보도를 중년 남성들이 건너고 있다. 사진 오승훈 기자
[토요판] 르포
▶ 여기 지리멸렬한 일상을 벗어나 하룻밤의 일탈을 꿈꾸는 중년들이 있습니다. 술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비틀거리면서도 그들은 나이트클럽으로 향합니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한 그들의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인 밤을 들여다봤습니다. 지난 7일 밤, 서울 영등포 명화나이트는 중년의 욕망으로 뜨거웠습니다. 10여년 전까지 ‘명화극장’으로 불린 이 판타지의 공간에서조차 삶의 쓸쓸함은 여전했습니다. 욕망의 모호한 대상을 찾아 이곳에 온 중년들은 외로움을 의탁할 안식처를 찾았을까요?

“영등포 명화나이트로 가 주세요.”

“좋은 데 가시네요.” 택시 기사는 웃으며 핸들을 돌렸다. 차는 마포대교에 들어섰다. 시간은 밤 11시20분을 넘기고 있었다. 아는 후배 ‘마빡’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얼마 전 명화나이트를 다녀갔다고 했다.

“형님, 거긴 30대부터 50대까지 드나들어요. 웨이터는 강호동을 찾으시면 될 거예요. 룸 잡으시면 31만원입니다.” 동승한 ㄷ씨는 ‘너무 비싼 거 아니냐’고 했다. 시끄러운 홀은 취재를 하기에 여의치 않았다. 난 먹고 떨어지라는 투로 대답했다. “내가 좀 보태줄게. 됐지?”

사실 ‘명화나이트 르포’는 그가 제안한 취재 아이템이었다. 서울 서남권에서 가장 유명한 성인나이트 가운데 하나인 명화나이트에서 중년들은 어떻게 연말을 보내는지 ‘어른들의 놀이터’를 취재하자는 취지였다.

영등포로터리에 도착한 택시는 이면도로의 공구상가를 지나 나이트 앞에서 손님을 부려놨다. 택시에서 내릴 때 여성 3명이 차로 다가왔다.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여성과 이내 시선이 마주쳤다. 술이 취한 듯 보이던 그 여성은 좀처럼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또렷한 시선이었다. ㄷ씨는 현금을 찾겠다며 길 건너 편의점으로 갔다. 그사이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키 큰 남성이 이 여성들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괜찮으시면 저희랑 맥주 한잔 안 하실래요?” 여성들은 귀찮다는 듯 대꾸도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가버렸다.

지난 7일 밤 11시40분, 서울 영등포 명화나이트 앞은 드나드는 중년 남녀로 북적였다. 친구와 함께 오거나 회사 송년회를 마치고 온 사람들이 많은 듯했다. 동료로 보이는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 4명이 “가자~!”를 외치며 어깨동무를 한 채 나이트에 들어섰다. 그들에게서 삼겹살 냄새가 끼쳐왔다. 넥타이부대 뒤를 따라 들어갔다. 나이트 안에서는 디제이 디오시(DJ DOC)의 철지난 ‘겨울이야기’가 요란스러웠다.

“아시는 웨이터 있으십니까?” 최홍만 같은 덩치의 웨이터가 물었다. “강호동이요.” ㄷ씨가 호기롭게 말했다. 최홍만은 무전기로 강호동을 호출했다.

계단을 한 층 올라가자 강호동 명찰을 단 몸집 좋은 웨이터가 90도로 인사를 해왔다. 강호동은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그를 쫓아 안으로 이동했다. 한겨울이었지만 나이트 안은 더운 열기로 후끈했다. 스테이지에는 터보의 ‘어릴적 꿈’에 맞춰 남녀 30여명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심장박동보다 비트가 더 빨랐다. 남자들은 그 사이에도 예민한 촉수로 사주경계를 하고 있었다. 어림잡아 40대부터 50대가 대부분인 듯했다. 일반 테이블에도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현란한 음악 속에서 서로에게 귀엣말을 하며 웃고 있는 남녀들이 보였다. 나이트의 음악이 사나운 건 반드시 흥을 돋우기 위해서만은 아닌 듯했다.

서울 서남권에서 가장 유명한
‘어른들의 놀이터’ 명화나이트
은밀하고 노골적인 ‘판타지아’
‘허세’는 기본, ‘말발’은 필수
어렵게 룸을 잡고 부킹을 하다

순례자처럼 룸을 전전하는 30대
체불임금 토로하던 40대 한 여인
고1 딸과 싸웠다던 50대 여성까지
외로운 중년은 안식처를 찾았을까
판타지를 남겨두고 다시 일상으로

돈의 위세로 구획된 계급사회

나이트는 은밀하고 노골적인 판타지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 판타지가 결코 환상적이지만은 않다. 나이트는 자리 구획부터 철저하게 차별적이다. 스테이지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테이블-부스-룸으로 나뉘어 있다. 더 많은 부킹과 더 확실한 짝짓기를 원한다면 나이트의 최상 ‘클래스’인 룸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 가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돈의 위세에 따라 분획된 계급사회라는 점에서 나이트의 판타지는 세속 도시의 또 다른 반영이다.

나이트는 또한 단순성의 세계다. 비틀거리는 공간에서 남녀들은 과장된 몸짓과 어색한 웃음으로 서로를 탐색한다. ‘허세’는 기본이고 ‘말빨’은 필수다. 취한 말들의 시간. 웨이터들은 말한다. 부킹 뒤 5분 안에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고. 그 안에 최대한 유머러스하면서도 재미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5분 안에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기는 쉽지 않다. ‘짝짓기’를 위한 수컷의 구애가 번번이 좌절되는 이유다. 판타지는 멀고 실패는 가깝다. 늘 불안은 또렷하고 희망은 흐릿한 법. 손에 잡힐 듯 아른거렸던 판타지가 가뭇없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순간, 남는 것은 속쓰림과 마음의 허기다. 이를 모르지 않지만 오늘도 도시 남녀들은 나이트에 홀려 간다. 오늘만은 다를 것이라 믿으며. 유혹적이지만 그만큼 깨지기 쉬운 판타지가 나이트에 넘실거렸다.

강호동은 무대가 정면에서 보이는 부스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아줬다. ㄷ씨가 강호동에게 귀엣말을 했다. 강호동은 지금 룸은 꽉 차서 빈 곳이 없다고 했다. 세상은 불황이라는데 연말 나이트는 월요일 밤에도 활황이었다. ㄷ씨가 강호동에게 다시 속삭였다. 강호동은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웨이터들은 화장실에 갔다 오는 여성들의 손목을 잡고 이곳저곳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가까운 룸이 마침 비었네요. 운이 좋으십니다”라고 너스레를 떤 강호동은 “팀플로 해드려야겠죠?”라고 물었다. 20대들이 주로 가는 나이트클럽에선 일행이 아닌 여성들을 합석시키는 이른바 ‘개인플레이’로 부킹이 이뤄진다면, 중년 나이트는 같이 온 여성들을 합석시켜주는 이른바 ‘팀플레이’가 주라고 강호동은 설명했다. 개인플레이는 부킹 횟수가 많다는 장점이 있지만 떨어져 있는 일행 때문에 매칭률이 떨어지는 데 반해, 팀플레이의 경우 부킹 횟수는 적다는 단점이 있지만 일행과 합석을 하는 까닭에 매칭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뜻이었다.

룸 안 테이블에는 양주잔과 맥주잔이 놓여 있었다. 이윽고 후임 웨이터가 양주 윈저 한병에 맥주 6병, 500㎖ 우유 한 팩, 음료수 4캔, 그리고 과일 안주와 모듬포 안주를 가지고 들어왔다. 룸 기본 구성이었다. ㄷ씨는 웨이터에게 1만원을 팁으로 주면서 부킹에 신경 좀 더 써달라고 했다. 많이 다녀본 솜씨였다.

5분이나 지났을까. 똑, 똑.

문을 연 강호동이 여성 두명을 안으로 안내했다. ㄷ씨는 ‘드루와, 드루와~’를 연발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두명이 들어왔다. 둘 다 짙은 화장에 한명은 가죽 타이츠에 한명은 청바지 차림이었다. 첫눈에도 센 기운이 밀려왔다. 내 옆의 여성은 앉자마자 “오빠, 술 한잔 따라보셔~”라고 했다. “네~.” 기에 눌려 얼떨결에 술을 따랐다. 그 여성이 원샷 한 뒤 말했다.

“오빠들 여기 처음이지? 여기 올 나이대가 아닌 거 같은데 누구한테 눈탱이 맞은 거야?” 누구한테 속아서 온 거 아니냐는 뜻이었다. 후배 마빡의 번뜩이는 마빡이 스쳐지나갔다. ㄷ씨가 “왜 우리가 오기엔 너무 어려?”라고 되물었다. “여긴 남자나 여자나 40~50대밖에 없어. 열라 구려. 우리도 아는 웨이터 오빠만 아니면 여기 오지도 않아.”

“아는 웨이터가 오라고 하는 건가 보죠?” 나는 물었다.

ㄷ씨 옆자리에 앉은 여성이 답했다. “물이 너무 구리면 아는 웨이터가 ‘잠깐 놀다 가라’고 전화를 하거든. 그럼 와서 몇번 돌다가 가는 거야. 공짜 술에 나름 퀸카 대접도 받고 좋지 뭐. 근데 이제 그만 오려구. 열라 구려.”

“여긴 점점 노땅들이 오는 거 같아요”

옆자리 여성은 “오빠, 놀면 뭐해? 술!” 난 포스에 눌려 부랴부랴 술을 따랐다. 원샷 두잔에 옆자리 여성은 일행에게 눈으로 사인을 건넸다. 이제 나가자는 뜻이었다. “오빠, 나이트에서 홈런(원나잇스탠드를 일컫는 은어) 치고 싶으면 이런 데 오지 말고 강남 호텔나이트를 가. 안녕~.” 자리를 뜨면서 그녀는 말했다. 그녀들이 나가자 ㄷ씨는 “세다 세~. 쟤네가 나이트 죽순이인가보다”라고 했다. 그녀들의 표정은 사무적이었고 때론 지루해 보였다. 그들은 인도자인 웨이터를 따라 룸방을 전전하는 순례자들 같았다.

곧 강호동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형님들, 별로 마음에 안 드십니까?” “신경쓰지 말고 다양한 연령으로 부킹해주세요.” 내가 답했다. 강호동은 다들 젊은 여성을 원하기 마련인데 약간 의아하다는 얼굴이었다.

이윽고 후임 웨이터가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두명을 데리고 왔다. 두 사람은 같은 일행이었다. 언뜻 봐도 ㄷ씨보다 연상인 듯했지만 ㄷ씨는 막무가내로 ‘우리 동생’을 남발했다. 듣는 ‘동생’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아서였을까? 내 옆에 앉은 여성은 왠지 기분이 언짢은 듯했다.

“뭘로 드릴까요?” 옆자리의 여성에게 물었다.

“양주로 주세요.”

술을 따르며 물었다. “근데 집안에 우환 있으세요? 기분 안 좋아 보이세요.”

“옆방에 들어갔는데 어떤 남자가 자꾸 치근덕대잖아요. 머리 벗겨지고 배 나온 게 얼굴은 원숭이같이 생겨가지고. 기분 전환 할 겸 왔는데 잡쳤어요.”

이때 일본원숭이같이 생긴 ㄷ씨가 말했다. “혹성탈출 하셨네.” 혹성탈출 했는데 결국 또 다른 혹성으로 온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옆자리의 여성이 웃었다. “호호호. 혹성탈출이래.”

“명화나이트 어때요?” 내가 물었다.

“몰라요. 두번밖에 안 왔어요. 호호. 여긴 점점 노땅들이 많이 오는 거 같아요. 요샌 독산동 국빈관이 괜찮다고 하던데.” 두번밖에 안 왔다는 말과 나이트 ‘물’이 안 좋아진다는 진단은 언뜻 상충돼 보였다. “우린 어떤 거 같아요?” 내가 물었다. “혹성탈출보단 나아요. 호호.” 손을 가리고 웃을 때 손등과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근데 저 오빠는 몸이 좋네요. 무슨 사채업자 같아. 호호.” 건너편 일본원숭이 ㄷ씨를 보고 내 옆자리 여성이 말했다. “왜 어디 떼인 돈 있으신가?” ㄷ씨가 말했다. “일하고 못 받은 월급이 있는데 그것 좀 받아줘요. 사장놈이 맨날 준다 준다 하더니 이젠 전화도 안 받아.”

내가 물었다. “체불임금이 얼마나 되는데요?” “한 600만원 될 거예요.” 관할 노동지청에 신고하라고 일러준 뒤 스마트폰으로 연락처를 찾아 냅킨에 적어줬다. “와, 이런 방법이 있는 줄 몰랐어요. 고마워요.”

그때 그녀의 전화벨이 울렸다. 여성은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 곧 다시 들어온 여성은 초등학생 아들내미가 열이 난다며 집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 ㄷ씨와 웃으며 얘기를 나누던 맞은편 여성은 아쉬운 듯 자리를 일어섰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여성들이 나가고 들어온 강호동은 월요일이라 손님이 많지 않다며 더 신경을 쓰겠다고 했다. 이윽고 10분 뒤 후임 웨이터가 여성 두명을 모시고 왔다.

5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새로 온 여성들은 직전 여성들보다 더 나이가 있어 보였다. 옆에 앉은 여성은 날 보자마자 “이혼한 전남편과 닮아서 재수없다”고 했다.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 여성은 ‘이혼한 남편이 생활비를 보내지도 않는다, 아주 나쁜 놈이다, 하긴 그런 놈이랑 결혼한 내가 병신이지’라며 술을 마신 뒤 묻지도 않은 얘기를 술술 늘어놨다.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왔다.

한창 직장 상사 욕을 하던 그 여성은 갑자기 “아침에 고1 딸내미랑 싸우고 나왔는데 어떻게 화해를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난감했다. 난 딸이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다. 그 여성은 ‘햄버거나 피자’라고 했다. 그녀에게 전화기를 달라고 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 패스트푸드점 모바일 이용권을 딸에게 보냈다. ‘우리 딸, 엄마가 미안해~’라는 문자도 함께. 그 여성은 ‘별 신기한 놈 다 보겠네~’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하루가 무척 길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집에 가고 싶어졌다.

몇 번의 부킹이 더 이뤄졌고 시간은 새벽 1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룸 모니터로 보이는 스테이지에도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없었다. 나이트에도 드디어 ‘밤’이 찾아온 것이다. 우리도 자리를 일어설 채비를 했다. ㄷ씨는 남은 우유와 음료수를 가방에 넣었다. “알뜰살뜰하니 아주 재벌 되겠다~”고 약을 올렸다. 중년 여성들에게 ‘몸 좋다, 귀엽다’ 칭찬받은 일본원숭이는 그래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난 룸을 나오며 그곳에서 만난 이름 모를 사람들을 생각했다.

욕망의 모호한 대상을 찾아 이곳에 온 중년들은 오늘 하루 자신의 외로움을 의탁할 안식처를 찾았을까. 찰나의 즐거움을 위해 맺은 부박한 관계는 마음의 허기를 달래줄 수 있을까. 화려한 조명과 현란한 불빛 아래서도 우리네 삶의 남루함과 쓸쓸함은 좀처럼 가려지지 않았다. 지리멸렬한 일상을 떠나 ‘판타지아’에서 짜릿한 일탈을 꿈꾸지만 우리는 다시 궁상맞고 지질한 생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이트를 나오니 고단한 하루가 마중 나와 있었다. 뒷모습이 추워 보이는 중년 남성이 “봉천동”을 외치며 택시를 잡았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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